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계속 달리는 이유: 도착하고 싶지 않아서

달리기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자유롭게 적으세요

by 이시은

“선배는 왜 맨날 달려요?” 달리기에 미친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분명히 이런저런 이유를 얘기해 줬는데 기억나는 건 “...달리는 거 되게 좋아!”였다.


달리기가 유행한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나는 유행하는 것들은 다 해보고야 마는 성격이면서 그동안 한 번도 달려보진 않았네. 내가 달릴 수 있을까? 지구력도 없는데 그것도 오래 달리기? 달리는 건 되게 좋은 거구나. 좋은 거면 나도 해볼까. 오랜 시간 서랍에서 빛을 보지 못한 레깅스와 운동복을 꺼내 입었다.


달리기 1일 차. 스크류바같이 생긴 계단에서부터 연등까지 3분. 왜 이렇게 숨이 차지? 포기할까.

달리기 2일 차. 어디서 봤는데 달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데 실제로는 달리고 있는 듯하게 아주 천천히 뛰면 오래 뛰는 것도 가능하대. 다시 스크류바같이 생긴 계단에서부터 시작해 돌다리까지 10분. 내가 태어나서 10분이나 뛴 적이 있었나, 신기하네.

달리기 5일 차. 2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게 가능해졌다. 나이키런 8.00 페이스가 나한테 달리기 적절한 속도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한 달째 달리는 중.


이쯤에서 생각해 본 달리기의 효능. 체력이 좋아짐, 기분이 좋아짐, 억텐을 올릴 수 있어서 일상을 부지런하게 살 수 있음, 같이 하면 더 좋음. 달리기의 본질은 달리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일상 전환에 있는 것이란 걸. 그땐 몰랐지.


두 다리로 달린다는 것 말고도 달린다는 표현은 평소에 꽤나 자주 쓰인다. 오늘도 (일) 달려볼까, 나 오늘 진짜 (술) 달린다, 어제 (꿀잠) 달림. 그럼 우리는 매일 매 순간 달리고 있는 걸까.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도착하지 않기 위해 끝없이 걷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으면서 나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는데’ 우리가 계속 달리는 건 어딘가에 도착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목적지 없이 내일도 달리고 또 달리는 걸로. 끝없이 달리기로.


2.jpg 매일 행궁동까지 뛰니까 좋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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