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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Jul 23. 2018

입술을 깨물다

피곤에쩔어

"너 오피스 업무 할 줄 알지?" 

"뭔데?"

"이메일로 작업 들어오는 거 받아서 넘기는 일이야, 근데 잘해야된다".

"알았어."


상혁은 채연에게 포토샵 교정 보는 작업을 맡기고 돈도 줄테니까 3달 간 일을 해보자고 했다. 채연은 상혁은 역시 일할 때가 가장 멋있구나란 생각이 들었고, 시키는 일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아침9시까지 출근, 저녁에는 7시 퇴근, 그렇지만 정신없는 아침부터 늦은 오후를 보내고 난 후 막상 일과 정리를 하다보면 한 시간은 잡아 먹다보니 진짜 퇴근은 8시가 훌쩍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나라도 빼 먹으면 안되니까 오늘 한 일 하나씩 메모 남기고, 내일 해야 할 일은 또 따로 체크해 놓고, 그래도 뭔갈 꼭 하나 놓치고 가게 될 때가 있지만 그럴 땐 에이 별일 없겠지 그냥 튀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대충 퇴근을 한다. 그렇게 빡빡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녁에 만나자는 친구들.

시간이 안되는데...

피곤한데...

내일 또 일찍 나가야되는데...

뭐? 영철이 생일이라그?

그럼 또 가야지...

게다가 맨 손으로 갈 순 없으니 선물이라도 하나 사들고 가야겠지..?

길거리에 파는 가성비 값 야구 모자. 영철이 걘 머리통이 작아서 잘 어울릴 거야.

채연은 4호선 명동역에서 잠시 내려 가판대에 늘어선 싸구려지만 최신 유행의 액세서리들 중 빈티지 카키색의 야상 민무늬 야구모자를 하나 구입했다.

생파를 적어도 패밀리 레스토랑 정도는 가줘야하는 거 아닌가? 장소에 가보니 분식점 + 주막집 분위기의 아저씨 어줌마들이 들실거리며 어딘가 칙칙하다. 채연만 가슴 골이 확 파진 원피스에 나풀거리는 샌들을 신고 하얀 uv 파우더를 떡칠 하고 빨간색 립스틱을 발라 이곳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고딩친구들. 찌질이들. 얘네 왜 이렇게 구리지?

그 중 남자 하나가 선물을 건넨다.

"담배 한 보루."

무슨 생일 선물인데 담배를 선물로 주지??

"나도 선물 샀어, 맘에 들지 모르겠다."

채연은 그래도 공짜 생일밥을 얻어 먹는구나 맥주 한 모금을 마시니 시원하다.

영철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생일이라고 친구들이 모두 와 축하해주니 맥주도 한 잔 들어갔겠다 희죽희죽 웃는다.

영철이 채연에게 맥주를 따라주며 짠하자고 잔을 내민다. 그리곤 빈 접시를 들고 가 강냉이를 수북히 담아와 채연 앞에 놔준다.

"너 이거 좋아하잖아."

'완전 자상~~자상~~얼굴도 못생겼는데 왜 내 가슴이 뛰는거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불쑥 영철이 묻는다.

"넌 날 어떻게 생각해?"

'뭐? 넌 그냥 고딩 동창이잖아. 사실 난 널....얼굴에 털 많은 남자라고 생각해'

내가 무슨 소릴하는거지??

마침 친구들은 모두들 담배를 피러갔는지 화장실을 가는지 자리에는 채연과 영철만 남았다.

"수염 한 번 만져봐도 되??"

채연은 술김에 영철이 면도를 안하고 기른지 한 달은 족히 넘었을 길이의 시커멓게 자라난 수염이 아까부터 신기했기에 용기를 내어 묻는다.

영철은 아무 말 없이 만져보라고 얼굴을 들이민다.

촉감이 매끄럽다. 


그날 늦은 밤, 전화가 걸려왔다.

"왜 전화했어?"

"뭐하던 중이었어?"

"자던 중이었는데.

"아, 그래,"

"왜 할 말 있으면 계속 해."

"아니야, 그럼 자던 대로 계속 자."

'왜 새벽 1시에 전화를 걸었지?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놈이네.'

영철은 엄하게 잘 자고 있는 채연을 한 밤중에 깨워놓고 그냥 다시 자라는 말을 남긴 채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일 출근 해야하는데...갑자기 너무 회사에 가기 싫어졌다. 내일 해야할 일이 뭐였더라???

괜히 마음만 싱숭생술하고 일은 손에 안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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