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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pr 28. 2016

먹는 여자

스팸과 석류 감식초

어제 아무래도 락스를 너무 많셨다. 새벽 5시, 아림은 침대에 누운 채로, 양 볼 위로 발갛게 올라 와 피부 표피 안에서 퍼진 열기가 간질이는 걸 느낀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새벽이면 좀비처럼 몸을 번쩍 일이 키는 아람 이건만,  특히나 월요일은 주말 내 늘어뜨린 가족들을 깨우느라고 슈퍼 파워를 발휘하는 날이니, 더욱 부산을 떠는데 쥐 죽은 듯 멈춰서 이번엔 손이 저릿저릿한 걸 느낀다.


뭘 좀 먹어야겠다. 아람은 핸드백을 뒤져 스팸 한 캔을 꺼낸다. 먹을 것을 보관하는 장소로 그녀는 장롱이나 서랍을 활용하는 것이다. 냉장고나 식품 저장고가 비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당장 꺼내 먹을 수 있도록 상비 식량을 철저하게 준비해 놓는 것이다. 얼른 프라이팬을 달구고 도마 위에 때려 붓고 칼로 길쭉하게 쭉쭉 썬다. 여덟 덩이가 들뚝날쭉 팬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익어 들어간다. 밥통에서 현미밥을 한 주걱 반을 퍼내 담고 그 위에 스팸 네 조각을 얹어서 먹기 시작한다. 김치 냉장고에서 썰지 않은 김치를 내와 가위로 밑동만 싹둑 자르고 손으로 죽죽 찢어서 밥에 얹어 또 크게 한 입을 먹는다. 마땅히 음료수가 없고 흰 우유가 유일하다. 와인 잔에 우유를 반쯤 따라 마실 때쯤  우현이 다가와 잔소리를 한다. 


"스팸은 스팸이야. 미국에선 홈리스가 먹는 쓰레기래, 이런 거 먹지 마!!" 아람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받아친다. "이거 왜이러셔? 미국 홈리스가 샌드위치 먹는 거 봤거든?" 거지같은 기분이 든 아람이 대꾸한다. 그녀는 알고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을 했던 외국물 좀 먹은 해외파인 것이다. 


간신히 우희와 우정을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고 아람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다. 벽지에 들러붙은 곰팡이를 없앤다고 방 하나를 들어내고 나니 집은 이제 유령이 나올 것만 같다. 락스 기운이 다시 밀려와 이번엔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걸 느낀다. MSG 때문엔 졸음까지 기어들어 와 눈 조차 뜨기 힘들다. 옆에서 보고 있던 우현이 가방을 챙기며 쫓아온다. 

"어디 가는 데? 같이 가!"

"눈이 떨려"

" 독 좀 빼내야 하는 거 아니야?" 

" 안 그래도 가려고. 사우나"


뜨거운 게르마늄 소금 찜질방. 아람은 히말라야의 소금이 체중을 감소시키고, 피부를 좋게 하고, 불면증을 해소시키며, 마지막으로 환경오염으로부터 독소를 제거해 준다는 문구를 읽는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찜질방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 드러누워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눈을 감고,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싸자  경직돼있던 근육들이 쫀득해지기 시작한다. 눈을 뜨고 모래시계를 한 번 더 뒤집으며 아람은 속으로 주문을 왼다. '독들아 나와라, 독들아 퍼져라'. 더 이상 쫀득해지는 기분이 나지 않자 아람은 매점으로 간다.

"맥주 드릴까요?"

메뉴판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아람에게 매점 아가씨가 물어봐 준다.

"아니요"

"그럼 커피요?"

"아니요." 아람은 두 번째 줄에 감식초 석류를 본다.

"감식초 맛있어요?"

"감식초 석류 맛있어요."


물병에 빨대를 꽂고 쭉쭉 빨며 아람은 찜질방으로 다시 또 돌진한다. 

'내 안 에 남성 호르몬은 더 이상 사라지고 말 것이고, 이제부턴 다시 여성으로 태어날 테다'! 

아람은 주문을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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