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 치우지 않긴 하지만...!
방학에 아이들과 싸우는 것들 중 하나는 '치우기'이다.
방 치우기는 왜 안 되는 걸까.
아무리 잔소리해도 발전이 없다.
남편은 급기야 쓰레기봉투를 들고 아이들 방에 쫓아 들어갔다.
울고 불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아이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지만, 어른은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어쩔 수 없이 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은 아닐까?(오~ 그럴 듯...) 아이들이 '방 치우기'가 힘든 이유를 나름 상상해 보았다.
1. 방이 넓어 보이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발 디딜 틈이 없는데, 아이들은 몸이 작아서 그런지 아직 깨끗한 자리가 많다고 생각하나 보다.
이 정도면 깨끗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2. 쓰레기를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먹은 젤리포 플라스틱 통을 휴지로 닦아서 인형 놀이에 사용한다. 맛있었던 사탕 껍질을 다음에 사달라고 하려고 안 버린다. 다 먹은 과자 봉지도 그냥 놔둔다. 왜 안 버렸냐고 하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지만 정말 그런가 싶을 때도 있다.
3. 치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숙제할 거고, 이건 나중에 서랍에 정리해서 넣어야 하고, 이건 미술 준비물이니까 내일 가져갈 거고... 이런 식으로 모든 늘어놓음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니 그걸 치우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이들에게 치움을 원한다. 하지만 현관 앞에 다목적 선반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면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ㅋㅋ 친정 엄마가 이건 왜 안 치웠냐고 하면 나도 하나하나 그 이유를 말할 수 있다. 마치 아이들처럼...
그래도 나는 차고 넘쳐 못 봐줄 쯤 싹 치운다!
그렇다면, 아이들도 치우라는 잔소리를 안 하면 때가 돼서 치울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방이 꽉 차서 놀 수가 없으니 거실로 나왔다. 자기 책상도 이것저것으로 정리가 안 되어 꽉 차니, 거실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한다. 보다 못한 남편이 버럭 화를 내서 이 실험은 여기서 그만뒀다. 무튼 아이들이 치울 때까지 기다리긴 어렵겠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 가지만 지키자고 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세상에 공원에서 볼 법한 현수막 문구가 아닌가?! 그런데 저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사실;;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가장 쉬운 것이 아닐까? 다 먹은 또는 다 쓴 껍질 버리기! 쓰레기라도 잘 버리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다.
그리고 하나는 내가 할 일인데... 정리&정돈이 어디 쉬운가! 오죽하면 똑똑한 수납 관련 책도 나오는데!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책상 위에 물건들이 어지러우면 내가 치워주기로 결심했다. 책상만큼은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바로 앉아서 할 수 있도록 깨끗하게 관리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이들이 치카하기 시작할 때 책상을 정리하려고 다가갔더니 큰 아이는 부담스러워하며 자기가 치우겠다며 펄쩍 뛰었다. 자기 물건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도 한 몫한 것 같다. 작은 아이는 엄마가 치워줘서 마냥 좋은가보다. 깨끗해진 책상을 보며 좋아서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책상이 치워져 있어서 언제든지 책상에 뭔가를 펼칠 수 있음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면, 그땐 알아서 잘하겠지. 아이들이 언제까지 치우지 않고 살 순 없을 것이니, 좀 더 클 때까지 기다려볼까. 아니지, 치우는 것은 습관이니 마냥 그렇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인데... 끝나지 않는 고민 속에, '책상까지만'이라고 선을 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