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은 Feb 18. 2021

세상엔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과 그걸 부수는 사람이 있다

올 겨울엔 눈이 많이 왔다.

오랜만에 내린 눈이 반가웠는지 눈사람을 만들어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올라프 눈사람, 엘사 눈사람 등등... 종류도 무척 다양했다. 나는 차마 눈사람을 만들진 못하고... 그 귀여운 눈사람들이 우리 동네에는 없는지, 우리 아파트에는 얼마나 많은 눈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다니기만 했다.


골목을 걷다 눈사람을 발견하면, '어 저기 또 하나 있다!'라며 마치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은듯 기뻤고 카메라를 켜 그 순간을 남겼다. 이 작고 소중한 존재가 다 녹아서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 남겨줘야 해. 이들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바로 나야!라는 이상한 사명감을 가진 채로. 우리 동네에는 총 23개의 각기 다른 눈사람들이 있었다.


최애 눈사람


그날 밤,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 아침 출근길에 사람들 기분 좋으라고 버스정류장 앞에 올라프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부수지 말아달라는 팻말을 준비하러 간 그 짧은 10분 사이에 산산조각이 났다는 글. 미간이 먼저 찌푸려졌다. 그리곤 내가 다 속상한 마음에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슬프다고 표현하기엔 애매하고, 안타깝다고 말하기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고. 딱 속상하다는 감정이 맞는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들의 아침 출근길을 위해 눈사람을 열심히 만든 그 사람의 마음이 공감이 가서.


세상엔 이렇게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쉽게 부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걸까. 시린 손 참아가며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 그 마음을 쉽게 부수는 사람.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사람과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을 망치려는 사람. 그럼에도, 눈사람을 다시 망쳐버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예쁜 눈사람을 만들어내는 이들로 이루어진 건 아닐까 세상은.


그렇다면 나는 그 사이 어디 즈음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이려나. 처음으로 사진을 남기는 일이, 없어질지도 모르는 작은 행복을 나름대로 지키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P.S.

내년엔 나도 올라프 눈사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




21.01.13



매거진의 이전글 고속도로 주황 불빛 아래서 잠들면, 집에 도착해 있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