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는 방귀쟁이

by 이순직

“자기야, 똥냄새나잖아!”


뒤집기는 손쉽게 하고 어설프게 기어 다닐 무렵, 첫째가 혼자서 잘 노는데 아내는 대뜸 핀잔이다.


거실 겸 부엌을 가운데 두고 양쪽 끝에 안방과 건넛방이 있던 번동 신혼집에서 첫째는 거실을 가로질러 건넛방까지 거침없이 기어 왔다. 엄청난 상금이 걸려있는 자동차 경주를 구경하며 응원하듯 나는 곧잘 흥분했다. 얼마 전만 해도 세상에 없던 존재가 눈앞에서 웃고 울고 게다가 똥까지! 아내 다그침에 기저귀 갈아주면서 가만히 똥을 보고 있으면 많은 똥이 지나갔다.


군 복무 때 완전군장에 구보하던 먼지 날리는 길옆 들판에 호수처럼 펼쳐진 똥밭이며 겨울이면 어김없이 부대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똥탑이며 어린 시절 벌방 사갑리 뒷산에서 나무하다 엉덩이 까고 누었던 똥. 글 쓴답시고 주문진 바닷가 여관방에 몇 주 동안 머물며 누었던 생똥도 떠올랐다. 보거나 누었던 모든 똥보다 맏딸 기저귀 똥이 너무 예쁘고 고마웠다. 늦장가 탓도 있지만,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 아이 때를 되살아보는 경험들이 날마다 새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 선생님은 방귀는 물론이고 똥도 싸지 않는다, 믿었다. 천자문(千字文)이나 동몽선습(童蒙先習) 따위를 배우는 건 고사하고 끼니조차 힘겨웠던 무렵이라 그렇게 믿었던 것은 집안 내력 탓이 아니었을까. 차츰 나이 먹으면서 선생님도 똥 눌 거라는 짐작은 간혹 했지만 화장실 들어가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확신하지 못했다. 사춘기 거치면서 선생님도 똥을 쌀까 아닐까 하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무엇인가. 종교는 왜 있는가.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사람은 어디에서 왔나. 대자연은 나에게 무엇인가.


선생님이 똥을 누느냐 하는 문제에 골몰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발등에 떨어진 불을 감당하기에도 바쁘고 벅찼다. 홍역과 다름없는 사춘기를 헐레벌떡 지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 문제는 의식의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생 때 화장실로 들어와 볼일 보시는 교수님을 보고서 자연스럽게 선생님도 똥 눈다는 명제를 완성했다.


입대하고 복학하고 졸업이 코앞일 때에도 연애 경험은 없었지만 여자도 똥 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똥 누면 당연히 여자도 똥 눈다는 유추인데 남자 화장실 맞은편이 여자 화장실이어서 증거도 충분한 셈이었다. 하지만 방귀는 뀌지 않는다고 믿었다.


나는 화장실에 자주 가는 편이라 방귀를 거의 뀌지 않는 편이다. 솔직한 얘기로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다. 내가 방귀를 좀처럼 뀌지 않으니 여자들도 당연히 방귀 따위는 뀌지 않거나 뀌더라도 나보다 더 적게 그러니까 두서너 달에 한 번 정도 뀌지 않을까 짐작했다. 실제로 여자 후배들과 술자리 하거나 아내와 연애할 때 방귀 뀌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여자들은 똥 누긴 하지만 방귀 뀌지 않는다. 어딘가 부족하지만 완성한 이 명제를 누구에게도 말하긴 좀 쑥스러워 혼자 속에 담고 있었다.


결혼해서 첫째 낳고 둘째 낳을 때까지 방귀에 대한 명제는 꽤 잘 들어맞는 편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드디어 방귀를 트기 시작했고 급기야 따발총 쏘듯 연달아 뀌어대는 놀라운 경지까지 보여주니 내 명제는 휴짓조각이나 다름없어졌다.


“소음이 너무 심해.”

“수술 때문이야.”


뭐라고 한마디 하면 아내는 수술 탓으로 돌려버렸다. 의학적으로 따발총 방귀가 수술 때문인지 그러니까 치질 수술이 괄약근을 약화하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어쩌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가 방귀 뀌면 둘째가 대뜸,


“누구 방귀야?”


묻는다. 나는 누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잽싸게 묻는다.


“우리 집 방귀 대장이 누구지?”

“엄마!”


첫째와 둘째가 동시에 대답한다. 첫째는 공모의 눈빛을 나에게 보낸다.


“엄마가 또 방귀 뀌었네, 뭘.”

“맞아, 엄마야.”


이쯤 되면 아내는 자포자기다. 때마침 이거나 먹어라 하는 식으로 따발총 방귀를 뀌었다.


지천명(知天命)을 앞두고 비로소, 그다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선생도 여자도 똥 누고 방귀 뀐다는 명제를 완성했다.


강의하러 학교에 가서 스스럼없이 학생들과 나란히 소변기 앞에 서서 오줌을 눈다. 몇몇 학생들은 선생이 학생들 있을 때 화장실에 와서 오줌을 누나, 하는 눈빛으로 보기도 하고 또 몇몇은 하필 오줌 눌 때 화장실에 들어와 긴장하게 만드느냐, 하는 눈빛이었다. 수직적 권위보다 수평적 권위를 좋아하는 나는 학생들 눈빛이 이랬거나 저랬거나 신경 쓰지 않고 시원하게 오줌을 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중국 화장실 얘기가 떠오른다. 화장실 문이 없는 건 그나마 양반이라 한다. 칸막이가 없으니 옆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볼일 보거나 급기야 앞사람 엉덩이 보면서 볼일 보는 도랑형 화장실도 있다고 하니 중국인의 볼일은 엉뚱하면서도 흥미롭다.


문득 완전군장에 구보하면서 보았던 똥밭이 눈 앞에 펼쳐진다. 부자와 아이와 여자와 선생이 눈 똥들이 한 몸으로 뒤척이며 고즈넉하게 가을 오후 햇살 받는 드넓은 똥밭. 그 똥밭에 높으신 놈 기름진 똥도 있고 기초생활 수급자의 병든 양반똥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젖어 창밖으로 세상을 보니 마음이 씁쓸해진다. 언제쯤 똥밭은 황금밭이 되려나. 힘센 똥과 건강한 똥이 언제쯤 병든 똥과 힘없는 똥과 서로 어우러져 황금밭이 될까.


그런 날이 이 땅에 올 수나 있을까.

이전 20화가을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