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Platon, BC428/427∼BC348/347)의 철인 정치론은 여전히 유효할까?
4.15(21대 총선)가 하루 지난 늦은 오후. 햇살이 넉넉하다. 정치가를 꿈꾸던 플라톤이 철학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김수영 시인이 연극을 그만두고 시로 전향한 그것만큼 재미있는 사건이긴 하지만, 정치 욕심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한 미련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플라톤 개인의 선택과 집중이 결국 철학자의 정치를 주장하는 형태로 나타났고 철학의 본령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긍휼(矜恤)이라는 점에서 정치가의 기본적인 덕목으로 규정했다고 볼 수 있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의 당선 소식은 눈썹까지 면도칼로 밀고 다락방에 처박혀 학력고사를 준비하던 고3 때 만났다. 각종 참고서에 코를 묻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신경 따위 쓰지 않고 오로지 대학만 생각하던 무렵이라, 더구나 빛고을 타고 앉은 전두환의 시대였던지라 다소 생소하게 다가왔다.
고2 때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상복 차림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통곡과 하늘이 무너졌다며 이제 대한민국은 없다는 식으로 조중동 씨가 연일 떠들어댔을 때도 이 기막힌 코미디는 도대체 뭐지? 의아함에 놀라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고, 이내 참고서에 빠져들었지만. 어쨌든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 소식은 이상하리만치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딱히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의 입지전적인 삶의 궤적이 내게도 있지 않을까. 막연하고 희망 섞인 바람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명박의 당선 소식을 접한 것은 진벌리에 출퇴근하던 무렵이었는데 하필이면 푸세식 변소에서 엉덩이를 까고 아랫배에 힘을 주던 순간이었다. 첫 번째로 머릿속에 들어온 돈오(頓悟)는 대한민국은 망했다였고 플라톤의 철인 정치론에 대해 손톱에 낀 때만큼이라도 알고 있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람을 꿈꾸었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다. 장사꾼이 정치하면 어떻다는 것은 요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까도 까도 끝을 알 수 없어 아예 포기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명박 양파껍질 벗기기는 언젠가 빛을 보지 않을까 싶다. 반민특위를 무산시킨 이승만도 아직 재평가 내려지지 않았으니 한참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박근혜의 당선은 아마도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확인했을 것이다. 부자는 3대를 못 간다고 했으니 정치적 부자도 그러거니 했다. 최초로 탄핵을 당했으나 총살보다 낫지 않은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권력을 쥐고자 했던 사람들의 말로가 비참한 것은 정치가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철학자의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였거나 알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하고 삶은 어차피 한 번인지라 한 방에 인생 역전 노리는 천민자본주의 의식이 산업화 세력에게서 배양되고 전파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내 삶도 그렇지만 절벽은 항상 예기치 않는 순간에 장소에 있다는 것을 민주화 세력이 겸허히 받아들였으면 한다.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김수영 시인부터 되살려내 충고를 들어야 하지만, 사실 창동역에 자전거 바퀴 바람을 넣으러 가면, 콘크리트 기둥에 붙어 있는 젊은 날의 김수영 시인의 얼굴을 맞닥뜨려 잠시 주춤하면서 부끄러움과 써야 할 글들에 대해 골몰하지만, 서둘지 말고 계단 밟고 올라가듯 천천히 하나하나 처리할 일이다. 신라 초기부터 우리에게 맞는 글자를 갖기 위해 수천 년 암중모색하지 않았던가.
목요일이다. 첫째가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세상의 모든 목요일은 아프니, 긍휼(矜恤)의 정신없이 정치는 과연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