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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11. 2016

먹는 여자

아메리카노와 속풀이

문득 돌아보면 같은 자리지만 난 아주 먼 길을 떠난 듯했어

만날 순 없었지 한 번 어긋난 후 나의 기억에서만 살아있는 먼 그대

난 끝내 익숙해지겠지


새벽 네 시 반, 아람은 저절로 눈이 떠진 이 시각에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주전자에 커피물을 올려놓고 윤상의 <그 별의 그늘> 노래를 읊조렸다. 가요를 좋아하는 그녀는 생각날 때마다 그때그때 콧노래를 흥얼거리듯이 노래를 부른다. 어려서부터 변진섭의 왕 팬인 그녀는 보통은 <희망사항>을 시도 때도 없이 달고 살기는 한다. 엊그제는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목청껏 열창했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

사람이 변할 수도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글자 하나가 더 들어갔을 뿐인데 위 두 문장은 완전히 다른 풀이가 가능하다. 아람은 둘 중에 어떤 걸 고를지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아람의 인생에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대명제는 그녀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큰 아들과 두 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아람의 꿈은 예술가였다. 고로 아람은 변했다. 문제는 변한 것을 어떻게 받아 일 것인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위 문장의 '변할 수 있다'는 것은 변하고 싶단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된 상태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상태로부터 전진하여 발전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아래의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물 흐르듯 떠밀려 버려 연어가 회귀를 하듯 제 자리로 돌아가거나 민물 장어처럼 몽상가가 되거나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이별의 그늘 아래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람이 미국에서 예술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자신은 뭔가가 될 줄 알았다. 위대한 예술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사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낱 가정 주부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니 김이 빠졌다. 물론 지금도 가족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있고 도움을 줄 순 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끊임없는 빨래와 설거지로는 그다지 감동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뭔가 새롭고 기발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즉각적이 반응이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물건을 사들이는 일이었다. 장을 봐와서 맛있는 요리를 한다거나 인테리어 용품을 산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주말이나 연휴에 아웃 도어 캠핑을 계획하고 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 번은 아기 침대를 개조해 아기 소파와 옷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엔 기분 좋은 말을 듣기도 했다.

"엄마, 멋쟁이!"

우희가 칭찬을 해줬다.

"능력자네~"

우현이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드립 커피가 금세 푹 꺼지듯 또다시 찾아오는 허탈함을 채워야 했다. 아람은 라면을 끓였다. MSG의 강한 맛은 아람을 권태로부터 탈출시켜주고 언제 그랬냐는 듯 속은 느글 걸기 시작했다. 곧이어 아메리카노로 바로 속을 풀기로 했다. 영 입맛도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그런데도 또 뭔가를 해야 할 때는 스스로를 펌프질해야 한다. 증세가 심할 경우엔 에스프레소를 투샷으로 안주 삼아 아메리카노를 투샷 꾹꾹 눌러 샷 네 개를 연거푸 카페인으로 바른 뒤 오렌지 주스를 마지막 입가심으로 한 컵 마시고 나면 한껏 부스트 되는 것이다. 아람에게 삼합이란 라면, 커피, 오렌지 주스인 것이다.

요새는 광고 카피도 인상적이다.

'나에게 클라이맥스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는 것이다'. 아람은 뭔가가 되려고 애쓰는 것보다 지금을 완성하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모른다. 집안일이란 것이 금방 하는 청소로만 생각한다. 어디에도 티가 나질 않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페북이나 카스가 있지만 어쨌든 가사 일도 하다 보면 끝이 없다는 것을 알까? 아람은 마저 커피를 마시고 당장은 놀기 위해 영화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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