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노릇 십여 년째. 아내는 두 딸 앞세우고 단양 부부 집에 놀러 갔다, 일요일 오후.
학기 끝나 학교 갈 일은 없다. 생각해보면 정릉골 징그러울 정도로 다닌 셈이다. 산수 하듯 더하기 빼기 하면 남는 게 없다. 삶의 저 끝까지 함께 갈 관계가 있는 곳도 아니고 글쓰기 일깨워준 곳도 아니다. 게다가 ‘두이노의 비가’ 읽던 73계단과 실내 축구 하거나 비행기 날리던 동아리방도 없어져 정릉골 시간은 마음 안쪽 화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실체는 없고 흔적만 있는 시간화석, 그 많던 오후들.
학생회관에서 사범대로 가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계단 중간에 그러니까 학생회관 건물 지하 2층쯤 되는 곳인데 계단이 경사진 곳에 있으니 학생회관 지하 2층이지만 계단 쪽은 지하가 아닌 셈이고 계단 중간 계단참과 맞닿은 곳에 <형설재>라는 꽤 큰 현판이 걸려있는 입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사범대를 지나면 뒷문이 있고 뒷문에서 조금 내려가면 뒤포가 있었다. 종이컵을 아이스하키 퍽(Puck)처럼 납작하게 만들어 축구 하다가 재미없으면 일제히 창가에 매달려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 있는 게 이상하면 뒤포로 갔다.
정문은 늘 사과탄과 지랄탄 냄새를 뿜어냈고 젊은 우리들 눈물 콧물도 있었다. 그 무렵, 사는 게 사는 시간이었을까.
“도대체 우리는 왜 지금, 태어난 거야?”
우리 중 누군가 말했고 모두들 대꾸 없이 소주잔을 들이켰다. 엉망이 되도록 취해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와 문학을 얘기했다. ‘전태일 평전’이나 ‘전환시대의 논리’ 따위를 얘기하기도 했으나, 그 말들은 누구 귀에도 닿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뚝뚝 떨어져 바닥에 쌓였고 지붕 낮은 술집을 나서면 우리들 그림자가 되어 쫓아왔다.
형설재 입구에는 서너 명씩 몰려 앉아 담배 피워대는 남학생들이 간혹 여학생도 있었다. 그들 눈빛은 최루가스와 소주에 절어 있는 우리들과 달랐다. ‘진달래꽃’을 비웃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를 무시하던 객기로 똘똘 뭉쳐있던 우리들은 멱살 잡을 정도로 논쟁을 일삼다가도 정문으로 달려가 페퍼포그 차량에서 포탄처럼 쏟아지는 지랄탄을 피해 이리저리 달음박질쳤다.
최루가스와 땀이 뒤엉켜 벌레처럼 머릿속까지 파고들어 뇌간을 간질이는 느낌들. 우리들은 집단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니 학교 전체가 집단 우울증에 갇혔지만, 형설재는 소도(蘇塗)였다. 고시 준비생 혹은 예비 합격자들의 땅, 형설재. 정문에 행정고시 1차 합격을 축하합니다, 사법고시 2차 합격을 축하합니다, 라는 글자가 선명한 거대한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유월 들어 출정식은 더욱 잦아져 우리들은 단과대 깃발 아래 예비군 차림으로 민주광장에 모였다. 강의실과 중앙도서관은 텅 비어 있었다.
“우리 중 쟤네들이 있긴 하는 걸까?”
정문을 가운데 두고 전경들과 우리들이 맞서는 상황에서 높게 걸린 현수막을 가리키며 누군가 말했다. 법과대학 깃발을 보긴 했지만 오십 명도 채 되지 않았고 대부분 교련복 입은 앳된 얼굴들이었다.
호헌철폐 독재 타도 외치며 교내 행진하다가 정문 돌파를 위해 일제히 달려갈 즈음 페퍼포크(pepper fog)를 장착한 검은 차에서 지랄탄이 쏟아졌다. 지랄탄은 땅바닥에 떨어져 독사가 혓바닥 날름거리는 소리처럼 쉬쉬식거리며 제멋대로 이리저리 기어 다니면서 최루가스를 뿜어냈다. 우리들 대부분은 예비군 옷에 예비군 모자를 쓰고 콧수염 붙이듯 치약을 두껍게 바르고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그해 유월 흘렸던 최루가스 눈물들, 잊을 수 있을까? 남산보다 유구한 억압의 역사 한 페이지가 된 하루들을.
며칠 뒤 우리는 명동으로 갔다.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저마다 반짝거렸다. 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어깨동무하고 운동회 응원하듯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함성 질렀다. 여기저기 폭죽처럼 최루탄이 터졌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모였다. 백골단 청년들은 거리 곳곳에 도둑처럼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흩어지면 모이기 전에 뒤쫓아 왔고 끝내 모이지 못한 몇몇은 명동성당 쪽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완전군장 구보도 마다하지 않던 육군 병장이었지만 나는 몇몇과 떨어져 혼자 건물 계단으로 뛰어올랐다. 등 뒤로 군홧발 소리가 들려와 두 개씩 세 개씩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얼마나 뛰어올랐을까, 군홧발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나는 마지막 계단참에 서 있었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밀자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가 몰려왔다. 옥상 여기저기 넥타이 맨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헐떡거리며 다가서는데 저만치 명동성당이 보이고 유월 하늘은 너무 맑고 푸르렀다. 우리들 그해 유월의 하늘, 시간화석.
그해 여름 지나고 방학 동안 겪은 무용담도 시시해지는 가을이 깊어갈 즈음 우리들은 안다만(Andaman) 해역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안다만 수수께끼(1987년 KAL기 폭파사건)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지만, 그 무렵 우리들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 말하지 못한 보이는 손을 보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살아가야 하는 날들 말고 살아가고 싶은 날들을 어쩌면 영영 보지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그해 겨울 초입 현실로 나타났다. 빛고을 올라타고 앉은 그들의 땅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십여 년 지난 지금 서로 다른 일 하면서 가진 게 젊은 몸뚱이뿐이던 때와 달리 저마다 자식들과 얄팍한 월급봉투를 걱정하며 소문으로 안부 전하며 산다. 잡지사에 교육청에 은행에 누구누구가 있고 또 누구는 과일 도매상. 어떤 누구는 이 땅 떠나 불법체류자라는 소문들. 그해 유월 아주 잠시 맑고 푸르던 하늘은 시간화석 안에 있다. 여전히.
별은 항상 머리 위에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