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가 없는 내용을 효율적으로 외우는 방법
“외워라. 외우면 해결되는 거다.”
제가 고등학생 때 공업 선생님이 수업시간마다 하신 말씀입니다. 그때 저는 무작정 암기만 하고 시험을 보는 방식에 대해 의문이 컸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더 해보니 영어단어, 역사적 사건, 직장의 조직도 등 이해를 하지 않고 무작정 암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입식 교육, 암기식 교육이라는 말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영어단어를 외워야 하고,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전공 용어를 암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주입만 하는 공부가 항상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때로는 무작정하는 암기도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암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목표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암기한다면 무작정하는 암기도 내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작정 암기해야 하는 내용들은 어떻게 암기해야 효과적일까요?
처음 공부하는 내용이 즉시 암기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저의 경험상 암기할 내용을 익숙하게 느끼려면 최소 3번의 반복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볼 때는 ‘아 그렇구나’하는 마음으로 읽습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용어들이 너무나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한 번 끝까지 본 후 다시 보면 전체를 구성하는 작은 개념들에 불과합니다. 일단 용어들이 외우기 어렵다는 생각, 즉 심리적 부담감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내용을 모두 암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요 내용만 머릿속에 제대로 인지가 되도록 읽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영어단어집을 보는 경우라면 핵심 단어만 보면 되고 책에 있는 예문이나 유의어/반의어까지 보지 않아도 됩니다.
두 번째는 ‘각 개념들이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그런 내용이구나’하는 마음으로 봅니다.
첫 번째 본 내용들이 전혀 기억에 나지 않더라도 당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 두 번째 볼 때는 처음 공부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데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차츰 생각이 날듯 말듯한 느낌이 듭니다.
세 번째 볼 때는 익숙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암기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을 표시해두었다가 이후 반복할 때는 그 내용을 중심으로 봅니다. 무작정 암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세계 기억력 선수권대회 그랜드 마스터가 된 이케다 요시히로가 쓴 ‘뇌에 맡기는 공부법’에서도 3회 복습을 빨리하는 것이 공부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기억력의 차이가 있어 정확한 반복 횟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에 어느 정도 새겨짐을 느끼려면 3회를 반복해야 하고, 정확하게 암기하려면 추가로 3∼5회를 더 보아야 합니다.
결국,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라면 시험장에 가기 전까지 최소 6∼8회를 반복해야 합니다. 인과관계가 없는 내용을 암기할수록 반복 횟수를 늘려야 합니다. 제 주변의 경험을 들어보아도 비슷합니다.
“자주 보세요. 반복하면 암기할 수 있습니다.”라는 막연한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반복하지만 제대로 암기가 되는지 의문이 듭니다.
무작정 암기에서 중요한 것은 반복 간격입니다.
토론토 대학의 엔델 털빙교수와 영국의 심리학자 앨런 배들리는 간격을 두지 않고 반복해서 읽는 것은 암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에서 밝혀냈다고 합니다. 즉, 간격을 두지 않고 2번 읽은 것은 1번 읽은 것과 동일합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간격을 두어야 할까요?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에 따르면 사람의 기억은 학습 후 20분 뒤 약 42%를 잊고 1시간이 지나면 지나도 약 56%를 잊으며, 하루 뒤에는 약 74%를, 7일이 지나면 80%를 잊어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 정보가 장기 기억에 저장될 때까지는 6주가 걸린다고 합니다.
완전히 잊기 전에 다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학습 후 1주에서 6주 사이에 반드시 다시 보아야 합니다. 뇌 효율 훈련 전문가인 마크 티글러가 쓴 ‘기적의 뇌사용법’이라는 책을 보면 한 달에 한번 정도 내용을 복습했을 때 성과가 좋다고 합니다.
처음 3회를 반복할 때는 ① 공부한 당일 저녁에 한 번, ② 일주일의 마지막 날에 이번 주에 공부한 내용을 다시 한번 보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처음 공부한 지 2개월 이내에 보아야 장기 기억으로 저장될 수 있습니다.
즉, 일주일 이내에 2회를 반복(공부한 당일에 한번 복습, 주말에 한번 더 복습)하고 3번째는 2개월 내에 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단어는 누적 학습이 좋습니다. 어제 공부한 것을 복습한 후 새로운 단어를 암기하고 그다음 날은 어제와 그저께 암기한 내용을 누적하여 반복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주일 동안 공부한 내용까지 누적하고 학습한 지 일주일이 넘은 내용은 반복 범위에서 제외합니다. 그러면 하루 평균 6일 전부터 오늘 암기해야 할 내용까지 암기하게 됩니다. 단어 암기는 더 자주 반복할수록 효과적입니다.
