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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은 Apr 07. 2021

좋은기억이란, 당 떨어졌을 때 먹는 레몬 사탕 같은 것

사진에 집착하는 어른으로 컸습니다.


난 의식적으로 좋은 기억을 남긴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순간순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둔다. 어떤 형태든 기록하는 건 좋은 거니까. 좋은 건...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그래야 힘이 들 때 꺼내볼 수 있다. 당 떨어졌을 때 꺼내 먹는 레몬 사탕처럼 말이다.


들춰볼 만한 좋은 기억을 모으는 습관은 10 때부터 있었다. 그땐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사진첩 채우는 재미로 살았으니까. 친구가 학교에 비싼 디카라도 가져오는 날이면 그날은 공부하는 날이 아니라 사진 찍는 날이었다. 쉬는 시간에 귀여운 필통과 한컷, 에뛰드 하우스에서  틴트를 바르고 거울 앞에서 한컷, 체육복을 입고 친구들이랑 복도에서  한컷.


물론 생일이나 시험 끝난 날과 같은 작은 기념일엔 셔터를  자주 눌렀다. 풍선을 불다가도, 돈가스를 먹다가도, 케이크에 촛불을 꽂을 때에도.... 친구들은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귀찮아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지금에야 인스타그램 스토리라는 좋은 기능이 생겨서 빨리빨리 찍고 넘어갈  있지만(자동으로 하루가 저장 되다니!), 그땐 아니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나 디카로 사진을 찍은  usb 하나하나 컴퓨터에 옮겨야 했다. 지금보다  많은 공을 들여야 했으므로, 나의 디렉팅은  꼼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나는 현재, 당연히 사진에 집착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스무  때부터 서른 살이  때까지 나의 아이폰 용량은 항상 모자랐다. 스무  초반에 쓰던 64GB짜리 아이폰은 얼마 가지 않아 128GB 아이폰으로 대체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은 256GB 쓴다. 물론  용량의 대부분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차지했. 남자 친구는 그럴 바에 외장 하드를 사는  낫지 않겠냐며 무려 3 테라 짜리 외장하드를 선물해주기도 했는데, 얼마 가지 못해 고장이 나버려 나의 신뢰를 잃었다. 복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외장하드를  주고 사느니 휴대폰을 하나  사고 말지...


아무튼, 이 정도로 사진을 많이 찍어 둔 보람은 충분히 있다. 그때 귀찮아했던 친구들도 이제는 내게 묻는다. ‘우리 그때 좋았는데! 사진 있어?’.

과거의 사진을 찾는 이유는 뭐 뻔하다. 따분한 일상에 당을 충전시키기 위해서다. 그다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던 날로 변한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땐 즐거웠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지 참.’이라며 지금의 힘듦을 무마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기억을 어떻게든 남기는 것은 중요하다. 먹구름 같은 기억이 날 어둡게 만들어도, 걷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도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걸 떠올리게 해 주니까.


사진과 영상을 많이 남겨두는 이유


무언가를 남기는 것은 잃어가기 때문이다


언제는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무언가를 남기는 건, 잃어가기 때문 아닐까.

처음엔 이 문장을 엄마를 생각하며 썼다. 엄마의 시간이 사라지는 게 싫어 자꾸 사진을 남기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지금은 좀 더 많은 의미를 담은 문장처럼 느껴진다. 엄마의 뒷모습, 아빠의 목소리, 친구들 웃음소리, 그때의 나, 그 시절의 우리. 그것을 남겨두는 것은 자꾸만 사라지기 때문일 거다. 사진이든, 영상이든.


아마 10대 시절의 나도 이걸 알지 않았을까.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사진에 집착하는 어른으로 자랐지만, 앞으로는 더 그럴 예정이다. 할머니가 되어서 심심할 때 들춰볼, 레몬 사탕을 하나씩 만들어 둔다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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