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는 인생의 예방접종이다
국어사전에서 ‘사춘기’의 정의를 찾아보면 ‘육체적ㆍ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춘기라는 단어를 이 정도의 의미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춘기를 ‘심리적 방황기’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인들이 미래의 앞날을 걱정하며 슬럼프에 빠지는 심리적 불안 상태를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청소년기의 사춘기는 성장하면서 모든 사람이 경험하지만, ‘심리적 방황기’로서의 사춘기는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사춘기는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반면, 살아가면서 여러 이유로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중년의 사춘기, 직장인 사춘기, 엄마 사춘기 등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왜 청소년기에 사춘기가 찾아오는 것일까요?
저 또한 사춘기를 보내면서 당연히 겪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인생에서 사춘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춘기를 겪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 시기를 잘 극복해서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춘기 때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들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사춘기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극복해야 할 것들
- 사춘기는 인생의 예방접종이다 -
청소년기의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어차피 막아도 막을 수 없다면 그냥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겪은 일입니다. 과학 선생님이 수학과 과학분야에 제가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시고(정말 재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구시에서 주관하는 영재반에 들어갈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 당시 대구시에서는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 교육을 하는 과정을 만들었고, 수성구에서 공부 좀 한다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누구나 들어가게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과학 선생님께 영재반 시험 준비를 ‘하기 싫다’고 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왜 수학 공부를 해야 하는가’, ‘왜 힘들게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굳이 더 어려운 수학과 과학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그런 공부는 하기 싫고 학교 공부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그 과학 선생님은 어머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한번 시켜보시죠.”
어머니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하기 싫다고 한 것을 굳이 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안 하겠습니다.”
과학 선생님은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고 생각해서인지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과학 선생님은 그 이후부터 저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강요하지 않고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둔 어머니가 내심 감사했습니다. 믿어준 어머니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학교 공부는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얻은 자율성으로 책임감이 생긴 것이 ‘적당히 공부를 잘하던’ 제가 ‘진짜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거듭나는 핵심적인 증폭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영재반과 같은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안타까울 수 있습니다. 자녀가 선택한 행동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때 부모는 ‘자녀의 선택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실패가 결국 자녀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녀를 강요한다고 반드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녀가 성장할 수만 있다면 기회를 놓쳐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별로 지장이 없습니다.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예언의 영향으로 인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현상이 예언대로 된 현상을 의미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기실현적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딸은 커서 판사(또는 의사)가 될 거야”
“우리 아들은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고 있어서 곧 전교에서 1등을 할 거야”
부모는 실현하고 싶은 기대를 먼저 주변에 말하고 그 이후 그것을 이루어내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실현적 욕심이 자기실현적 예언과 다른 점은 '예언이 아닌 욕심'이라는 점입니다. 욕심은 욕심일 뿐 현실로 나타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자녀가 사춘기일 때 부모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주변에 자녀를 자랑하지 말고, 자랑을 듣지도 않는 것’입니다. 먼저 부모의 바람을 주변에 이야기하면 더 그것을 더 이루고 싶어 지면서 자녀에게 이를 강요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반발심이 생깁니다. 하고 싶었던 일도 하기 싫어집니다.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주변 친구들에게 제가 전교에서 1등 한다는 사실을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내내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녀의 성적을 자랑하면 미래의 언젠가 좋지 않은 일로 자녀가 비교당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춘기의 자녀는 예상 밖의 거친 행동들을 많이 합니다. ‘공부하기 싫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것은 기본이고 욕을 하거나 가출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리 하지 말라고 타일러도 더 반항하기 일쑤입니다.
어차피 다 못하게 할 수 없다면 ‘반드시 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해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죄책감을 가지게 하면 안 됩니다. ‘학교만 가라 공부 잘하는 것은 안 바랄게’와 같이 자녀가 사춘기에 숨을 쉴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주어야 더 삐뚤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A국장님께서 회식자리에서 자녀가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걱정하시면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냐고 여쭈어본 적이 있습니다. A국장님은 청소년기의 자녀가 이성친구를 만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이성친구라니... 이 사무관도 그때 이성친구를 사귀었나?”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중 남고 나와서 기회가 없었지만, 요즘은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국장님이 자녀가 이성친구를 만나는 것을 막으실 수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고민이 있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만나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자녀와 합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춘기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처음 스스로 하게 됩니다. 처음 해보는 질문이다 보니 ‘부모에게 나의 존재는 뭐지?’, ‘어른이 되면 나는 뭐하고 살아야 하나’와 같은 1차원적인 수준으로 질문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형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는 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녀본 적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가출한 동네 형들은 어떻게 사는지’였습니다(저는 가출할 용기까지는 없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반항하며 집을 뛰쳐나간 사춘기 동네 형들은 지금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중국집 주방에 숨어서 일하다가 선생님께 잡혀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 집 나가도 별 방도가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내 삶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사춘기에 ‘나는 왜 이럴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경로 외의 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나의 존재를 알아보는 데에 필요한 과정입니다.
고등학교 때 저는
도대체 세상은 왜 이럴까?
학교 또는 학원에 왜 가야 할까?
수학 공부는 왜 해야 할까?
좋은 대학을 가려고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와 같이 세상의 틀에 대한 의문과 반항심이 들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저를 힘들게 했던 의문은 ‘수학 공부는 왜 해야 할까?’와 ‘좋은 대학을 가려고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였습니다.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등학교 선배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선배가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명문대학을 가는 모습을 보며 ‘일단 수학 공부를 하긴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려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의 물음에 대한 답은 응원단장을 했던 B선배의 모습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었고 어쩌다 전국대회에서 8강 이상 올라가면 1학년 학생들이 응원을 하러 갔었습니다. 그 당시 2학년인 B선배가 응원단장을 맡았습니다. 응원단장은 후배들을 엄하게 연습시켰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서는 그런 B선배의 모습을 멋지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B선배가 대학에 합격했다고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좋은 학교에 입학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선배의 태도였습니다. 응원단장일 때의 멋짐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떨어진 모습으로 교무실을 돌며 선생님들께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B선배를 보며 힘들게 공부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춘기 때 찾은 해답을 거의 모두 틀렸습니다. B선배에 대한 저의 평가도 틀렸고 수학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가 찾은 답도 틀렸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에도 못 찾은 답이 하나 있었습니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일단 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춘기에 찾은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인생에서 도움이 되는 이유는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 그 자체’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과 경험이 '앞으로 살면서 찾아올 많은 심리적 방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춘기에 찾은 답이 틀릴 수는 있어도 그때의 노력은 자산이 된 셈입니다.
제가 나이를 먹으며 놀랐던 것은 사춘기에 했던 질문들을 어른이 되어 다시 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춘기에 한 고민들이 어른이 되어 겪게 된 위기와 슬럼프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서 ‘그냥 일단 먼저 하고 생각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그 결론은 이후 공부할 때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시공부를 할 때도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합격하면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때도 주변에서 ‘왜 그런 것을 공부하고 있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매번 떠올렸던 생각은 ‘일단 공부하고 생각해보자’입니다. 사춘기 때 찾은 답을 어른이 되어서도 잘 써먹었습니다.
결국 사춘기는 ‘어른이 되기 전 마지막 심리적 점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어 겪을 많은 고민과 위기에 대해 면역력을 키우는 단계입니다. 사춘기는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맞는 ‘예방접종’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