만약, 시험 열흘 전이라면 격일로 복습할 것을 추천합니다. 암기가 잘 되지 않는 내용 위주로만 줄여서 자주 반복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작정 암기를 해야 할 때 쓰면서 암기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보면서 암기하는 것이 좋을까요?
기억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외우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기억을 꺼내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무작정 암기를 할 때는 ‘입력은 빠르게 하고 항상 출력을 생각’ 해야 합니다.
단어를 외울 때 많은 사람들이 여러 번 쓰면서 암기하기도 하지만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쓰면서 외우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Vocabulary 22000', '토플 보카'를 공부한다면 반의어·유의어를 포함해서 암기하는데 하루 수십 개의 단어를 암기해야 합니다. 한 단어에 10번씩 쓴다고 해도 손이 너무 아프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머릿속에 입력할 때는 그냥 빨리 읽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그 후 출력을 해서 확실하게 암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빠르게 읽은 후 외운 것을 토해봅시다. 소리 내서 읽으면 기억한 것을 꺼내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종이에 낙서를 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플라이마우스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전화 내용을 들으면서 낙서를 한 집단이 낙서를 하지 않은 집단보다 전화 내용을 29%가량 더 많이 기억했다고 합니다.
종이가 없다면 ‘손가락으로 허공에 적는 것’도 기억력을 높인다고 합니다. 적으며 암기하는 것보다 일단 읽은 후 자유롭게 낙서를 하며 다시 상기시키는 것 효과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입력이 아닌 출력입니다.
무작정 암기는 지겨우면 실패합니다. 물론 논리 없이 암기하는 것은 1분만 공부해도 지겹겠지만, 최대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시간 범위 내에서 암기합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60분 동안 흐트러짐 없이 집중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무작정하는 암기일수록 지겹습니다. 지겨운 암기를 하는 경우에는 더 짧은 간격으로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케다 요시히로가 쓴 ‘뇌에 맡기는 공부법’에서는 ‘15분 공부+5분 휴식’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저도 무작정 암기를 할 때는 30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공부하고 10분 정도 휴식을 하였습니다.
15분 공부+5분 휴식으로 하루 3회(아침, 점심, 저녁) 공부합시다. 암기해야 할 내용이 많다면 2시간마다(하루 6회) 암기하는 시간을 배치하거나, (30분 공부+10분 휴식)으로 공부시간을 조금 더 늘립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오래 공부해도 효과는 떨어집니다. 짧게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해서 자주 암기합시다.
“아 키 크고 얼굴 하얀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우리는 사람을 기억할 때 이름보다 얼굴을 더 잘 기억합니다. 실제 사람의 뇌는 문자보다 형상을 더 잘 기억한다고 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림이 있는 신문 기사의 내용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림이 있어도 그 기사를 잘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이름과 얼굴은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여 기억할 뿐입니다. 무작정 암기할 때도 그런 원리를 활용해야 합니다.
저는 영어단어를 외울 때 이미지와 자주 연결합니다.
예를 들어 ① prescribe(처방을 내리다, 규정하다)를 암기하는 경우 스크립트 종이를 떠올립니다. ‘약사가 종이로 무엇을 쓰는 모습’을 생각하면 ‘처방하다’는 뜻이 떠오릅니다.
② carry out(∼을 완수하다)을 캐리어를 완전히 옮긴 모습을 떠올립니다.
역사적 사건을 암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① ‘옥포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첫 번째 승리한 해전입니다. 옥포의 ‘포’로부터 생각하면 ‘첫 축포’를 떠올려 ‘처음으로 이긴 해전’으로 암기합니다.
②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인데, 노란색 석양을 떠올려 마지막 해전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무작정하는 암기가 잘하기 위한 핵심 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① 무작정 암기해도 될 내용을 ‘굳이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어단어를 암기하는데 어원을 찾거나 왜 이 단어는 그런 의미일까를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일단 그냥 암기하겠다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②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진도를 나가면 ‘이렇게 공부해도 되나’하는 생각에 속도가 점점 느려집니다. 암기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또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일단 속도를 유지하며 봅시다. 그래야 자주 반복할 수 있고, 자주 반복해야 무작정 암기가 가능합니다.
※ 참고서적 : 마크 티글러 지음, 김경섭·최인식 옮김 ‘기적의 뇌사용법(2016, 김영사)’
이케다 요시히로 지음, 윤경희 옮김 ‘뇌에 맡기는 공부법(2017, 쌤앤파커스)’
김미현 저 ‘14세까지 공부하는 뇌를 만들어라(2017, 메디치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