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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pr 19. 2017

양다리

지중해의 빛깔

원영은 컴퓨터 모니터로 푸른 바다 그리스의 신혼 여행지 사진들을 둘러본다. 시원하다. 예쁘다. 코발트 빛, 에메랄드 빛, 그리고 어디선가 핑크빛이 도는 사진이다.


오늘 하루도 원영은 욕도 많이 먹고 푸대접에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일찍 일찍 좀 다니지 맨날 지각이니?? 그러려면 오지 마!"

대표님이 말씀하신다.

"여기 너 보다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좀 조용해라~".

사장님이 말씀하신다.

"상추 좀 씻어오고 설거지도 네가 해".

재단사님이 말씀하신다.

"박스 좀 구해와".

원장님이 말씀하신다.


대표님, 사장님, 원장님, 재단사님 까지 이 곳은 머리가 너무 많다.


원영은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여기 웨딩숍에서 막내 일을 하는 건 마치 누군가가 저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듯 온몸이 무겁고 돌덩이를 어깨 위에 얹은 듯 천근만근이 되어 아침에 점점 일어나기가 힘이 든 것이다. 오프 숄더 니트 티를 걸쳐 입은 것이 그나마 바람을 쐬게 해주니 시원하니 바람한테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 상황에 초긍정이 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실컷 머리들 삐대치는 소리를 한차례 듣고 나면 원영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영혼이 삐져나오는 기분을 느끼곤 판단력이 흐려져서 영 집중을 할 수가 없어 딴짓거리를 하고야 만다.


재단사님이 원단 두루마리에서 커다란 재단 가위로 주욱 한 뼘 길이로 천을 잘라 미싱으로 드륵 박아 원영에게 건넨다.


"자 이걸로 수세미 해. 설거지할 때 남은 음식은 개수대에 버리면 안 된다~!"

"이게 무슨 원단이에요??"

"그거 빳빳씽"

"빳빳한 씽~"


그러면서 밥통에 붙은 밥풀을 그대로 개수대에 버리고 말아 수도관이 꽉 막히고야 말았다.

"너 이거 어쩔 거야?!?!"

"아 그거요~~ 죄송해요! 콜라 부으면 괜찮아요! 냉장고에 콜라 있던데 그거 부으면 돼요".


바쁘게 미싱질을 하는 재단사님이 날카롭게 째려보는 눈빛에 원영은 미싱 자석에 붙어있는 핀 5개쯤을 주워서 가져간다.

"이것 좀 가져가도 되죠?"

"여기 바쁘니까 얼쩡대지 말고 가지고 가".

원영은 무섭게 미싱질을 하는 재단사님의 암흑과도 같은 뒤통수를 흘끗 보고 슬금슬금 뒷걸음쳐 나온다.


"원영 씨, 토요일 신부 대자 드레스 좀 찾아줄래? 여기 주문서"

"은사 시스루 라운드 반짝이 속치마??"

원영은 드레스 옷장을 뒤지고 뒤져도 은사 자수에 시스루가 덮인 라운드 네크라인에 치마 안감이 스팡클로 반짝거리는 옷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안 보이는데요~"

"저번주에 석계동 이모가 다녀왔잖아".

"아하~~ 찾았어요 찾았어!!"


원영은 마치 동굴 속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듯 소리를 질르면 한 바퀴를 휘익~~ 돌았다.


"그거 가봉을 해야 할 텐데.."

"덧대기도 2개 대야되고.."

"뭐?? 2개??"

"신부가 완전 빅사이즈.."

"너 안드로메다에서 왔니?? 호호호 내가 원영 씨 때메 웃는다~~ 왜 이렇게 웃겨~~!!"

원영은 원장님의 날마다 비웃는 웃음소리에 마녀 같은 소름이 돋는다.


오늘 하루 재단사 님과 원장님 사이를 오가며 심부름들을 하다 보니 원영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또다시 양다리.


원영이 가방에서 원두를 꺼내 드립 커피를 내린다. 한 잔을 재단사님에게 또 한잔을 원장님에게 내민다.

"커피 좀 드세요, 이거 강남역 사거리에서 공수한 고급진 원두예요! 근데 제작님이 더 나이 많으세요 원장님이 더 나이 많으세요??"

"제작님이 나보다 세 살 많아~"

"나 돼지띠, 무슨 띠?? 닭띠??"

"두 살이네 그럼"


"그럼 드레스 가봉하는 건 내일 할까요??"

원장님과 재단사님이 서로 눈을 마주 보고 살포시 웃는다.

"그래 내일해".



휴~~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원영은 생각한 대로 일이 풀려 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창 밖으로 빙긋 지중해의 빛깔을 닮은 하늘 위에 구름이 떠가는 것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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