경험이라는 선물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분야에 또는 어떤 일에 Top을 찍어 본 적이 있는가?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빚어지는 1등이라는 타이틀은 학창 시절에나 해 볼만 하지, 어른이 되어 사회로 나오면 경쟁은 심해지지만 겉으로는 나래비를 세우지 않는 척하기 때문에 명시적인 Top을 해보기가 쉽지 않다.
'1등'이라는 것은, 어떤 종목에서든지 간에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타고나는 달리기라 할지라도 쫌 달리는 아이들의 실력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경쟁자를 이기려면 신발도 딱 맞게 꽉 묶고, 스타트를 뒤지지 않을 초인적인 집중을 하는 등 부수적인 노력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Top은 늘 인정받는다. 그것이 슬라임이 됐건, 큐브가 됐건, 레고가 됐건 Top은 노력의 산물이며, 성취했을 때 만족감은 그 어떤 감정과도 견줄 수 없겠다. 그렇게 내가 노력해서 해냈다는 사실은, 다른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스스로 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삶의 에너지가 된다.
그러니 아이가 어릴 때, 성취감을 줄 수 있는 많은 것을 도전해 보면 좋겠다. 내 회사 지인은 YMCA 아기 수영단 출신이라며, 자부심 충만한 수영실력을 자랑한다. 우리 남편도 자기가 왕년에 책을 많이 읽었다고 지금 속독이 그때 생긴 거라며 자랑한다. 어릴 때 선수 출신인 지인들의 자랑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라떼의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힘든 시간을 견디고 해낸 자신을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웬만한 일에 좌절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해 봐야겠네',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할 뿐... 나는 중학교 때 전교에서는 3등 해 본 것이 가장 높이(?) 찍었던 경험인데, 그 자부심이 고등학교 때까지 꽤나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1등', '최고', 'Top'이라는 경험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악기, 달리기, 책 읽기, 블록, 슬라임, 게임, 큐브, 바둑, 수영, 과학상자, 줄넘기, 철봉, 만화 그리기, 글쓰기, 영상편집하기 등 장르는 상관없다. 아이가 한없이 시간을 쏟아붓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 영역에 대회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다면 프로의 세계에 방문해서 another level을 보여주고 참여해보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최연소' 또는 '어린이' 타이틀이 있으니까.
혹시 공연이나 발표회 기회가 있다면 아이와 상의하여 꼭 참여해보면 좋겠다. 규모가 크건 작건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것을 준비하면서 무수히 드는 생각(나는 이걸 왜 하나, 하기 싫다, 관둘까 등등)과 싸우고, 마침내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커서 그런 것 같다.
내가 가장 잘하는, 내가 가장 신나는, 내가 제일 빛나는 영역을 갖게 되면 아이는 알게 될 것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해냈을 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해봤던 기억으로 다른 것에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세상을 하나의 RPG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어른들은 어떤 능력치가, 어떤 직업이, 세상을 사는데 유리한지 알고 있기에, 아이들에게 가급적 유리한 능력치를 올려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 관심 갖는 영역은 참 다르다. 차라리 아이가 원하는 스킬 습득을 먼저 시켜보자. 스킬을 얻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성공한다면, 아이는 또 다른 스킬을 올리기 위해 기본 능력치를 끌어올릴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이의 스킬셋이 언제 어떻게 발휘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가 싫다고 하지 않으면 꾸준하게 Top이 될 때까지 지원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느린 아이도 있고, 처음에는 잘 몰랐다가 좋아지는 아이도 있는데, 로딩중을 못 참고 부모가 너무 빨리 새로고침 하거나 바꿔버리면 다시 시작해야 하니 좀 안타까운 것 같다.
해야 할 일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간을 퍼부으며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때는 아마 초등학교 때까지 일 것이니... 뭘 해 내는지 꾹 참고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