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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Jul 20. 2018

입술을 깨물다

미워도 다시한번

조금전까지만 해도 채연은 공주였었는데  갑자기 모든게 바뀐 듯했다. 어딘가 모르게 장막이 쳐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친절하기만 했던 요스케는 옆에 있던 얌수안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답게 보인다.

다정했던 텍림은 채연에게 사랑 상담을 한다.

"난 컴퓨터 잘하는소연이가 너무 좋은데 갠 나한테 관심이 없을거야."

게다가 밭까지 한 술 더 떠 채연을 놀리기까지 한다.

"채연, 머드, 유아 머드".


'뭐??? 진흙??? 나보고 진흙이라고??'


채연은 기분이 너무 상한 나머지 밭을 한 대 때려주고 싶지만 꾹 참는다. 

"바트, 유 티징 미?? 노!!!! 대츠 노! 노! 굳! 배드!"


그러는 사이 찍은 사진들은 파일로 한 데 묶여 스튜디오 작업실에서 소연이 포토샵 작업을 한다.

소연은 모니터 위에 사진을 띄워놓고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 본다. 그 주위에 텍과 밭, 요스케, 얌수완 등등 우르르 몰려 앉아 웅성웅성 이야기 꽃을 피우는 건지 싸움을 하는 건지 회의를 한다. 


그러는 사이 채연은 천교수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중이다. 평소 교수님은 SUV 차를 타고 다니는지라 채연은 돈이 많은 줄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태리 식당에 구불구불 파스타 면을 앞에 두고 먹게 되자 현실처럼 느껴진다. 갑자기 교수님이 남자처럼 느껴진다.

"채연아, 조교 노릇하느라 수고 많았다. 이제 심사만 남았는데 아무래도 우리 A팀이 B팀보다 작품이 잘 나와서 이기게 될지 출품은 하는 거지만 상금까지 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쪽 팀 작품이 불국사의 역사적 고증을 더 심화시켰다고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더 산 모양이더구나."

채연은 공연히 들뜬 마음이었는데 천 교수의 상한 마음과 반쯤 질책에 반성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다가도 엉뚱하게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그럼 점수를 낮게 받았다고 혼내시면 될 일이지 굳이 왜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오셔서 밥을 먹이시는거지? 부담스럽게시리...'

천 교수는 곧 이어 말을 잊는다.

"그런데 다행히도 한 심사위원 분께서 말씀하시길 비록 작품성은 깊이가 떨어질지언정 신선한 독창성은 높이 살만하다면서 저런 사진의 느낌을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하다고 하셔서 출품이 된거다."

채연은 오늘 하루종일 조롱 아닌 놀림을 들어 주눅이 든 상태에서 천 교수의 조금은 낙관적인 말에 약간은 안심한다.

"어쨌든 너도 고생 많았으니까 이따가 저녁까지 마무리 잘 하자." 

채연은 소연으로부터 별빛 불국사 이미지를 받아 보고 흐뭇해 한다.


저녁, 해운대 앞 바다에서 선상 파티를 한다.

채연과 요스케, 천 교수와 텍림, 소연과 얌수완 등등 모두 샴페인을 들고 마신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파티가 끝나고 난 뒤, 상금도 상패도 없이 채연은 서울에 돌아왔다. 상혁도 지금쯤 해외에서 돌아 왔을텐데 연락이 없다. 채연은 하릴없이 식탁 앞에 앉아 사과 쥬스를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전화가 걸려 왔다.

상혁이다.


"너, 나 만날래?"

"그으래! 언제??"

"지금 당장."

"좋아!"


채연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혁을 다시 만나면 정말 잘 해줘야지 열심히 사진도 찍고 필요한 게 있으면 해달라는 게 있으면 다 해줘야지'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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