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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pr 11. 2017

양다리

SNS 덕질

원영이 출근하는 시간은 오전 10시쯤, 퇴근하는 시간은 저녁 9시쯤이다. 그러니까 오전 9시 반부터 11시쯤과 저녁 8시 반부터 10시까지다 원영이 본격적인 문자질과 전화질을 하는 시간대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출근길에는 어김없이 영문  소설이라던가 얇은 잡지를 들고 우아하게 활자 한 글자 한 글자를 쫓으며 어떤 이야기에 빠져들고 혼자서 울고 웃고 감정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우아하게 책을 들여다봤으니까.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그런 지적이라고 자부했던 소소한 시간들은 거래처와 근무처와의 연락을 주고받음으로 인해 침식되었다. 그중에서도 그날의 하루 시작을 신경 쓰이도록 만드는 메시지들이 있다. 대표님이 화보 촬영 진행을 알아보라고 해서 원영은 출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겨우 지났지만 모델 섭외부터 스튜디오 탐방을 해왔던 것이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 에바네 매니전데요, 화보 촬영하는 거 콘셉트 때문에 연락드려요 ^^, 사진 이미지들 첨부해 드립니다."

"매니저님 이름이 뭐예요?"

"저 원영이요. '벗을까 말까 밀땅하면서 나는 너를 보고 있다!' 그런 느낌이요"

"외국 모델은 연락했어요?"

"아 그거는 아직.. 물어보겠습니다."

"저희는 콘셉트대로 촬영만 하면 되지요?"

"아, 정말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아이디어 생기시면 도와주세요~"

"넵"


원영은 상혁과 몇 번의 문자를 주고받은 뒤 잠시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사진의 사짜도 몰랐지만 원영은 언제나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원영은 의상 직업 대학을 다녔지만 당시에 사진을 전공하는 남자 친구를 한창 만났었다. 그때 남자 친구와 대학가 커피숍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자 친구는 구도 하나로 사진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 얼굴에 홍조를 띠며 설명했고, 원영이 고등학교 때 배웠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황금 비율을 운운했었다. 어쨌든 사진은 구도라니 원영은 뭔가 멋있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4월 29일 화보 촬영을 하려고 합니다. 오전 8시 메이크업 시작해서 저녁 전에 끝낼 예정입니다."

"안녕하세요, AMI 모델입니다. 촬영 가능한 모델리스트와 모델료 보내드리겠습니다."

"금발 머리의 세 번째 모델로 해서 스케줄 잡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하프 데이 스케줄이요. 변동 사항 있으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29일 오전 스케줄 픽스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채연씨, 촬영 전에 모델 피팅을 해보고 싶은데요, 세 명쯤 가능할까요? 요번 주 화요일 어떠신가요?"

"저희가 미팅은 수요일 가능한데요".

"...모델료 좀 깎아주시면 안되나요?? 반나절 촬영하는데 모델 2명 해서 풀 데이 하루 가격으로 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저희가 금액은 조정이 불가능 해서요".

"아 네~ 그럼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원영은 스튜디오채연과 메신저를 주고받은 후, 오늘 하루 일과의 시작을 마쳤다.


포토그래퍼 상혁과 코디네이터 채연. 원영은 그 둘 사이에 가운데에 껴서 2주 후에 있을 화보 촬영을 잘 준비하기 위한 기대에 차 있다. 둘과의 양다리 사이에 줄타기를 하는 것은 그렇게 원영의 하루 일과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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