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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Jul 26. 2018

배반의 구조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다

병조가 책상에 앉아 벽에 머리를 쿵쿵 찧는다.

"으어허 으허어 으아아아아~~~~~"

전 팀장과 박 편집의 말이 머리 속에서 메어리를 친다.

"너무 칙칙하잖아요! 전우치는 영웅이에요! 라임 번역 어때요? 재미있게.."

"전우치의 인간 세상으로 부터의 고립된 내면을 신경 써서 번역해 주셨으면 합니다."

병조가 이제는 머리를 문대기 시작한다.

병조가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건다.

"이 책임 님?? 저 이병존데요, 초고 번역본 때문에 미팅을 하고 왔는데... 전 팀장 님하고 박 편집자 님이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두 분이 완전 스타일이 너무 달라요!!!!! 팀장 님은 양진데 편집은 아주 다크 하다고나 할까???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임은 너무나도 침착하게 낮은 목소리로 도닥인다.

"병조 씨가 저희 시스템이 아직 낯설어서 그런가 본데, 예전처럼 번역가가 여관방에 감금돼서 독고다이 식으로 책 걸고 나오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전 팀장도 회사를 위해 하는 거고 박 편집도 다 돈 벌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번역가는 편집자랑 친하게 지내야 되는 거긴 하죠..."

병조가 곰곰이 이 책임의 얘기를 듣고 있다가 전화를 끊고  박 편집에게 전화를 건다.

"편집 자님, 저 이병존데요, 전 팀장 님이 원작은 히어로 콘셉이라고 분위기 다운된다며 코믹하게 방향을 잡으라는데 어쩌죠??"

"... 팀장 말 들을 필요 없어요, 이미 한물갔는데요 뭐, 그 보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전우치의 톤을 바꿔보는 게 어떨까요??? 싸가지 없는 말투 있잖아요,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라던가...응사에 쓰레기..정우 캐릭터 알죠??? 그런 느낌... 인공 지능 도술사 쓰레기 캐릭터로..."

"으흠...의도는 공감이 가는데..."

"포스트 모더니즘이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모더니즘이 웬일이니..."

박 편집이 혼잣말을 하듯 읊조린다.

"하는 데까지 해볼게요".

병조가 전화를 끊고 열심히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번역 수정을 한다.


눈 밑 다크 서클이 내려앉아 피곤에 절은 병조가 <전우치 도술 로봇>_ver 2 파일을 박 편집과 김 팀장에게 각각 보낸다.


전 탐장이 병조가 보낸 번역본 파일을 열어 심각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간다. 무선 마우스로 스크롤을 하면서 간혹 가다 피식 웃기도 하지만 점점 얼굴이 어두워진다.

"번역가 님?? 팀장인데요, 이번 거 버전 맘에 들긴 하는데... 전우치가 슬랭을 쓰던데... 이거 좀 많이 거슬려요!!"

"재밌을 것 같아서 바꿔봤는데.... 아직 혀가 덜 풀려서 그렇지 느낌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원작에 충실하세요!!"

전 팀장이 매몰차게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자 병조가 이 책임에게 또다시 전화를 건다.

"이ㅡ책임 님??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인데... 전 팀장 님이랑 박 편집 님 스타일이 다르세요!! 이러다 엎어지는 건 아닌가 지금 총체적 난국이에요!!!"

병조는 거의 혼이 오락가락한 지경에 이 책임에게 자문을 구한다.

"저희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으셔서 그러신 건데, 번역가 님은 번역가 님 작업만 열심히 해주시면 됩니다. 어그러질 일은 없을 거예요."

"... 겁나네요 좀.. 책임님 말 듣고 박 편집 의도대로 갔는데 이러다 나까지 개 될까 봐..."

병조가 속마음을 터 놓자 이 책임이 현실적으로 말한다.

"흠... 그냥 무시하세요. 지난 분기 미래 세상에서 낸 매출이 몇 백억대예요, 팀장도 잘하고 있고 편집도 최선을 다하는 거니까 병조 님도 원하는 걸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병조가 전화를 끊고 다시 차분히 책상 앞에 앉아 번역본을 들여다본다.


슬랭은 그대로 두고, 오타 철자, 줄 바꾸기, 따옴표와 마침표 등 눈에 띄는 기호들을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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