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이슬 Nov 03. 2021

야 사장 나오라고 해!

사업 16년차 CEO도 전화를 받으면 목소리가 달달 떨린다.

사업16년 차에도
혼나는 것은 무섭다

어느 가을 작업실에서, 황이슬 CEO


사업을 시작하기 전, '사장'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머릿속에 펼쳐지는 근사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검정색 가죽 의자와 책상 위에 번뜩이는 명패, 그 위에 직원이 올려둔 하루의 스케쥴표를 점검하며 만인의 존경을 받으며 일하는 근사한 모습... 그러나 사장에게도 애환이 있음을 몸소 체험한 후로 부터 "어느어느 회사 대표입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작은 응원의 마음을 보내게 됩니다. 

사장에게는 애환. 가장 큰 숙제. 막으려 해도 불가피하게 마주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클레임'을 접하는 순간이지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써 고객의 불만은 가장 치명적이고 가장 극적이며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클레임에 대처하는 노하우 같은 것은 없으나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폭탄의 심지는 많은 손을 거칠 수록 짧아짐을 명심하라는 것 입니다. 불편을 겪고 언짢아 진 고객의 마음을 곧 바로 헤아려주지 못하고 이런 저런 핑계와 책임 돌리기에 급급하다 보면 심지는 끝까지 타올라, 결국 최종 책임자의 손에 넘겨졌을 때 폭발하게 되지요. 그러니 고객이 클레임을 할 때 피하지 말고 곧바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  이 모든 것은 곧 지나가기 마련 이니 낙담 속에서 오래 무기력해지지 말고 다시 경영자의 본분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것 입니다.




"사장 나오라고 해!"

두려워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사장이니까


리슬 생활한복을 입은 모델겸 황이슬의 동생, 디니


사업 초기, 어떤 손님으로부터 불만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공연때문에 신신 당부를 하며 대여한 옷인데, 치수가 맞지 않아 행사당일 곤욕을 치렀다는 클레임이었지요. 

"어머 진짜요? 어쩌죠? 어마 그럴리가 없는데, 제가 잘 넣는다고 넣었는데. 어떡해!"


전화를 받은 실장님은 놀란 나머지 어머머머와 어떡하죠를 속사포로 쏟아내며 신세 한탄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잘못 보낸 상품에 대한 항의에 사과보다  '그럴리가 없는데' 라는 탄식부터 내뱉었으니 고객은 거짓말쟁이 취급을 당했다 느꼈을 것이고, 제대로 된 메뉴얼 없이 어떡하나 허둥지둥하는 아마추어적인 모습까지 보이니 가관이라 느꼈을 것 입니다. 너무 당연하게도 고객은 화가 폭발했습니다.
 

" 야 사장 나오라고 해! 사장 바꿔! "

당시 제 나이 23살로, 사회인이라고 하기엔 순두부같이 감수성 말랑하고 풋풋한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CEO기에 피할수도 떠넘길 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위치였기 때문이죠. 뜨거운 고구마를 던져 넘기듯 제게 전화기가 넘겨졌습니다. 

"물건이 잘못 왔으면 미안하다고 먼저 해야지, 여긴 왜 이모양이야?"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매우 격앙되어 있었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심장이 터질듯이 쿵쾅거리고 눈앞이 캄캄하며 입술이 삽시간에 버석버석 말랐습니다. 큰 잘못을 해서 학생부실에 불려가 매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느껴졌어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분명 잘못한 일이라 변명할 여지도 없었고, 사과할 일 앞에 곧바로 사과하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책임이 있었기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요. 고객은 쌓인 화를 좀처럼 삭히지 못하고 10여 분을 쉬지 않고 고함을 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세심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불편이 크셨겠습니까."


최대한 정중하게 사과에 사과를 거듭했습니다. 죄가 있어 유구무언인데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사과를 하는 목구멍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갈 듯이 쿵쾅거렸고 빨리 이 통화를 끊고 상황을 지나치고 싶은데 시간이 좀처럼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몇십 분을 토로하고 나서야 지친 고객님의 목소리가 잦아들었고, 공황상태로 아득해진 정신이 돌아올 때 쯤 통화는 끝이 났습니다. 해야 할 업무가 많았지만 손이 파들파들 떨려, 지금 가위를 들면 혹여나 다치게 될 까 반나절을 놀란 가슴만 진정시키며 보냈습니다.



시련보다 두려운 건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을
계속 할 수 없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

함께 우여곡절을 겪어 온 동생이자 모델, 디니 


인생의 달콤한 순간만 누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놀랍게도 '제발 이 것만은 겪지 않았으면' 싶은 일이 꼭 생기게 됩니다. 직장을 다녀도 그렇고, 저처럼 창업하여 오너의 위치에 있는 사람도 그렇지요.
학생만 학교 가기 싫을까요? 교장도 학교 가기 싫을 수 있지요. 회사가 두려운 CEO도 있을테구요. 그러나 이럴 땐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번뜩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에잇, 더럽고 치사하다. 그만 둬버려?' , '이 일 아니면 할 일 없는 줄 아나, 거 되게 서럽네!' 

누구나 그렇습니다. 고객 클레임에 저도 그랬고요. 실수 할 수도 있고 충분히 사과한 것도 같은데 계속되는 불만에 슬슬 화가 나서 '나라고 못 싸울 줄 아나, 확! 부어버려?' 싶은 생각이 목구멍까지 오기도 했지만 끝까지 참을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질러버리고 나면, 이 일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한복을 내 평생의 동반자로 삼기로 마음먹었는데 초장부터 비뚤어지면 어떻게 롱런 하겠어요. 그 고객이 리슬이 유명해져서 TV든 신문이든 매체에 나온 걸 보고 , '저 집 한복 별로야!' 라고 하는 걸 상상하면 화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을 참지 못해 내가 한복과 이별해서는 안된다. '한복'의 가치를 한톨이라도 하락시키면 안된다! 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내가 사랑하는 한복이, 나의 분신이자 나의 모든 걸 쏟아 부은 리슬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평가절하 받는 건 참을 수 없었으니까요.

눈물 많고 여린 동생 디니도, 리슬과 함께 하며 마음 단단해졌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감당하기 조금 벅찬 일을 만나면 숨거나 피하기에 급급하지요. 아니면 내가 일을 잘못 선택했나? 나에게 이 길은 맞지 않나? 술잔을 기울이며 울다가 다른 일을 찾기도 하고요.


그러나 스스로 선택하고 잘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일이라면, 남들이 그 결심에 영향을 주도록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멀리 봐야하고, 이 순간이 지나고 나서도 후회하지 않을 지 생각해 봐야 하지요.

잠깐의 힘듦을 피하려고 이 일이 맞지 않는다고 자기 합리화하는 건 아닌지 하루 뒤, 한달 뒤, 1년 뒤를 생각해 보는 것이죠!

슬럼프가 찾아올 수도 있고, 스트레스 받을 일은 도처에 깔려 있지요. 클레임이 왔다고, 일하다가 욕을 먹었다고, 실수했다고, 동료와 사이가 안좋다고,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해도 안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잠깐 일어난 불같은 성정으로 그동안의 노력을 헛수고, 말짱 도루묵으로 만드는 선택은 하지 마시길!
모든 건 다 지나간답니다. 

마음의 불씨가 힘들게 일궈놓은 삶의 정원을 태우는 일이 없도록 오늘도 모든 창업가들 화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한입썰 2] 나는 한복 100번 입기에 실패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