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는 노력의 비결
제가 학교에서 처음 전교 1등을 한 것은 중학교 2학년 2학기 기말고사였습니다. 그 전에는 항상 나 위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공부하다가 막상 전교 1등을 하고 나니 의문이 생겼습니다.
‘전교 1등을 해봤으니 더 이상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공부를 항상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게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앞만 보며 달려온 중학생에게는 ‘한번 1등 해 보았으니 이제는 쉬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였을 것입니다.
챔피언이 되는 것보다 챔피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 뭐든 잘해 선망의 대상이던 친구가 의외로 평범하게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동안 꾸준히 우수한 성적을 낸 친구가 대학에 가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취직시험, 취직 이후 공부, 석사 및 박사학위 등 20∼30년을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적을 올리는 공부방법과는 다른 기술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는 제가 약 20년간 지속적으로 상위권을 유지하며 공부한 비결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지속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5가지 방법
- 지치지 않는 노력의 비결 -
밤에 아이가 열이 났을 때 두 가지 대처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해열제를 먹인 후 하루 이틀 더 지켜보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당장 센 약을 처방해서 불안감을 없애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부모님이라면 후자의 방법을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밤에 아이가 열이 나고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참기 어렵습니다.
사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나중에 성적이 향상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어린 시절부터 영재반 또는 심화학습반을 전전하게 합니다.
사실 심화학습반 등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한 학년 먼저 배우는 내용 또는 조금 더 다양한 문제를 풀어보게 하여 곧바로 고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즉,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내용인데 조금 더 빨리 알고 점수를 잘 받도록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먼저 배우면 시험에서 고득점을 할 수는 있지만, 학년에 비해 어려운 내용을 계속하여 공부하면 체력적으로 지치고 공부가 지겹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배워 고득점을 하는 방식으로 공부하면 고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실력이 정체될 가능성이 큽니다.
학원에서는 최신 경향의 문제를 알려주기 때문에 공부한 것이 바로 점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당장의 성적 향상에는 유리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일 때 중간고사 시험문제에 ‘발단-전개-( )-결말’에서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을 묻는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도저히 답을 모르겠는데 학원을 다닌 친구들은 너무나 쉽게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정답 : 절정). 아마 학원에서 그 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알려준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모님들이 학원을 보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당장의 성과를 보기 위해서, 즉 차근차근 발전하는 모습을 보려니 답답해서’이고, 두 번째는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기가 귀찮아서’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견뎌야 지속해서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다.
공부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알아나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을 읽고 내용을 파악한 후 그것을 스스로 정리하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여기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고민한 것들을 말하면 들어주는 사람인 어머니가 계셔서 공부를 잘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① 책을 보고 알게 된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② 거기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정리한 후 ③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았습니다. 부엌에서 저녁을 하고 계실 때 제가 교과서를 들고 졸졸 따라다니며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의 주요 역할은 들어주는 것이었고, 어른의 눈에서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었습니다. 여기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정리한 것을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에서 이미 학습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때 들어주는 역할은 부모님 외에 다른 사람이 하기는 어렵습니다. 학교나 학원 선생님이 매일 한 학생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학원을 가지 못했던 시간 동안 저는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 투자한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지식의 습득은 느렸지만, 꾸준히 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예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서예학원을 약 2개월 정도 다녔을 때 학교 미술시간에 서예를 배웠습니다. 궁서체로 ‘나라사랑’이라는 글자를 쓰는 연습을 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 A는 제가 쓴 것과 자신이 쓴 것을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어떤 것이 더 잘 썼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A가 쓴 것이 더 낫다고 답을 하였고 A는 저에게 “학원 다녀봐야 소용없네”라고 한마디 던지고 가버렸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 저의 서예 실력은 좋아지지 않았지만 꾸준히 다녔습니다. 약 2년간 다니면서 서예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그때 외운 한자 덕분에 고등학교 때까지 수월하게 한문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 몇 달간 서예 실력이 좋아지지 않았음에도 왜 계속 학원에 다녔을까요?
