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공부했던 순간들
물은 99도가 아닌 100도에서 끓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마지막 한 번 덤벨을 드는 그 순간 근육이 강화된다고 합니다. 한계점까지 노력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계를 넘어야 공부가 발전한다
- 최선을 다해 공부했던 순간들-
저의 중학생 시절 경험입니다. 학교에서 치르는 중간·기말고사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 기출문제와 같은 사전에 연습하여 풀어볼 문제가 없어 책과 노트만 읽고 시험을 보다 보니 실제 시험에서 실수를 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유형의 문제를 보고 당황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고민하다 교과서와 노트를 보는 횟수를 급격하게 늘려보았습니다. 그 당시 제 생각은 ‘교과서를 아예 다 외운다면 실제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평균 20번 내외로 보았습니다. 그나마 학교 중간·기말고사는 시험 범위가 넓은 편은 아니라 그렇게 볼 수 있었습니다. 급격한 회독수의 증가는 실수를 줄이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효과는 거기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책을 보는 눈 자체가 좋아졌습니다. 교과서의 문장 자체에 익숙해져서 어느 부분이 핵심이고 더 잘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좋아졌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예전보다 빠르게 읽고 내용 파악도 더 잘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이 줄었음에도 성적은 꾸준히 유지되었습니다. 학교 내신 성적은 고등학교 내내 전교 1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미친 듯이 반복해 본 경험이 책을 보는 능력 자체를 키운 것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대학 수학능력시험 대비 모의고사를 보면 수리탐구, 사회탐구, 과학탐구 및 외국어영역은 거의 만점이 나왔는데 언어영역만은 만점이 잘 나오지 않고 점수도 들쭉날쭉하였습니다. 언어영역에서 출제되는 문학과 비문학 지문의 범위가 너무 방대하였고 시험장에서 모르는 지문의 내용을 파악하여야 하다 보니 시험을 보는 날의 컨디션에 따라 점수 차이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요 학원들에서 나오는 전국 모의고사 문제를 모두 풀어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당시 서점에 가면 모의고사에 출제된 문제를 월별로 제본하여 판매하고 있었고 저는 그것을 모두 구매하여 풀어보았습니다. 그렇게 해보니 출제되는 지문의 전체적인 경향(주제)을 파악할 수 있었고 학원별로 문제를 출제하는 스타일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만 보아도 어느 학원에서 출제한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모의고사에서 일정 점수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앞으로 어떤 지문이 출제될지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주제의 지문을 읽은 결과 논술 준비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의 일입니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선배들에게 “고시에 합격하려면 자다가 일어나서도 기본서의 목차를 적어낼 수 있을 정도로 책을 봐야 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공부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후 행정고시를 공부하면서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목의 체계와 흐름을 알아야 서술형 주관식 공부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목차를 암기한다는 것은 과목의 체계를 이해한다는 의미입니다. 목차를 일부러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암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체계를 잡은 과목은 응용이 필요한 시사적인 내용을 묻거나 새로운 개념을 공부하게 되어도 배운 체계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잘 모르는 개념이라도 과목의 체계와 기존에 알던 개념을 응용하여 내용을 추론해 볼 수 있었습니다.
국제재무분석사(CFA, Chartered Financial Analyst) 레벨 1 시험을 준비할 때의 경험입니다. 업무가 많아서 공부할 시간이 매우 부족한 시점에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 전날 저녁까지 일을 하고 와서 밤을 새 가며 공식 위주로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험 당일 어깨가 너무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긴장한 탓에 긴장감과 집중력은 극대화된 상태였습니다. 긴장감과 집중력이 최고조인 상태에서 시험지를 받으니 감독관의 목소리나 다른 소음은 잘 들리지 않고 시험지의 글자들이 하나하나 제 눈에 박히듯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시험에 완전히 몰입된 상태, 일명 ‘플로 상태’를 경험했던 것입니다(플로 상태라는 개념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플로 상태란 무아지경에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플로 상태에서는 오로지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고 잡음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뇌는 플로 상태를 아주 좋아하고 계속 재현하고 싶어 합니다(모기 겐이치로 저 ‘뇌가 기뻐하는 공부법’에서 발췌). 저는 한번 플로 상태를 경험한 이후에는 다른 시험(CFA 레벨 2, 레벨 3)을 볼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 볼 때의 집중력 자체가 높아진 것입니다.
시행착오를 겪고 여러 번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공부하는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시험을 여러 개 합격하는 것보다 어려운 시험을 합격해야 한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합격하고 싶은 큰 시험에 도전하여 한계를 깨뜨리는 기쁨을 맛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