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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ug 20. 2018

양다리

아름다움이란

원영이 의상학과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라면 누구나 돋보이고 사랑받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거지 같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단 화려하게 혹은 깨끗하게 옷을 입으면 사람이 예뻐보이고 달라보이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뒤돌아 볼 정도의 초미녀라기 보단 노력하고 꾸며서 예쁜 쪽이었기에 원영은 늘 부지런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성격까지 쿨했다. 남자에게도 함부로 정을 주지 않는 프라이드가 있었는데 그런 원영이 어설프게 상혁때문에 사랑과 일, 두 가지를 한꺼번에 잃어버린것이다.


하지만 원영이 더 슬픈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아름다움에 대해 매진해왔었는데, 예쁜 옷 만들기, 이젠 더 이상 의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이다.

"이게 예뻐, 보면 몰라!!??"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이젠 한번 더 생각하게 되버렸다.

'어, 이것도 예쁜데. 저것도 예쁘구, 아~~이게 제일 예쁘다~!!

젠장!!! 음악에 절대 음감이 있다면 음식에도 절대미각이 있다면 아름다움에도 황금비율 이란게 있어야하거늘,'

감각과는 다른 것이다. 감각은 언제나 살아있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하는 기로에 섰을 때 결정을 해야한다는 건 나빠져야만한다.

그리고 희망고문을 다른 이에게 주는 것도 민폐다.


그러다 문득 원영은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에 원영은 한창 디자인을 했을 때의 그 파릇파릇하던 생기도 사라지고, 툭하면 삐지고 울고 웃던 솔직함도 사라지고, 맘에 들면 절대 고집을 굽히지 않던 기도 꺾여버렸다. 꼭 상혁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늙어버린 것이었다.


'내가 그 때 잘만 됐엇더라면 지금쯤 아마 애가 두 돌은 됐을텐데..복도 지지리도 없지.'


원영은 아름다움의 기준이 더이상 반드시 꼭 화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상실감에서 오는 촉촉한 외로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긍정적으로 나아가는 불혹의 아름다움도 좋을 것 같은데,..

아니면 말이다. 그냥 아름다움이란 것 포기해 버리면 안될까? 남에게 사랑 받으려고 했던것이 발목을 잡혀 사랑을 주고 싶었는데, 이젠 사랑이 자신없어졌다.


다시, 사랑받고 사랑 줄 수 있을까?

다시, 감동하고 감동 줄 수 있을까?

아름다워지고 아름다움으로 잠시나마 시름 따위는 잊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뒤로하고 원영은 디자인 드레스를 그리던 스켸치북을 이만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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