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천장에서 느닷없이 물이 떨어졌다. 처음에 다용도실 세탁기 근처 바닥이 흥건하더니 둘째 방 천장 벽지가 흠뻑 젖고 급기야 둥근 LED 전등에서 거침없이 물방울이 쏟아졌다. 일주일 전부터 수도관 교체 공사를 하니 다용도실 배수구에 분진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관리사무소의 안내 방송이 있긴 했으나 천장에서 물이 쏟아질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내가 서둘러 8층으로 올라갔고 공사를 하던 분이 내려와 천장을 쳐다보았다.
“다용도실을 보니 온수던데 터졌나요?”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천장에서 물 떨어지는 일은 숱하게 겪은 터였다. ‘늙은 아버지1’에서 밝혔듯이 31번지에서 쫓겨나 월계동 우이천 뚝방에 있는 무허가에 살 때 걸핏하면 구청 사람들이 나타나 슬레이트 지붕이며 속 빈 시멘트 블록을 하다못해 구들장까지 인정사정없이 부수곤 했다.
사람들이 해머나 육각 빠루 따위들을 어깨에 걸쳐 메고 떠나면 나는 부서진 슬레이트 조각들을 얼기설기 엮어 지붕을 올렸다. 비 오는 낮이건 밤이건 별빛 달빛 숨어들던 슬레이트 틈새로 빗물이 떨어졌다. 세숫대야나 바가지를 전리품처럼 방바닥에 늘어놓고 감수성 예민한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온수를 막아야겠네요.”
“그래 주시겠어요?”
“당연하죠.”
8층에서 공사하는 소리는 여전히 들렸고 둘째는 천장에서 물 떨어지는 황당한 상황에 놀라 방바닥 가득 놓인 신문지 피해 침대 구석에서 옹송그리고 있었다. 김장할 때나 쓰던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야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들. 가만히 보면 정말 獨, 獨, 獨 떨어진다. 떨어져 물은 대야 안에서 하나가 된다. 김수영의 ‘달나라 장난’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김수영 '달나라 장난' 중에서)
천장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지던 물이 멈추고 벽지가 조금씩 천천히 마르기 시작했다. 둥근 LED 전등을 떼어내자 당연히 벽지가 흠뻑 젖어 있다. 머리 위에서 상상조차 하지 않던 일이 벌어진 황당한 상황이 여전히 믿기지 않은 둘째는 중학생 시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육각 빠루 뒤에는 사람 가면을 쓴 거대한 개발독재가 버티고 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인지하던. 혹은 김수영처럼 독기 오른 세상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영역에 발을 함부로 들여놓으면 ‘서러운 것인데’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안되고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서서 돌’아야만 하는 '운명과 사명'을 느끼고 있을까? 둘째는 입술 꽉 다물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보니 천장에는 영락없는 거대한 쥐오줌 자국이 선명했다. 지붕과 천장 사이에 빈 공간이 있던 초등학생 시절에 칼잠으로 살던 월곡동 산동네 월세방에서 밤마다 집쥐들의 운동회가 열렸다. 피곤한 하루를 달래던 즈음 우당탕. 천장이 시골 장터처럼 떠들썩하곤 했다. 앙상블(Ensemble)처럼 창문 밖에는 60년대의 늦바람들이 좁은 골목을 싸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달 뒤에 배관 공사가 끝난대. 그때 도배를 해준다는데? 참, 505호는 매트리스가 다 젖었대.”
“도배야 관리사무소에서 해준다고 하지만 매트리스도 보상해주려나?”
“글쎄, 해줄까? 말까?”
“관리사무소도 주민들 관리비로 운영하고 정부도 세금으로 운영하듯이 말이야. 군림할까, 봉사할까 판단할 수 있겠지. 얼마나 세상이 변했는지. 아니면 여전히 꿈쩍 않는지.”
라고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여전히 어제처럼 팽이는 도는데 아내는 관리사무소와 통화한 내용을 다시 풀어놓기 시작했다.
“관리사무소에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