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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12. 2016

먹는 여자

해후와 롤케이크

아람은 십 대 중반 청소년기를 지나는 중간부터 이십 대까지 쭉 혼자 살았다. 점을 보러 간 엄마에게 점쟁이가 하는 말이 같이 살면 아람이 엄마를 죽일 사주라고 하였단다. 그 이유에서인지 아닌지 확실친 않지만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에 아람은 미국에 사는 고모네 집으로 보내졌고 미술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예술 대학을 더 다니고 나서야 엄마가 있는 한국이 그리워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가족과 같이 살 수는 없었다. 이미 따로 산지 오래라 여러 가지로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영어와 미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얼마든지 소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고, 홍대 어느 옥탑방에서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 원으로 볼품없지만 아람은 여전히 자유롭게 지냈다. 그땐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대접으로 마시고 식빵에 마요네즈를 발라 먹거나 라면을 끓일 때는 물 대신 우유를 부으면 나가사끼 짬뽕 맛이 난다는 걸 발견할 만큼 아람은 여전히 음식이 뭔지 모른 채 닥치는 대로 먹고살았다. 악에 바쳐 살았던 시절이었다. 치마가 그렇게 짧은 줄도 몰랐고 화장이 그렇게 싼 티 나는 줄도 몰랐고 빈 속에 담배를 뻑뻑 피우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댔다. 


"여자 애가 넌 왜 그러냐?"


"다리 좀 오므려라, 남자도 그 보단 낳겠다!" 


영화 미술을 할 때는 세트장에서 다른 스텝들로부터 그런 핀잔도 곧잘 들곤 했다.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밤이 되면 야행성 고양이처럼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먹거나 클럽에 가서 춤을 추었고 오며 가며 연애도 몇 번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미국인 같은 한국인을 만났는데 얼마 안 지나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시댁에 가서 김치를 담그게 된 것이다. 


"애기 너 김치를 아주 잘 담그는구나!"


시어머니가 칭찬을 해 주셨다.


"올케! 김치는 올케처럼 그렇게 속을 많이 넣을 필요 없이 대충해야 짜지도 않고 맛있는 거래".


처음에 아람은 시댁 식구들이 아람을 못한다고 놀리는 것이거나 아님 일을 많이 시켜 먹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고 했단 말이 맞았다. 아람은 순식간에 김치 백 포기를 담가버렸다. 시어머니와 형님은 아람의 문지르지 않고 그냥 얹기만 하는 너무도 빠른 신공에 결국 뒤치다꺼리를 하셔야 했고 그게 성가셨는지 결국 비켜 있으라고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 아람은 시댁으로 가져온 반찬이며 김치를 먹으며 이젠 간편하게 밥솥에 밥만 하면 고급진 한식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맨 밥에 물 말아서 김치를 쭉 찢어 그냥 얹어 먹기도 하고 돼지고기를 넣고 찌개를 끓여 먹기도 하고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기름에 파를 튀겨서 향을 내고 계란 프라이로 고명을 얹은 김치볶음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람은 빵을 쌀밥만큼 먹었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바게트도 만들고 피자도 만들고 케이크이며 파이와 쿠키까지 이제는 빵이 생각났다. 이미 아람은 그녀의 꽃 다운 청춘을 도넛과 머핀에 바쳤던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멍청한 말이 떠올랐다 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언뜻 마리 앙트와네트가 빵이 너무 많아서 먹다가 질리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녀의 의도는 '변화하라' 그리고 '살아남으세요'라는 국민을 위한 여왕의 말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람은 했다. 다만 오스트리아 국민은 프랑스에서 온 인형 같은 그녀의 말 뜻을 오해했기에 그 시절 불행하게도 역사 속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런 제도는 사라졌고 서로의 상태가 다르니 관점도 차이가 나는 것을 대화로 나누었다면 피를 볼 필요는 없었을 텐데 안타깝긴 해도 덕분에 프랑스의 역사는 그만큼 아름다워졌다고 아람은 생각했다. 아람에게 고향의 맛은 미원이 아니라 설탕이었을 뿐이다. 그녀에겐 오히려 쌀이 귀했고 전기밥솥이 비싼 가전용품 이었다. 말 안 통하는 외로운 외국에선 남는 것이라곤 시간이었으니 차라리 밀가루 반죽이 손쉽고 싸구려 오븐이 정겨웠다. 그렇게 아람은 진한 청국장 맛을 알지 못했다. 은근히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것이 진국인 것도 역시 몰랐다. 배를 채워주는 스펀지 케이크가 최고였다. 우유에 버터가 잔뜩 들어 간 두툼한 빵을 적셔 먹는 맛이란 발효된 김치의 매운 맛이나 구수한 된장찌개와 동급 취급이란 말이다. 

애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고 혼자가 된 어느 날, 대학 때 조형 과목을 같이 들었던 친구로 페메가 왔다. 삼청동에서 전시를 한다는 이벤트 초대장이었다. 카드 가입하라는 스팸 문자와는 조금 달랐지만 아람은 그대로 무시해 버렸다. 며칠이 지나 또다시 알람이 울렸다. 5월 5일 어린이 날 5시. 북촌로 5길. 숫자 5의  네 번 반복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숫자지만 아람은 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왠지 저 숫자 5를 마저 채워야 할 것만 같았다. 


이벤트 참석. 

좋아요.


어린이 날, 아람은 우희와 우정을 유모차에 태우고 작가가 된 친구의 전시를 보러 서둘러 택시를 탔다.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케이크를 사들고 갤러리의 문을 열었다. 작가 친구는 아람만큼이나 많이 변해 있었다. 검정 치마 정장 차림의 고상한 기운이 풍겼다.


"얼마 만이지? 근데 하나도 안 변했다!"


"오랜만이야! 마지막으로 같이 수업 들었던 때가 2003년, 그럼 얼마 만인 거지?"


다행히도 우희와 우정은 리셉션 데스크에 진열된 케이터링 음식에 정신이 팔려 먹는데 바빴다.

아람은 캐러멜 맛 롤 케이크를 큐레이터에게 건네고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갤러리 사장님이 물 한잔을 주어 받아 마시며 아람은 친구의 작품을 보았다. 

'난해하다.'   

아람은 그저 과거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을 뿐인데 친구는 현재를 미래로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그림은 과거에 아람이 알던 그녀의 모습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애써 기억을 불러들였다.


"생각 나? 그 오빠? 내가 좋아했었는데 그 오빤 널 좋아했었잖아."

"아니! 그 오빠가 누군데? 생각 하나도 안 나!"


이런 엉큼하기는! 아람은 내숭을 떠는 친구가 재밌었다. 그곳에는 아는 얼굴의 동창생들이 몇 명  더 모여들었다. 


"이 친구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어."

"난 레스토랑을 운영해".

"얜 내 제잔데 데리고 왔어".

"내 딸들이야. 큰 앤 날 많이 닮았고 작은 앤 남편을 닮았어."     


오랜만에 변한 친구들을 만나니 아람은 얼큰하게 취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달콤한 케이크가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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