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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19. 2016

먹는 여자

동물과 팥빙수

어렸을 때부터 아람은 아빠한테 무지 맞았다. 딱히  매로 맞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도구로도 그렇다고 주먹으로 맞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손바닥으로 인정사정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았다. 그렇게 맞고 나면 이마가 벌겋게 부어올라 창피해서 밖에 나가질 못했다. 억울한 마음에 펑펑 울면 두 눈두덩이 까지 심하게 부어올라 앞을 잘 볼 수도 없었고 드러누워 잠자는 것밖엔 할 일이 없었다.   그럴수록 아람은 마음속 깊이 복수심을 활활 태웠다.

'무식한 아빠! 나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아빠는 625가 발발 했던 해에 전쟁 고아로 태어 나 군사 정권 때는 말 못하며 눈치만 보던 시절을 사신 것이다.

그리고 아람이 닥치는 대로 고기와 빵을 흡입하던 시절,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몸무게는 80킬로에 가까웠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아빠는 아람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한 번은 아람이 묵직한 몸으로 아빠를 살짝 밀었을 뿐인데 가냘픈 몸매의 아빠는 휘청하더니 넘어질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아람은 네이버에 뜬 흉흉한 기사들을 읽으며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다.


트렁크 살인 김일곤 사형 구형... 마지막 할 말 묻자 겸찰, 양심 없다.

강남역 여자 시체


'서양적 사고로는 살인은 무조건 나쁜 것이므로 살인자는 사형을 처한다'이다. 맞는 말이다.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글쎼, 돈이 들어서 낭비긴 하지만 그냥 감옥에 가둘까?'


엊그제 아람은 택시를 탔다가 금세 후회를 했다. 늦더라도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택시 운전사와의 불화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버스 운전사나 지하철 기관사와는 대화를 나눌 일이 없는데 택시 아저씨들은 그렇게도 말이 많다.


"여자들은 남자를 이길 수 없어요.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못 당해요."

대뜸 택시 아저씨의 말에 아람은 덜컥 겁이 났지만 애써 안 그런 척 대꾸했다.

"말로 하면 될 것이지 남자들은 정말 무식하네요."

"맞아요. 남자들은 그래요."

그러고 나서 아람은 더 무서워졌기에 택시 안은 공포로 싸해졌고 괜히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엉뚱한 이야기를 꺼 냈다.

"요새는 그렇게들 불륜을 많이 하나 봐요? 택시 운전하면 다 아실 거 아니에요?"

"밤에 남자 여자가 택시를 타면 80프로가 불륜이에요. 나이 많은 남자한테 어떤 여자가 오빠라고 부르겠어요. 안 그래요?"

아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마누라가 싫어하니까 그럼 남자가 밖으로 나가서 바람피우는 건데 그러면 여자는 눈 감아 줄 수도 있죠."

아람은 택시 운전사의 말에 울컥해서 반격을 했다.

"요새는 여자들도 어린 남자를 만나기도 할 걸요?"

"말은 그렇긴 해도 여자들은 남자보다 수동적이라 별로 그렇진 않죠."

"있을 걸요! 아니 많을 걸요!"

아람의 대꾸에 또다시 택시 안은 찬 물을 끼얹은 듯 싸해졌다. 다행히 목적지에 다 달아 아람은 냉큼 우희와 우정이의 장난감을 빌리러 육아 센터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골프 세트와 스마트폰 장난감을 냉큼 빌리고 아람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때 깡 마른 체격과  아담한 키의 할아버지가 다가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애들 장난감 갔다 주는 가 보네요!"

아람은 할아버지에게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네!"

"웃으세요"

할아버지는 말꼬리를 살짝 올리며 마치 아람의 웃음이 못마땅하다는 듯 되 받아 웃었다.

아람은 문득 무서운 상상이 떠올랐다. 이 좁은 공간에서 저 할아버지랑 몸싸움을 하게 되면 이길 수 있을까? 고등학생 때 아람은 덩치가 컸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때의 아빠가 지금의 저 할아버지보다 젊었었다. 아람은 아마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 둘을 낳고 몸이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고 아람은 지레 혼자서 패배를 인정했다.


또 다시 아침에 읽은 기사가 떠올랐다. 아니 말로 하면 되지 도대체 왜 강남역 그 남자는 생판 모르는 여자를 죽인 걸까? 김일곤 그 자는 왜 마트에 장 보러 온 주부를 살해한 걸까? 기사에선 김일곤이 장애자이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으며 사회는 부조리하고 풍토는 날이 갈 수록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가해자들의 주장이 있었다.  하긴 아람도 한 때는 아빠를 밀지 않았던가?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빠는 아람을 때렸으니 아람도 똑 같이 아빠를 때려야겠다는 철 없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밀려 나자 아람은 아빠가 존경스러워 졌다. 아람을 이만큼 돼지로 만들기 위해 먹이느라 골이 다 빠지셨구나란 죄송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살인자들은 용서할 수 없다고 아람은 생각을 굳혔다. 그저 웅장한 갈기를 휘날리던 퇴물이 된 식인 사자가 힘자랑을 하고 싶어서 사람을 죽인 것 이란 생각이 아람은 들었다.

'똥은 무서우니까 피해야지!'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복사열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5월, 아람은 시원한 팥빙수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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