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 토스트와 페인트
날씨는 정말 화창하다. 다행히도 미세먼지 농도는 간당간당하게 안전선 안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주말 내내 벌여 놓은 곰팡이 제거 마무리를 해야 한다. 아람은 페인트 칠을 하기 위해 날씨를 체크했다. 이 보다 더 최적의 날씨는 없을 듯하다. 비 올 확률 0%, 습도 31%, 서남서 방향으로 초속 1m로 바람이 불어 주고, 기압은 1,013 mb, 체감 기온은 21도이다. 지난겨울 내내 결로 현상으로 개고생을 했기 때문에 넋 놓고 앉아서 카톡 수다를 떨 여유가 없다. 아람은 페인트 칠 장비를 준비한다. 마스크, 장갑, 작업복,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야구 모자까지 장착을 했다. 누가 볼까 겁나서였을지도 모른다. 이웃집에 얼굴 팔리고 싶지 않았다. 페인트 칠을 할 때 어떤 표정이 나올지는 안 봐도 뻔하기 때문이다. 눈은 사팔이 될 것이고 양 미간은 잔뜩 찌푸려질 것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표정을 지었다가는 십중팔구 욕을 얻어먹을지도 모른다. 알고 나면 은근히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이웃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집에서 내가 페인트 칠을 하겠다는데 얼굴까지 가리고 해야 한다니... 아람은 그 발상이 더 쪽팔리다는 생각에 그걸 또 무마하려고 혼자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미친년처럼 깔깔 댄다.
대체로 청명한 하늘. 그래, 음악으로 대답을 해주기 위해 오디오 채널의 음악 볼륨을 크게 틀었다. 마침 힙합이 터져 나왔다. 하얀색 제소를 붓으로 듬뿍 찍어 누렇게 잘 마른 벽에 바른다. 힙합이 끝나고 여자 가수의 달콤한 팝 음악이 흐른다. 가스펠 멜로디가 흐르며 가슴을 두드리는 남자 가수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람의 손목도 바쁘게 움직인다. 대학 때 서양화를 전공했었는데 전공을 이보다 더 충분히 살릴 수 있을까란 비참한 생각이 스칠 찰나가 없다. 그녀의 작은 붓으로도 벽 한 면은 금세 메워졌다. 눈도 따갑고 손목이 시큰거린다. 오전에 봐 온 장이 올 때가 됐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벌써 시간이 지난지 한 참인데 점심도 못 먹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뭐가 그렇게 무겁다고 계란, 그걸 하나 못 들고 왔을까란 후회가 된다. 배가 고프다.
계산대에 캐쉬어가 바뀌었다. 야무지게 생긴 검은 눈과 조그만 코와 봉긋 솟은 입술의 아줌마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질 않았다. 새로 오신 아줌마는 척 봐도 피부가 하얗고 머릿결마저 윤기가 흘렀다.
"봉투에 담아 주세요"
캐쉬어는 아람이 잠시 한 눈을 파는 틈을 타 말했다.
힘겹게 봉투에 방울토마토 한 통과 1.5리터 흰 우유, 비피더스 요쿠 루트 세트, 라면 봉지 세트까지 종량제 봉투에 담다가 아람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 전 캐쉬어는 담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 배달해 주세요"
"계란은 깨질 수 있습니다. 가져가시겠어요?"
"네, 아니요! 계란까지 배달해 주세요"
그때 딩동 하고 벨이 울린다.
후다닥 문을 여니 아저씨가 계란 한 판을 내민다.
"이거부터 받으세요"
아람이 냉큼 계란을 받는다.
"감사합니다"
대접에 계란 세 개를 깨서 풀고 포크로 휘휘 젖는다. 냉장고 문을 열어 저지방 우유를 꺼내 좀 섞는다. 프라이팬에 해바라기 기름을 두르고 계란물을 주르륵 푼다. 식빵 한 장을 꺼내고 꿀을 지그재그로 넓게 뿌린다. 포크로 계란을 한 번 뒤집고 두 번 뒤집고 접시에 옮겨 담는다.
음악 소리를 줄이니 바람 소리가 들린다. 아람은 하찍얗게 바른 페인트가 솔솔 마르고 반짝반짝 코팅되기를 바라며 꿀을 듬뿍 찍어 에그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먹고 두 입 베어 먹는다. 저지방 우유의 비릿함이 느껴진다. 왠지 그 비릿함이 싫지 않다. 랩 운율과 함께, 새 지저귀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린다.
' 이제 페인트가 잘 마르기만 하면 되겠지..'
아람은 커피를 마시며 입가심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