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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07. 2016

먹는 여자

이별과 방울토마토

오늘은 우희가 일 년 반 동안 다녔던 어린이 집을 마지막으로 가는 날이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5번 마을버스를 타고 고개를 넘고 넘어 다니던 길인데 이제 아파트 안에 있는 가까운 곳으로 다니게 된 것이다. 아람은 고생 끝 편안할 수 있겠구나 신이 났다. 우희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사코 어린이 집을 가기 싫다고 한다.

"선생님, 오늘 마지막 날이에요. 우희가 이별이란 걸 아는가 봐요. 어제 방과 후에 막 울더라고요."

"우희가 뭐래요?"

도톰한 입술의 주근깨가 있는 신민희 선생님이 우희의 떠나는 마음이 궁금한지 묻는다.

"아침부터 그네 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람은 어제 눈가에 눈물을 보이던 정든 선생님의 마음에 불을 지필까 대뜸 찬 물을 끼얹었다.

"오늘 맨 발로 돌멩이 밟기 할 건데! 그리고 친구들이랑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요."

아람은 이별을 대처하는 방법을 이리도 잔인하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신민희 선생님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우희 역시 오늘 따라 유난히 넓어 보이는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감당하기 버거운 듯 바닥에 주저앉는다. 반 아이들은 우희를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 친구와 나란히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도 문 앞에서 들어오지 못하는 우희를 한 번 돌아본다.

"우희야, 빨리 들어와!"

어린이 집 안방마님 서영이가 우희를 챙긴다. 처음 친구를 맺었으면 쭉 함께 가는 건데, 4살밖에 안 된 우희가 벌써 이별을 경험하는 것만 같아 아람은 뭐라 해줄 말을 찾는다.

"우희야, 엄마가 우정이 낳고 우희랑 헤어져있었지? 그때 엄마가 아파서 우희가 할머니랑 지냈잖아! 그렇지만 우리가 다시 만났잖아? 친구들하고도 다시 만날 거야, 지금 헤어져도 나중에 또 만날 거야, 우리는 이사 가는 게 아니니까".

그제야 우희는 눈물을 그치고 웃는다. 아람은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담아 온 방울토마토 용기의 뚜껑을 열어 하나씩 건넸다. 웬일로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나씩 받아먹었다.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time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오랜만에 처음으로

이걸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처음으로 오랫동안

처음으로 오래도록


아람은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번역에 관한 <까뮈에게서 온 편지>란 책이었는데 영어에서든 불어에서든 이런 표현은 아주 흔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말 표현으로 문법과 의미를 모두 만족시켜줄 적확한 우리말 표현을 찾지 못했다고 작가는 번역의 고통을 토로했다. 그리곤 '오랜만에 다시'를 발견했다. 아람은 '해후'란 단어가 생각났다. 하지만 이 뜻은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 밖에 다시 만남'이란 뜻이다. '오랫동안 만났다가 뜻 밖에 헤어짐'이란 단어는 없을까? 없는 것 같다. 만남과 이별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건데 해후의 반대말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제일 적합한 것은 '백 년 만에'가 아닐까 라고 아람은 생각했다. 얼마나 오랜만에 처음으로 아람은 이별을 경험한 것인지 모른다. 백 년 만이다. 시리고 안타깝다가 슬퍼지는, 감정적으로 철철 피를 흘리게 되는 그런 이별 말이다. 비록 정확히 말하자면 우희가 하는 간접적인 이별이지만 말이다. 아람은 그동안 우희와 친구들이 어떤 우정을 쌓았고, 선생님으로부터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일이 늦은 우희는 반에서 가장 작았기에 친구들이 귀여워해 주고 키가 큰 준호는 우희를 오빠처럼 돌봐주었던 것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우희의 머리를 두 갈래 세 갈래 땋아준 선생님은 무척이나 아쉬워한다는 걸 아람은 보았다. 이별 후엔 언제나 술이었다. 그중에서도 소주. 다음 날은 자장면이나 돈가스로 젊은 시절의 아람은 허한 빈 속을 채웠다. 그런데 방울토마토라니?!  이다지도 메말라 버렸나 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람은 엉덩이 춤을 추고 있었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게 입 안에서 터지는 방울토마토가 그렇게나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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