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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은 Jul 29. 2020

나는 왜 애인한테만 나쁜 사람이 되는 걸까

ENFJ 문과생과 ISTP 공대생의 연애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이다.

어떤 무리에서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다가도, 또 어떤 무리에서는 유별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난 유난히 친구와 있을 때, 남자친구와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많이).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착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 되는 반면에, 남자친구 앞에선 이기적이고 예민한 사람이 된다. 알면서도 늘 내가 왜 그럴까 고민이다.


“친구들이 한 시간 지각하는 건 괜찮고, 난 안 돼?”

생각해보니 그랬다. 친구들이 지각하는 건 다 괜찮으면서, 남자친구가 지각하면 그렇게 짜증이 났다. 아니, 왜 늦어? 난 이렇게 빨리 왔는데. 왜 남자친구한테만 유난히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미는 걸까. 사실 친구들에게도 짜증이 났던 건 아닐까? 그건 또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까 왜 나한테만 그래?


잠깐 옛날 얘기를 좀 해야겠다. 생각을 더듬어보니, 왜 나한테만 그러냐는 말... 엄마에게도 자주 들었다. “밖에서만 잘하면 뭐해, 집에 와서는 다른데” 스스로 밝고 외향적인 아이라 생각해서 늘 그렇게 지내야 하는 줄 알았다. ‘밝은 아이’, ‘인사성 좋은 아이’로 평가받으니, 그 이외의 행동들은 하기 싫어졌다. 그래야 예쁨 받을 테니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집에선 완전 다른 사람이 됐다. 밖에서 에너지를 다 써버리니, 집에서는 원초적인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다 귀찮아. 엄마 앞에서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왜 내가 제일 편해야 하는 집에서까지 가면을 써야 하냐며, 혼자 억울함을 느꼈는지도.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거지만 난 그때 가면을 벗어던지면 안 됐다. 집에 와서는 그냥 다른 가면을 써야 했다.


다시 남자친구 이야기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난 남자친구를 엄마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3년 차까지 애인은 나에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외부인’이었다면, 8년 차인 지금은 ‘에너지를 굳이 안 쏟아도 되는 가족’ 정도로 여긴 것이다. 잘못돼도 뭔가 상당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왜 이제야 알게 된 건지. 후회막심이다.


가족같은 게 대체 뭐라고

내 에너지만큼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루에 주어진 에너지가 수박바 정도라면(갑자기 분위기 아이스크림), 빨간 부분까지만 쓰고 초록 부분은 남겨두는 사람. 막대기만 남겨놓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 뾰족한 사람이 되는 것은 싫다. 그리하여, 내가 내일부터 지켜야 할 것은 대략 이 정도인 것 같다. 밖에서 억지 텐션 끌어올리지 않기. 참다가 지칠 바에는 조금 못된 사람이 되어보기. 집에서도 에너지 유지하기. 그렇게 점점 겉과 속이 비슷한 인간이 되면 지금보다는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남자친구에게도, 엄마에게도 실수하지 않는 사람으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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