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서재를 갖고 싶다는 욕망에 짓눌려 있다. 책장을 안방 침대 옆에 둔 지 벌써 이십여 년. 하지만 안방이 서재가 될 리 없다. 책장은 있으나 책상이 없다. 나머지 방 두 개는 첫째와 둘째가 쓰고 있으니 쫓기듯 거실 식탁에 노트북 올려놓고 글을 쓰다 보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글을 쓰다가 필요한 책이 떠오르면 안방으로 간다. 금세 식탁은 온갖 책들로 북적거린다. 잠자는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당연히 어쩔 수 없이 새벽에 글을 쓴다. 애당초 거실은 가족 공동의 공간이라 방과 방을 잇는 통로이고 밥 먹는 식당이고 아내가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는 극장이다. 새벽에 비로소 나만의 공간일 수 있다. 예전에도 식구들이 모두 잠든 자정 지나서야 식탁에 앉았다. 어쨌든 거실은 서재가 될 수 없다. 아쉬운 대로 대용품이다.
아파트의 공간 쓰임새를 보면 예외 없이 서재가 없다. 말하자면 경제부흥기에 접어든 시기에 서재는 불필요한 공간이다. 집 밖으로 나가 열심히 일해서 수출 품목 하나라도 더 늘이고 개미처럼 허리 졸라매고 아등바등 살면서, 역사나 존재나 정의나 하는 것들은 입 밖에도 내지 못하게 만드는 9시 뉴스 따위에 둘러싸여, 어쩌면 지금도 아버지들의 삶을 우리가 사는지도 모른다.
중산층의 필요 조건이 여전히 물질적인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아직도 헐벗고 가난하다.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중산층 조건은 아무리 두 눈 부릅뜨고 살펴도 없다. 하물며 ‘서재 있는 집’이 필요 조건이 될 리가 없다. 살아온 시간을 내재화(內在化)‧육체화(肉體化)하는 공간으로써 서재는 어쩌면 삼시 세끼 밥 짓는 부엌만큼 절실하지 않을까. 책에서 배운 지식 위에 날것으로서 삶의 지혜를 짓는 곳이니.
돌아보니 내게 서재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신창동 대신빌라에 살 때 나만의 방이 있었다. 막내가 캘리포니아로 떠나고 둘째마저 결혼과 동시에 분가한 상황이었으니. 그러나 서재 역할을 온전히 했다고 여기기엔 뭔가 조금 부족하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잠자거나 혼술하거나. 누님과 두 동생의 결혼식 사진을 하필이면 나만의 방에 걸어두었으니 아버지의 의도를 날마다 맞닥뜨려야만 했다.
더구나 일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첫 조카 유정이가 발자국 꾹꾹 찍었으니. 대신빌라에서 어진내(仁川) 선학동 아주 아파트로 이사 갔을 때는 집 전체가 서재였을까. 역시 의문이 든다. 살림살이 하나 없는 아파트에 덩그러니 버려진 채로 지내지 않았나. 물론 지금도 기억하는 오후의 들판 산책은 멋진 경험이었다. 결혼하고 첫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신혼집 건넛방은 제법 서재 역할을 했다. 책상도 있었고 책장도 있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창동 주공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첫째가 태어나면서부터 서재는 실종 상태다. 지금까지.
신혼부터 지금까지 다소 거칠게 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의 나를 만나기 위해 여러 직업을 거쳐야 했고 삶의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지독한 기다림을 견뎌내야 했다. 서재도 없이. 어쩌면 흐르는 물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데로 내버려 두면서 살기도 했을 것이다. 글쓰기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투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짐짓 무심한 눈빛으로. 엉망으로 취해 초점 없는 눈으로 세상 건너다보는 것으로.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자기부정이었다. 지금은 그것마저도 과정이라 보지만.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몸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이윽고 영혼까지 털린다. 깊은 허무에 빠지며 삶에 대한 보복으로 죽음을 떠올리기도 한다. 탈출하기 어렵다. 삶에 대한 거대한 계획이라든지 현실에 대한 충고 따위는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침묵하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관계에 대해 침묵하고 햇살에 대해 침묵하고 권력에 대해 침묵하고 급기야 자신에 대해 침묵한다. 삶은 그저 텃밭에서 하루 벌어 하루 연명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흔들리는 부질없는 헝겊 쪼가리라고 여기면서. 상징을 담을 수 없는 헝겊은 그저 펄럭이는 바람이라고. 그런 터널을 수도 없이 거쳐왔다. 서재도 없이.
우리는 모두 서재 없는 집에 산다. 거실과 안방은 있을지라도. 온갖 교육과 종교와 방송이 하향 평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상에서. 세종의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보다 어쩌면 더욱 치사하고 가혹한 서재 없는 집. 역사와 민족과 존재와 정의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서재 없는 집. 하여 우리는 물질에 갇힌 삶을 산다.
나는 언제쯤 서재를 갖게 될까. 당신은? 개혁보다 어려운. 혁명은 차라리 쉽기나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