그 당시에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노력의 과정을 통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노력을 기울이면 결국 실력이 향상되는구나’하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시기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이 교훈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렸을 때가 아니면 의심 없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기회를 주지 않고 빠른 성과를 요구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단기간에 성과를 낸 사례를 보며 조급해지게 되고, 주변 친구, 친척 어른들도 ‘나이가 이제 많은데 어떡할래?’, ‘엄마 친구 아들은 OO에 취직했다고 하던데...’라고 하며 자꾸 조급한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조급함에 휩쓸려 공부하면 꾸준히 잘 하기 어렵습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전력질주를 하면 마라톤에 완주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꾸준함에 대한 확신을 얻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꾸준함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우리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것 한 개로 정하면 지속적으로 공부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인생의 목표가 서울대학교라면 서울대를 입학한 이후에는 공부를 할 유인이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의 인생 목표를 달성하면 새로운 목표를 다시 설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목표를 찾기 위해서는 조금 더 큰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야 합니다. 만약, ‘서울대학교 입학’이라는 목표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가치에 두어야 방향을 잡을 수 있고, 방향을 잡아야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공부하려면 공부가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공부가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 자체가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전에 다녔던 피트니스센터의 트레이너는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합니다. 운동이 일상이 된 것입니다. 운동이 공부로 바뀌었을 뿐 어느 분야에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공부가 ‘가치’라는 옷을 입어야 일상이 되어도 거부감이 줄어들 것입니다. 트레이너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피트니스센터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월급이 들어오는 즉시 운동할 마음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발전하는 느낌을 위해 운동을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사는 이유는 ‘명품’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고급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한 공부가 어느 정도 완성된다면 나의 고급스러움을 위한 공부에 투자해야 합니다. 여기서 고급스러움이라 함은 ‘부끄럽지 않은 모습, 발전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대학교 2학년 때 경제통계학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 교수님은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이후 몇 년간 공부를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학생이 질문을 했는데 답을 모르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질문에 답을 모른다고 부끄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질문을 받고 얼굴이 붉어지는 자신을 보며 한참 동안 학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었고 그 이후부터 다시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부를 해도 모든 질문의 답을 알 수는 없습니다. ‘질문의 답을 아느냐 모르냐’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지 여부’입니다.
사람은 삶에 대해 많은 조언과 지식을 전달해 줄 수 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게 됩니다. 몸에 명품 몇 개 더 걸쳤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높아지지는 않습니다.
몸에 걸친 명품을 보고 나를 좋게 본다면 그 사람은 내가 아닌 내가 가진 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나의 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한 번 보면 다시 안 볼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행동을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진짜 명품은 ‘발전하는 모습’입니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공부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오래 공부할 동력을 찾게 되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슬럼프를 겪어야 공부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어떤 위기가 찾아오는지 몸소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2년간은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고 학점도 좋지 않았습니다. 군대는 가기 싫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으며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너무 어렵기만 했습니다.
2학년 2학기에 수강한 수업은 거의 다 재수강을 했습니다. 그때가 최고의 침체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크게 데고 나니 오히려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목표 설정의 중요성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이후 그러한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 더 철저하게 대비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때 앞만 보고 달리다가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을 2년간의 슬럼프를 겪으며 쉬게 된 것입니다. 내려가 봐야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결국 뼈저린 시간 날림과 금전적 손해가 이후 공부를 지속적으로 잘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반동이 있어야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슬럼프라는 경험이 계속된 성장을 위한 밑거름입니다.
공부는 잠수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잠수를 해서 1분 이상 버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래 잠수를 하려면 숨구멍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으로 공부하려면 1. 공부의 가치를 알아야 하며, 2.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하며, 3. 쉴 틈도 필요합니다. 공부를 의무로 해야 하는 것으로 느끼면서 20년을 잘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