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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Jul 26. 2018

입술을 깨물다

팔짜 말고 팔찌

채연이 언뜻보면 몸빼바지 같은 나팔거리는 시원한 기지의 화려한 기하학 무늬의 풀오버를 입고 사무실 안을 들어서자 상혁이 오랜만에 일찍 나와 한 마디한다.

"잘 됐네, 오늘 세트 작업하는 거 알고 작업복 입고 온거야?"

채연은 어이가 없어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무슨 소리야?? 이거 디자이너 옷이야. 이상용인가 이상봉인가 하는 디자이넌데~~!"

상혁은 여지없이 놀린다.

"너 모르는 구나?  밭 맬 때 이런 옷 입고 하잖아."

채연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빈 생수병을 들고 정수기로 가 물을 담아 한 모금 마신다. 그런 모습을 놓치지 않고 상혁이 눈여겨 본다.

채연은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피곤이 누적되서 감기가 안 떨어지는 건지 그도 아니면 먹고 나서 요새 책상 앞에만 앉아있어선지 살도 찐 것 같아 운동도 할 겸 스튜디오 쪽으로 향한다.

빈 벙커, 전선들이 나뒹굴고 바닥에는 구멍도 나 있고 벽은 칠이 벗겨지고, 천정마저 먼지 투성이다.

상혁이 탕비실에 걸려 있던 채연이 집에서 가지고 온 알록달록 과일 그림이 들어간 에이프런을 걸치고 양 쪽 발에 검정 봉다리를 한 쪽씩 묵어 신고 페인트 통을 들고 와 페인트 칠을 천정부터 시작한다.

"으하하하하하"

채연은 항상 잘난체만 하는 상혁만 보다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자 눈물이 날 만큼 재밌다.

"페인트칠 안 묻으려고 비닐봉지 발에 씌운거야?"

상혁은 아무런 대꾸 없이 묵묵히 외벽에 하늘색 페인트칠을 한다.

"너 페인트 칠 안해봤니? 이렇게 천장이랑 벽을 같이 구석부터 칠해야지 나중에 코너에 갇히지 않는거야."

채연은 왠지 오랜만에 상혁이 멋있게 느껴진다.

"오~~~호! 그렇구나!"

그러자 바로 상혁은 비닐 봉지 신발을 벗으며 채연 보고 하라고 시킨다.

"자! 이제 네가 한번 해봐!"

채연은 옳다구나 롤러를 들고 슬슬 문질러 본다. 더럽던 벽면이 마술처럼 예쁜 파스텔톤 하늘색으로 바뀌자 기분이 좋아진다. 상혁이 옆에서 벽돌 모양 PVC를 가져와 타카로 딱딱 벽에 붙인다. 채연이 페인트 칠을 하다말고 다가가 상혁의 총소리같은 타커 작업을 구경한다.

"여기다 붓으로 벽돌 칠 좀 해줘."


처음엔 재밌었는데 하다보니 끝이 없는 세트장 데코레이션. 채연은 이제 바닥에 타일까지 깔아야만한다.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일용직이네 도배쟁이도 아니고 일당 받아야지 아휴~~힘들어!!!'

 '나 인제 안해!' 라고 말하고 싶은걸 채연은 곰곰히 벽돌에 인디언 핑크색과 귤색을 그라데이션하면서 고민하다 과감히 붓을 내려놓고 자리를 뜬다.

 "내가 시간이 있으면 얼마든지 잘 할수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채연이 아쉬워하며 책상 앞으로 떨어져 나가자 상혁이 묵묵히 나머지 마무리를 한다.

책상에 앉아 눈에 불을 꺼고 메일 서신을 쓰고있는 채연에게 상혁이 다가가 선물을 하나 내민다.

흰구슬, 핑크구슬이 교차로 배치된 비즈팔찌가 너무 예뻐 채연은 깜짝 놀란다.

 

"옆 건물에  비즈수제공예 가게가 있는데 지나칠때마다 너무 예뻐서 만들어 보고 싶었거든. 이거 너 줄께."

  

채연은 기뻤던 것도 잠시, '상혁이 쟤는 게인가? 무슨 남자가 비즈수제공예에 관심을 갖냐??'

 

뜨아 싶다가도 조그맣고 올망졸망한 핑크비즈팔찌가 마냥 예뻐 채연은 싱글벙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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