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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토끼 Jan 11. 2023

초등학생 성교육은 어떻게

말하지 않고, 그림책 추천!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아기가 생긴다만 주구장창 배웠던 내 시절의 성교육...

친구네 집에서 만화 비디오테이프인 줄 알고 틀었다가 보게 된 포르노에서, 궁금해했던 난자와 정자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큰 충격과 함께 알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제 5학년 딸을 가진 엄마로서, 우리 딸이 나처럼 당황스럽고 충격적으로 그 사실을 알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어떻게 성교육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 속에 가장 궁금한 사실은,


우리 아이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아이가 무엇을 아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성교육이랍시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어디까지(?) 아냐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저학년용 성교육 그림책이다. 어떻게 그렇게 적나라하게 그리고 썼는지 입이 쩍 벌어질만하게 사실적으로 내용이 담겨있다. 내가 고른 책은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외국책이었는데 남편은 몇몇 장면과 글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대화 타이밍은 동생이 자고 난 이후를 노렸다. 왔다 갔다 잘 준비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야~ 너 키 진짜 많이 컸다. 하긴 너도 12살인데 주변에 생리하는 친구들도 많지? 학교 성교육 시간에 다 배우나?"라고 말을 꺼냈다.


다 배운단다. 그 고매한 난자와 정자도 배우고, 생리와 몽정도 배우고, 다 배웠단다.

"엄마도 여자라서,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은 유치원생도 쉽게 알도록 성관계를 설명했더라고, 이거 나중에 한 번 보고 이 정도는 이미 아는 건지 얘기해 줘."라고 말하며 책을 건넸다.


다음 날(빠르게도 봄), 아이는 그건 다 아는 내용이라고 했다. 나도 잊을 만큼 아주 예~전에, 아이가 성에 대해서 궁금해지면 엄빠 책장을 살폈을 때 보라고 한 두권 중/고등학생급의 성교육 책을 꽂아놨는데, 그걸 벌써 봤더라. 그 내용을 보고 성관계가 무엇인지 대충 알게 되었는데, 그 그림책처럼 정확하게 설명해준 책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ㅋㅋ


그리고는 줄줄이 질문이 이어졌다.

날짜를 계산해서 피임하는 방법이 쓰여 있었는데, 뭔지 모르겠더라, 콘돔을 써야 한다고 하는데 그걸 언제 사용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 성폭력을 당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임신하면 어떡하냐 등 아이는 그동안 쌓아둔 질문을 쏟아냈다.


 차라리 질문이 쏟아지니, 대화는 편했다. 그리고 더 이상 대화하기 불편한 주제가 아니게 되었다. 성과 관련되서는 친구들도 다 몰라서 너네끼리 물어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 꼭 엄마한테 물어보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었다. 막연히 성교육을 어떻게 해줘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 '어떻게' '무엇을 말해줘야 할까' 중에서 '언제'와 '어떻게'는 자연스럽게 해결했고... 나는 무엇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건 아마도, 내 딸이 갑작스럽게 성적인 느낌을 받거나, 불쾌감을 느꼈을 때, 수치심이나 죄책감으로 모든 감정을 한데 둘둘 말아 꽁꽁 숨기고 눌러 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것 같다.


 당황스럽게도, 성과 관련된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은 모두 수치심을 동반했던 것 같다. 수치스러울 일도 없는데 말이다. 아울러 당연한 것, 당연하지 않은 것, 부끄러운 것, 부끄럽지 않은 것, 해 보고 싶은 마음, 그렇지 않은 마음, 조심해야 할 것 등을 얘기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혹시라도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거든 걱정하지 말고 엄마한테 얘기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몸의 변화나 성 얘기를 일절 하지 않다가 다 커버리고 할 수는 없을 테니, 생활 속의 작은 변화부터 얘기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겨드랑이에 털이 나면 제모나 왁싱 얘기도 하고, 생리를 시작하면 다양한 생리대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날짜 피임 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스킨십을 하는 연인을 보면 엄마 데이트할 적엔 어땠는지도 얘기하면서 주의할 점도 얘기하고...


이런 식으로, 먼저 겪어본 어른 관점에서의 얘기를 들음으로써, 아이가 친구들과 동영상, 출처 없는 게시판에서 얻은 정보로 자기만의 편협한 생각을 갖지 않으면 좋겠다. 기준이나 평균이라고 지칭할 것이 없으니 성교육은 참 어려운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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