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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r 31. 2017

양다리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왜 양다리를 걸치는 걸까?

글쎄...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출근 시간에는 으레 그 정도의 사람들이 덜컹거리며 함께 열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각자의 행선지를 향해 달려갔다. 원영도 이제 그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한 시간이 넘는 통근 시간을 하루 두 번 이 열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향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귀찮고 피곤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원영에겐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오늘처럼 시간대와 운대가 비껴나가 자리가 없을 땐 내내 서서 가느라 다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앉아있으면 양 옆으로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속으로 그 느낌을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피곤한 얼굴을 창가 쪽으로 젖히고 있다 보면 어느새 몸이 노곤 노곤해지면서 피로가 풀리고 남잔지 여잔지도 모르고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도 모르는 어느 정도 덩어리감이 있는 정체 모를 옆사람으로부터 따스한 열기가 원영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다. 

"여보세요! 어~~ 현수막 하는 거? 그거 나도 모르지, 박 대리한테 물어봐. 카톡으로, 그래~"

흘러나오는 전화 통화 내용을 듣고 나서야 원영은 옆 자리 남자는 회사원이며 실무에 대해 잘 모르는 직급이 꽤 있는 상사이겠거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야 원영은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짐을 싸들고 냉큼 지하철에서 내렸다. 종로 3가. 아니다. 잘 못 내렸다. 원영은 다음 칸에 냉큼 다시 올라탄다. 빈자리가 눈에 띄어 다시 그 자리에 앉는다. 다시 눈을 감으니 또 다른 온기가 금방 전해진다. 이 온기는 너무도 빨리 식어내려 버리고 전화 통화가 금세 이어진다.

"교수님~ 전화가 왔는데요, 모델 일이 들어왔는데 저 더러 하자고 하네요! 어떡하죠?"

전화 통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원영은 고개를 돌아보는 대신 남자의 기다란 다리와 블랙 워커를 살짝 노려보다가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아직 압구정에 내리려면 10분은 더 달려야 해!'

마음속으로 되뇌며 원영은 머릿속을 정리한다. 이제 청담동 패션 거리 쪽에 출근을 시작한 지 이틀 째가 되었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할 일이니까.


오늘의 할 일

1. 수 오리기

2. 수 오리기

3. 커피 심부름

4. 상자 주워오기

5. 수 오리기


한 숨을 푹 내쉬고 원영은 압구정 역에서 내려 청담 사거리 쪽으로 걸어간다. 거리에는 잡지 화보에서 갓 튀어나온 것만 같은 요란한 패션의 사람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스니커즈에 검정 스키니 바지와 맨투맨 티셔츠, 베이지 색 반 코트를 입은 원영은 불량스러워 보이는 아니 한없이 자유로와 보이는 그들 사이를 뚫고 유유히 걸어간다. 


원영은 왠지 모르는 자신감에 차서 고상한 외관의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핸드 메이드라고 커다랗게 명조체로 쓰인 웨딩드레스 샵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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