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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20. 2016

먹는 여자

고비와 갈비탕

어제 아람은 아보카도 주스를 사서 막 한 모금을 마셨을 때 어린이 집에서 전화가 왔다.

"우희가 오전엔 괜찮았는데 점심부터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체온이 높아서요".

"당장 갈게요."

우희는 얼굴이 벌겋게 타올라 혼자 사막을 횡단하고 있는 듯 입술은 바싹 메말라 있었고 지친 표정에 눈이 풀려있었다.  태양은 유난히 뜨거웠다.

"엄마 뜨거워"

다 죽어가는 소리로 우희는 아람에게 안겼다.

"병원에 갈래?"

아람은 우희를 업고 우정을 유모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니 모니터 위에는 마치 생식 기관으로 보이는 듯한 포르노 느낌의 화면이 떠 있었다.

"애가 아직 어린데 어린이 집을 일찍 보내시네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집에 좀 데리고 있지 않고 뭐하세요?"

새로 옮긴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아람의 일상을 묻더니 조심스레 충고를 했다. 아람은 엊그제 맞닥뜨렸던 택시 아저씨와 어딘가 청바지를 입은 의사 선생님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가정 주부도 할 일이 많아요. 집에만 있다고 안 바쁜 게 아니거든요."

아람은 대꾸를 하고 눈치를 봤다.

"근데 다른 병원에선 애가 기관지가 약하다고 하던데 진짜 그런가요?"

의사 선생님은 옳다구나 반격의 일침을 가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모니터를 가리키며 설명을 했다.

"여기 이 고비 보이시죠? 이 정도면 많이 부어 오른 거예요. 후두염이 있는데다가 허옇게 됐으면  꽤 시간이 지난 건데 감기를 오래 달고 있었나요?"

아람은 갑자기 울컥 싶었다. 그동안 우정이를 본다고 우희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주사를 한 방 맞고 코로 가습을 하는 동안 아람은 우희 옆에 앉아 연신 사과를 했다.

"우희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우희는 듣는지 마는지 작은 액정 속 뽀로로를 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배가 고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라면을 끓이고 빵을 뜯어먹다가 커피를 후식으로 마시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될 것만 같았다. 냉장고에 얼려 놓았던 스테이크 고기를 꺼내 갈비탕을 끊이기로 했다. 찬 물에 고기를 담가 핏물을 뺄 동안 배즙을 만들었다. 과일 상자에서 배를 꺼내와 과도로 하나씩 깎은 후 믹서기에 망을 꽂아 조각낸 배를 갈았다. 배 네 개를 착즙 하니 1.5 리터 유리병이 가득 채워 졌다. 우선 우희와 우정에게 한 컵씩 먹이니 아이들은 맛있는지 꿀떡꿀떡 서 너 잔을 해치웠다. 아람도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생각보다 달지 않았다. 밍밍한 맛이었다. 무 두 도막, 파 두단, 양파 반 토막, 마늘 8 쪽을 다시마와 함께 물을 따라 놓은 냄비에 넣고 아람은 육수를 끓였다. 고기에 핏 물이 빠질 데로 빠지자 아람은 청주를 반 컵 붓고 냄비에 마저 넣어 한 시간을 약한 불에 끊였다. 당면을 찬 물에 담가 풀어놓았더니 이내 흐물흐물해졌다. 빈 그릇에  국물을 붓고 당면을 끌어다 깔고 고기를 찢어 올리고 나니 먹음직스러웠다. 아람은 국물을 한 입 떠먹어 보니 첫맛은 끝내 줬지만 MSG에 익숙한 그녀 입맛에는 역시나 싱거웠다.

"우와 짱 맛있다!"

아람의 속임수에 넘어가 먹고 싶은지 우희가 가까이 다가왔다.

"나도 고기 주세요"

아람은 우희의 입에 고기를 넣어 주고 국물을 떠 먹여 주었지만 우희 역시 고개를 내 저으며 몇 입 그 이상 먹지 않았다. 좀 전에 모니터로 보았던 우희의 목 젖 옆 허옇게 낀 고비가 아람은 떠올랐다. 애를  키우진 못할 망정 애를 아프게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아람은 책임감을 느꼈다.

고비: 일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나 대목. 또는 막다른 절정.

아람은 대접에 갈비탕을 한 그릇 담아 훌러덩 먹었다. 그제야 우희도 쪽쪽 고기와 국물을 받아먹었다.

맛이 달랐다. 이 맛에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람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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