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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pr 29. 2016

먹는 여자

에그 토스트와 페인트

날씨는 정말 화창하다. 다행히도 미세먼지 농도는 간당간당하게 안전선 안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주말 내내 벌여 놓은 곰팡이 제거 마무리를 해야 한다. 아람은 페인트 칠을 하기 위해 날씨를 체크했다. 이 보다 더 최적의 날씨는 없을 듯하다. 비 올 확률 0%, 습도 31%, 서남서 방향으로 초속 1m로 바람이 불어 주고, 기압은 1,013 mb, 체감 기온은 21도이다. 지난겨울 내내 결로 현상으로 개고생을 했기 때문에 넋 놓고 앉아서 카톡 수다를 떨 여유가 없다. 아람은 페인트 칠 장비를 준비한다. 마스크, 장갑, 작업복,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야구 모자까지 장착을 했다. 누가 볼까 겁나서였을지도 모른다. 이웃집에 얼굴 팔리고 싶지 않았다. 페인트 칠을 할 때 어떤 표정이 나올지는 안 봐도 뻔하기 때문이다. 눈은 사팔이 될 것이고 양 미간은 잔뜩 찌푸려질 것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표정을 지었다가는 십중팔구 욕을 얻어먹을지도 모른다. 알고 나면 은근히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이웃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집에서 내가 페인트 칠을 하겠다는데 얼굴까지 가리고 해야 한다니... 아람은 그 발상이 더 쪽팔리다는 생각에 그걸 또 무마하려고 혼자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미친년처럼 깔깔 댄다.   

 

대체로 청명한 하늘. 그래, 음악으로 대답을 해주기 위해 오디오 채널의 음악 볼륨을 크게 틀었다. 마침 힙합이 터져 나왔다.  하얀색 제소를 붓으로 듬뿍 찍어 누렇게 잘 마른 벽에 바른다. 힙합이 끝나고 여자 가수의 달콤한 팝 음악이 흐른다. 가스펠 멜로디가 흐르며 가슴을 두드리는 남자 가수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람의 손목도 바쁘게 움직인다. 대학 때 서양화를 전공했었는데 전공을 이보다 더 충분히 살릴 수 있을까란 비참한 생각이 스칠 찰나가 없다. 그녀의 작은 붓으로도 벽 한 면은 금세 메워졌다. 눈도 따갑고 손목이 시큰거린다. 오전에 봐 온 장이 올 때가 됐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벌써 시간이 지난지 한 참인데 점심도 못 먹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뭐가 그렇게 무겁다고 계란, 그걸 하나 못 들고 왔을까란 후회가 된다. 배가 고프다.


계산대에 캐쉬어가 바뀌었다. 야무지게 생긴 검은 눈과 조그만 코와 봉긋 솟은 입술의 아줌마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질 않았다. 새로 오신 아줌마는 척 봐도 피부가 하얗고 머릿결마저 윤기가 흘렀다.


"봉투에 담아 주세요"

캐쉬어는 아람이 잠시 한 눈을 파는 틈을 타 말했다.

힘겹게 봉투에 방울토마토 한 통과 1.5리터 흰 우유, 비피더스 요쿠 루트 세트, 라면 봉지 세트까지 종량제 봉투에 담다가 아람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 전 캐쉬어는 담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 배달해 주세요"

"계란은 깨질 수 있습니다. 가져가시겠어요?"

"네, 아니요! 계란까지 배달해 주세요"


그때 딩동 하고 벨이 울린다.

후다닥 문을 여니 아저씨가 계란 한 판을 내민다.

"이거부터 받으세요"

아람이 냉큼 계란을 받는다.

"감사합니다"


대접에 계란 세 개를 깨서 풀고 포크로 휘휘 젖는다. 냉장고 문을 열어 저지방 우유를 꺼내 좀 섞는다. 프라이팬에 해바라기 기름을 두르고 계란물을 주르륵 푼다. 식빵 한 장을 꺼내고 꿀을 지그재그로 넓게 뿌린다. 포크로 계란을 한 번 뒤집고 두 번 뒤집고 접시에 옮겨 담는다.


음악 소리를 줄이니 바람 소리가 들린다. 아람은 하찍얗게 바른 페인트가 솔솔 마르고 반짝반짝 코팅되기를 바라며 꿀을 듬뿍 찍어 에그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먹고 두 입 베어 먹는다. 저지방 우유의 비릿함이 느껴진다.  왠지 그 비릿함이 싫지 않다. 랩 운율과 함께, 새 지저귀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린다.

' 이제 페인트가 잘 마르기만 하면 되겠지..'

아람은 커피를 마시며 입가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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