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세밑. 입대 앞둔 이충환과 구례 가는 기차 탔다.
2년 과정 마친 우리는 날짜만 다르지 저마다 입대 앞두고 마음 뒤숭숭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에게 입대는 세상의 끝이었고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여겨져, 펄펄 끓는 젊음을 바쳐야 한다는 짐작에 억울하고 비통한 심정이었다. 방학인데도 걸핏하면 학교 밑 술집에 모여 막걸리를 마셔댔고 김치뿐인 안주에도 민간인 신분을 즐기려고 아등바등했다. 하지만 시간은 냉정하고 엄격했다.
입대를 불과 몇 주 앞둔 충환이 말했다.
“구례에 가볼까?”
“거기에 왜?”
구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나는 어리둥절했다.
“혜영이가 구례에 있어. 입대 전에 마지막으로 보려구.”
아, 동아리 문창반 동기. 나는 입안에서 낮게 중얼거렸다. 동기 중에서 홍일점. 시 쓴다는 아이. 농구선수 해도 좋을 키 큰 아이. 담배 없어 북악관 로비에서 십 원씩 구걸할 때 선뜻 은하수 한 갑 사준 아이. 습작 토론회 때마다 냉소적인 비웃음을 날카로운 단검으로 날리던 아이. 제대 후 복학하자 이미 졸업한 아이. 박사과정 마치고 강사 노릇 시작할 무렵 아이 낳고도 석사과정에 입학한 아이. 내게 어서 결혼하라고 충고하던 아이. 동기들에게 절대로 연락하지 않는 아이….
“가자. 그런데 돈은 있냐?”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뿐이라 어떻게 차비 마련했을까. 아마도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기차를 탔던 모양이다. 달랑 차표만 마련한 우리는 구례에서 목포까지 여비는 홍일점에게 뜯고 목포에서 서울까지는 김용덕에게 받아내기로 작정했다.
요즘도 만나는 김용덕은 광고회사 국장님이라 해외 출장 잦고 거실 장식장에 양주가 가득하다. 녀석의 집에서 동기 모임 할 때는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강북에서 강남까지 거리감은 좀처럼 극복할 수 없고 골프채며 최신 가전제품들이며 베란다 풍경에도 쉽게 주눅 든다. 우리는 저마다 중산층이라고 자부하지만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간이역도 정차하는 지루함에 내몰려 이충환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녀석의 집에 놀러 가, 잠실 수영장에서 익사할 뻔했다거나 황량한 들판 가로질러 석촌 호수에 가서 오천 원을 주워 푸짐한 외식 즐겼다는 거나 녀석의 형님이 사준 갈매기 살코기를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도 했을지도. 동기 모임으로 만나면 자신이 주웠다고 서로 주장하는 통에 학생 때 동아리방에서 멱살 잡듯 논쟁 일삼은 분위기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지금은 드문 객차 풍경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통학하는 여학생들의 가볍고 호기심 많은 재잘거림과 읍내 장터로 가는 할머니들의 말참견이 뒤엉켜 왁자지껄한데 보자기에 싸여 목만 빼곡히 내민 닭과 텃밭 채소 꾸러미, 저만치 떨어진 자리에 앉아 사뭇 못마땅하다는 듯 눈살 찌푸리는 할아버지의 꽉 다문 입술, 차창 밖은 고즈넉한 산과 들과 햇살들과 바람들.
아직도 여전히 도시 빠져나가야 비로소 대자연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곁눈질할 수 있으니 변하지 않는 것도 세월인 모양이다.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 까마득한 옛날이나 지금이나 삶의 풍경 역시 닮은꼴이지 않은가. 그때들도 가난한 가장이 있었을 터이고 눈앞의 이익이나 권력에 몰두한 이들도, 사랑에 겨워 애타는 젊은이도 있었을 게다.
세월은 변하지 않고 사람만 바뀌는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오늘 서 있는 이 자리는 오래전 누군가의 자리이고 훗날 누군가의 자리가 될 터이니 하루 대부분 먹는 일에만 시간 보내는 곰처럼 사는 일에만 열중할 게 아니라 존재하는 일에 눈길 줄 일이다. 맺고 있는 관계가 아름다운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지, 그리하여 이윽고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저 끝에 서서 잘 살았다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저마다 존재하는 일에 눈길 줄 일이다.
“기차표가 없어졌어.”
구례역에 내려 주머니 한참 뒤지던 이충환은 울상이었다. 먼지뿐인 주머니에 두 손 찔러 넣고 한숨만 쉬다가 졸지에 무임승차로 몰려 역장실에서 초등생처럼 두 손 들고 무릎 꿇었다. 알고 있는 건 홍일점 전화번호뿐. 다행히 홍일점은 차비 가지고 역으로 찾아와 주었고 이충환과 나는 교도소 출소하듯 역장실을 빠져나왔다.
구례읍에서 반나절을 어떻게 보냈나. 장터 여기저기 돌아다닌 건 흐릿하게 떠오르는데 재첩국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다. 개강해도 만날 수 없어서인지 혹은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았던지, 홍일점은 성가시거나 귀찮은 내색하지 않고 헤어질 때까지 잘 놀아주었다. 눈발 거칠게 휘날려도.
정오 지나 오후 몇 시쯤. 홍일점과 헤어져 버스를 탔다. 광주 거쳐 목포로 가야 했다. 피곤한 탓에 이충환과 나는 시골 버스 낡은 의자에 앉아 말없이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눈발은 부쩍 거칠어졌다. 입대 앞둔 비통한 심정에, 다시 만나지 못할 홍일점과 이별이 더해져 젊은 날들이 구슬프고 발바닥까지 가라앉은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밤 기차에 시달리며 설친 잠도 그렇지만 구례 읍내 쏘다니며 낮술 마신 탓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창 밖 섬진강 건너에 눈 덮인 간이역이 보였다. 간이역 지붕에도 수북이 눈이 쌓여 남도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겨울 풍경이었다. 그 지붕 처마 아래 역 이름 눈에 들어왔다.
압록역.
내 마음에 박힌 이름은 왜 압록강역일까. 왜 압록강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다, 여겼을까.
지금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