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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후회를 덧칠하고

by 이시랑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인다. 문을 열지 말지. 나갈지 들어올지. 이러한 고민은 시계추처럼 좌우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무엇도 고르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이리저리 맴돈다.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 안으로 기울이면 바깥이 보일 텐데, 지금의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말을 더듬고 생각을 다듬는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글을 내쉰다. 나라는 캔버스에 색을 칠한다면 후회로 가득한 빛깔이 많을 것이다. 멋모르고 뱉은 말로 사람을 찌르거나 참지 못하고 부른 화로 상대방을 태웠을 것이다. 중요한 순간엔 충동을 이기지 못했고, 결과적으론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바꾸질 못할 과거를 붙잡는 일이 다반사였다. 감정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으며 후회할 것이라는 충고를 여러 번 무시했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나에게 물음을 던지는 글이 있다. 나를 흔드는 질문은 대답을 해줘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평소엔 상상력이 부족한 터라 준비된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다음으로 미루고, 언젠가는 말을 해주겠다며 스스로를 속였다. 때론 잊고 사는 게 낫겠다며 애써 물음을 잊은 척했다. 그러나 계절은 돌아오고 삶은 비슷한 듯 다르게 찾아온다.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인생은 당신이 선택한 모든 것의 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뭘 하실 건가요?’


카뮈가 말했다. 선택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요즘이다. 내가 고른 것들은 늘 실패로 이어졌다. 아니 실패보다는 어정쩡한 결과로 나타났다. 그럴 때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자기 합리화를 하기 바빴다. 조금 더 할 수 있는데, 다음을 위해 아껴놓은 거야. 해봤자 얼마나 더 좋은 결과가 나오겠어. 이러한 삶의 태도는 인생을 쌓는 것이 아닌 흩뿌리는 것에 불과했다. 여기저기에 뿌려진 시간을 주워 담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가 들었다. 그리곤 제 풀에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다.


용서를 구해야 했다. 그게 어떠한 방식이라도 좋으니 움직이고 싶었다. 작은 행동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했다. 어느 순간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에 빠졌다. 뱉었던 말을 주워 담지 못하는 것을 안다. 내 성에 못 이겨 냈던 화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과거를 고쳐 쓰며 다른 선택을 고른다. 나를 방치하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꼬였던 실마리를 풀어가며 나아가는 인생을.


여전히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인다. 여는 것도 나 자신이고, 다시 들어올 것도 나 자신이다.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차가운 현관에서 들려오던 울음소리를. 이제는 돌아오지 말라는 그 울부짖음을. 그런 것들은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무엇도 고르지 못하게 한다. 시선을 안으로 기울인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을 적는다. 놓쳤던 것들이 있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그쳤던 것들이 있다. 겁이 나지만, 나는 문을 연다. 바깥이 보인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당신은 나와 같지 않으면 한다. 물음과 바람을 동시에 적고선 허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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