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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이란 Dec 30. 2020

독일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독일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플랫 메이트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네가 우리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으면 좋겠어."


저녁 8시 이후로는 밖에 나갈 수도 없는 독일의 락다운. 3주 간의 연말연시 방학이 주어졌지만 할 것도, 갈 곳도 없는 외국인인 나를 동기의 가족이 초대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보통의 휴일이지만, 독일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다. 일찍 독립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독일의 특성상 가족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크리스마스 4일 전, 하이델베르크에서 1시간 30분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의 남동생이 우리를 싣고 1시간 30분을 더 운전해서 친구의 부모님이 계신 튀빙겐으로 향했다.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을 180-200km로 달리는 기분은 언제나 그렇듯 짜릿했다. 빠른 속도만큼 오랜만에 고향으로 부모님을 뵈러 가는 마음이 얼마나 신날지 대강 짐작이 갔다.


친구의 부모님이 손님인 나를 위해 방을 마련해주셨다.


유럽에 있을 때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손님 문화이다. 학생들이야 셰어 룸에서도 살고, 작은 원룸에서 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금까지 방문한 모든 친구들의 부모님 집은 항상 단독주택이었다. 언제든지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 손님방과 공용 화장실이 따로 있고, 하루 이틀 자고 가는 것쯤은 흔한 일이다. 이번에도 역시 친구의 부모님은 며칠 묵을 예정인 나를 위해 방을 마련해주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는 집이 아파트인 경우가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가족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서 그런지 손님들이 쉽게 자고 가는 분위기는 잘 형성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가 꾸민 트리와 친구들이 보내준 트리의 사진, 이브에 각자 준비한 선물을 트리 아래에 놓는다.


사실 유럽 가정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두 번 다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는데, 각 가정마다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참 다른 것 같다. 친구네 집 같은 경우에는 어머니가 데코레이션을 매년 구매하셔서 트리가 화려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보내준 트리들은 보다 심플해 보인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없어서 거리가 굉장히 허전하다. 그래도 이렇게 집집마다 화려한 트리 불빛으로 그 아쉬움을 채우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트리 아래에 선물을 놓고 이브 저녁에 다 같이 상자를 여는 시간을 갖는다. 사실 나에겐 포장된 선물이라는 것이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다. 설날에 세뱃돈은 받아봤어도 명절에 가족끼리 선물을 교환하는 것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명절에 부모님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건강식품을 사드리고, 특히 최근에는 기프티콘을 주고받는 광경이 더 친근한 나에게는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선물을 준비해서 직접 포장을 한 후 트리 아래 내려놓는 일련의 과정이 이색적이면서도 참 따스하게 느껴진다.


이브 만찬 라끌렛과 수제 크리스마스 쿠키


이번 휴일이 더 기억에 남았던 건 음식 때문이었다. 친구의 남동생이 요리사여서 5일 동안 정말 돈 주고도 못 먹을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대충 끼니만 해결하는 나에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저녁 만찬을 준비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디저트도 직접 만든다는 것이다. 직접 반죽을 해서 사과파이를 굽고 쿠키를 만드는 것이 밀가루가 주식인 이들에겐 당연한데도 신기했다.


친구의 가족은 독일과 프랑스 다문화 가정이라 반 정도는 프랑스 음식을, 나머지 반은 독일 음식을 먹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재료를 각자의 팬에 올려 치즈를 올려 녹여먹는 라끌렛을 먹었다. 한동안 한국에서 식탁 위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용도로 라끌렛 팬이 크게 유행해서 팬 이름이 라끌렛인 줄 알았는데, 라끌렛은 요리의 이름이었고 고기만큼 맛있는 음식이었다. 각자 알아서 재료를 익혀먹는다는 점에서 묘하게 한국에서 가족들과 즐겨 먹던 샤브샤브가 생각났다.


떠나오며 친구의 가족에게 쓴 편지


가족끼리 오랜만에 모이는 자리에 이방인인 내가 끼어든 것이 민폐는 아닐지 계속 걱정이 되었다. 이미 밥값도 안 내면서 5일이나 묵어서 충분히 미안했는데, 친구의 부모님은 오히려 내가 불편해서 빨리 떠나는 것일까 봐 걱정했다고 하셨다. 날씨가 좋아지면 정원을 보러 또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과 함께 따뜻해진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나의 2020년 크리스마스는 끝이 났다. 머지않은 미래에 친구의 가족이 한국으로 놀러 온다면 그때 보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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