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찍지 않은 순간이 더 떠오르는 이유

어쩌다가 남아서 더 소중한 기억

3년 전 겨울,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던 패션 에디터와 나는 함께 퇴사를 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스페인, 포르투갈 루트. 총 15일에 걸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행이었다. 당시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여행을 차분히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와 그때 찍은 사진을 쭉 훑어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게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들었던 생각 하나는 열심히 각 맞춰 찍은 사진들보다, 공들여 찍지 않은 사진이 더 소중하다는 것.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에어비앤비 부엌을 정리하다가 버튼을 잘못 눌러 찍힌 파스타 면 사진,

택시 안에서 예쁜 풍경을 찍으려다가 손이 미끄러져 찍힌 미터기 사진,

바르셀로나 분수 쇼를 기다리다 찍힌 길거리 사진,

잘못탄 기차, 잘못 내린 역에서 찍은 뜻밖의 풍경 사진,

길거리를 걷다가 발견한 빈티지 숍의 바닥 사진.

이 모든 것은 사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찍힌 사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노력해서 찍은 잘 나온 사진들은 이미 너무 봐서 지겨워질 찰나. 그때 접한 망친 사진들. 왜 꼭 나중에야 이런 사진을 볼 때 더 뭉클하게 느껴지는 걸까.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찾은 듯 말이다.

그건 아무래도 놓친 순간들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눈에 꼭 담아 와서, 그래서 몇 번이고 되새겨 본 장면이 아니라서. 기억 속 구석진 어느 곳에 몰래 숨어 있다가 나타난 잃어버린 조각 같은 느낌이라서.

이를테면 동루이스 다리를 건널 때의 '날씨', 숙소로 가는 길 맡았던 오렌지 나무의 '향기'와 같은 것들.

도저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뿌연 순간이 그 사진 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런 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딱히 남길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들’도 사진으로 많이 찍어 둘걸. 난 예쁜 것만 찍을 줄 알고, 좋은 것만 볼 줄 알았구나.

사실 인생도 똑같은 게 아닐까.

어쩌면 찍히지도 않았을 사진처럼, 어쩌다가 남아서 더 소중한 게 더 많은 건 아닐는지. 스쳐 지나가서 흐릿해지는 기억들이 더 소중할 때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