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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16. 2016

먹는 여자

병원과 연어

우정이 어린이 집에서 누런 콧물을 달고 온 덕분에 아람은 새벽에 잠을 설쳤다. 콧물만 흐르더니 곧 지나 기침을 시작했고 밤 새 열이 39.9도까지 올라 쐑쐑 거친 숨소리를 고르며 잠이 들기까지 열을 떨구느라 양말 족욕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보채는 우정을 안고 소아과를 향해 아람은 집을 나섰다. 오전 10시인데도 태양은 뜨거웠다. 황사와 환경 호르몬과 수분 부족으로 우정의 속살은 벌겋게 땡땡 부어 올라 바싹 마른 피부 껍질이 벗겨질락 말락 하고 있었다.

우정의 응급상황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문방구가 보이자 아람은 멈춰 섰다. 선풍기 비눗방울, 마술 봉, 낚시 세트, 공주 화장대까지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돌고래 모양의 비눗방울 하나, 콩순이와 헬로 키티 스티커를 하나씩 들고 문방구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계산해 주세요, 여기 유아용 무독성 물감은 없나요?"

문방구 아줌마는 크레파스와 색연필 세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있는 것들 다 무독성이에요."

아람은 붓 세트와 물통은 버젓이 있는데 그림물감이 없는 것이 의아했다. 하긴 며칠 전 우희와 우정은 아람의 전문가용 한국화 물감 한 통을 전부 짠 후에 손바닥으로 비볐다. 발견 즉시 들고 화장실로 직행을 했어야 하는데 아람은 그 대신 말을 하고 말았다.

"그대로 나가자! 먹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

살금살금 아람이 발을 떼는 순간 우희가 톡 손가락으로 먹을 건드렸다. 그렇게 베란다 바닥을 암흑의 세계로 만들어 버렸으니 물감은 무리겠구나 아람은 단념했다. 돌멩이를 어디서 주워와서 맨 붓에 물 칠이나 하며 놀아야겠구나 싶어 붓 하나 달랑 사들고 아람은 다시 소아과로 바삐 발 길을 옮겼다.

병원은 원래 다니던 곳을 쭉 다니는 게 좋다지만 아람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편이었다. 슈퍼라든가 문방구처럼 말이다. 병원뿐 아니라 교회, 학교, 심지어는 직장도 참 여러  옮겨 다녔다. 외국 생활을 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람은 한 곳에 머무르는 것에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돈은 쌓이질 않았지만 한 가지 얻은 것은 어디가 좋고 유명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으며 무조건 좋지만도 결코 나쁠 것도 없다는 점이다. 조금씩 특징이 다를 뿐 하나가 좋으면 하나는 비었다. 장사가 되려면 어쩔 수 없이 이문을 남길 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 가게는 어쩌면 문을 닫아야 될 지도 모른다는 걸 아람은 헤아리고 난 뒤로 여기저기 발품을 팔며 조금씩 아끼는 것이 진리라고 맹신했다. 가끔은 충동구매로 이어져 좀 보태서라도 단골을 만드는 것이 나을 수도 있으나 아람은 그도 하나의 재미라고 여겼다.    

오늘도 몇 번 갔었던 소아과 대신 새로 생긴 곳에 아람은 가보기로 했다.

'부처님 오신 날 주말에 쉽니다.'         

아람은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다행히도 건너편 소아과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우정아, 큰일 날 뻔했다. 얼른 병원 가서 약 받아오자!"

그곳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좋은 진찰을 해 주었다.

"코와 기침 증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열까지 있다는 건 감기가 더 심해진다는 거 아시죠? 그리고 목 아래 부분은 아토피가 심한데 처방해 드릴게요"

아람은 항생제를 너무 많이 쓰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진찰비가 더 나올까 봐 냉큼 피부약은 집에 있으니 괜찮다고 대꾸했다.

"돌 전 증일 수 있어요."

"돌 전 증이요? 그게 뭐예요?"

"돌 전에 아픈 거예요."

아람은 언뜻 도전장이라고 잘못 듣고 깜짝 놀라 의사 선생님에게 되물었다가 웃겨서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간호사는 아람이 예상치 못한 계산을 했다.  

"진찰비는 석가탄신일이라 좀 더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어리둥절한 부분이 많았지만 응급 상황에 병원 문을 열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아람은 알았다고 하고 약국으로 갔다. 약사에게 처방전을 건네고 기다리는 동안 아람은 비타민이며 아이용 영양 보조제 식품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애가 어려서 못 먹어요."

퉁명스럽게 말하는 약사를 아람은 째려보았다. 비타민 사탕과 칼슘 캔디를 하나씩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으면 아람은 말했다.

"이것도 주세요."

의사는 사람을 가지고 놀고 약사는 협박꾼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람은 괜히 병원에 가서 병만 얻어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감기가 들면 약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밥 안 먹겠다고 반항하는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담아 밥을 먹여야 하고 잠 안 자겠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엎고 토닥거려줘야 하는 것이라고 아람은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람은 품 안에서 잠이 든 우정을 눕히고 우희와 우현을 먹이기 위해 아침을 차리기 시작했다. 연어를 버터에 굽고 양파를 갈고 간장과 마요네즈를 섞어 소스와 연어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아스파라거스를 마저 볶았다. 밥 솥을 꺼내와 식초와 설탕과 소금을 섞어 밥을 쥐고 그 위에 남은 연어를 납작하게 썰어 얹어 초밥을 만들었다. 양상추를 씻어 접시 바닥에 깔고 남은 연어를 다시 깍두기로 썰고 올리브도 세 동강 내서 넣고 요거트를 뿌려 연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구운 김을 부시고 구운 연어도 부셔서 꼬마 주먹밥도 만들었다.

우현과 우희와 우정을 먹이고 아람은 집을 나섰다. 아무리 고급진 요리도 만든 사람은 먹기 싫기 때문이다. 샘 킴 요리사는 떡볶이도 좋아하고 치킨을 자주 시켜 먹는다고 했다. 아람은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서빙하는 여자들은 중국 말로 얘기를 했다. 아람은 안 쪽에 앉아 삼선 자장면을 시켰다. 재스민 차를 마시고 옥수수 맛탕까지 후식으로 먹고 나니 아람은 다시 집으로 들어갈 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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