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갈나무 숲 11

by 이순직

11


무거워 지칠 때도 되었는데 입꼬리가 올라가 벙글벙글 웃는 방대가 밉상이었다. 체력이 금방 바닥나는 걸 본 언니 앞에서 계속 업고 간다고 고집 피울 수 없었다. 고집부릴 상황도 아니지만 방대가 양보해서 희라를 업고 내려간다고 해도 얼마 가지도 못하고 아랫도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으면 제부 후보에서 여지없이 탈락이었다. 희라가 언니와 함께 나타났을 때 일방적으로 승리할 거라고 자신했다.


우이암으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섰을 때 행운이라 믿었다. 방대보다 먼저 우이암에 도착하면 언니도 정확한 상황판단 능력을 인정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해득실을 위한 경쟁이 바글거리는 사회에서 과감한 결단과 흔들림 없는 행동은 행불행은 물론이고 운명도 가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먹거리를 향한 본능적인 감각은 상황판단의 예민함에 달렸다.


그러나 지름길은 극단적으로 험악한 길이었다. 그 길에서 희라가 돌부리에 차여 발목이 겹질리는 순간 행운의 여신은 나를 버렸다. 불과 십여 분 동안 희라를 업고 우이암에 도착할 때까지 헐떡거리는 저질 체력은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웠다. 간절한 바람이던 가벼운 발목 겹질림도 아니었다. 중증이었다.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희라의 등에 닿을락 말락 손을 뻗고 조심스럽게 뒤따라가면서 반전의 기회를 노렸다.


“힘들지 않아?”


희라가 방대에게 말했고 교대할 기회였다. 방대의 발길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내리막길인데도 안정적이었다.


“방대야, 교대할까?”


험악한 내리막길을 거의 내려와서 자신감은 있었다. 가다가 꼬꾸라져도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각오였다.


“다 내려왔잖아. 끄떡없어. 휴일이라 병원이 있을까?”


“우선 집으로 가서 찜질부터 해야죠.”


언니가 끼어들었다. 내 말보다 방대의 말에 빠르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패배의 직감이 짙어졌다. 친구에서 애인으로 넘어가는 선을 통과하기는커녕 밟지도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기회는 항상 있는데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사촌 동생의 면회를 위해 인제에 갔을 때 희라와 함께였으면 지금 같은 상황이 펼쳐졌을까. 면회를 끝내고 돌아와 희라를 만났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의지를 보여줬더라면 등산 따위는 단호히 거절했을 터였다. 지나간 일들을 앞에 세워두고 상상하는 속 좁은 가정은 나를 더욱 초라하게 했다. 도봉사를 지나가며 속은 울상이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방대의 허벅지는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었다.


“방대 등이 편안하네. 민수야. 아래쪽 공기는 어때? 여긴 더 상쾌한데?”


희라가 고개 돌려 나를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우스갯소리인데 경기를 주관하는 심판처럼 말했다. 불길한 예언 같아 섬뜩했다.


“그다지 나쁘지 않아. 농담할 정도니 좀 괜찮아졌어?”


“아직 부기가 가라앉지 않았어요. 먼저 가서 택시를 잡을 테니까 방대 씨, 천천히 오세요.”


언니는 냅다 뛰어갔다. 희라의 등 가까이에 손을 뻗치고서 참담한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한 번의 패배일 뿐 최종 승부를 겨루는 기회는 남아 있다. 삶의 가장 커다란 변곡점인 결혼을 등산으로 결정하는 어리석음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더구나 방대는 탈북자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상황에 따라 바뀐 행동을 할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쌓인 사고방식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방대도 예외가 아니다. 결혼을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해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겉옷만 바꿔 입는 것이다. 사람의 저 밑바닥은 변하거나 바뀔 수 없었다. 꼴값 떠는 정신 승리라고 해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의지였다.


“고마웠어요.”


언니가 택시를 타면서 인사말 했다.


“당연히 할 일이죠. 집에 가서 몸조리 잘하세요.”


언니가 방대에게 하는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서둘러 가로채서 대답했다. 방대보다 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택시가 보이지 않자 앓던 이를 빼낸 듯 마음 한구석이 시원했다. 실수에 매달려 침통할 필요가 없었다. 발목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 흐려질 터였다. 낯선 거리에 방대와 둘이 서 있자니 뻘쭘해졌다. 우승컵이 사라진 경쟁은 무의미했다. 노골적으로 견제구를 날린다고 해도 방대 역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터였다. 서로 내상만 입을 뿐 무의미했다.


“뭐라도 좀 먹자. 힘을 썼으니 출출하잖아?”


“그러자.”


방대의 손이 희라의 엉덩이를 떠받쳤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방대의 등에 밀착한 그녀의 몸뚱이가 불결하다고 여길 필요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온전히 감당할 체력이 아니었다. 인정하고 깨끗하게 머릿속에서 지워야 다음 기회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쪼잔하게 굴면 역효과만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고 방대보다 빠르게 낚아챌 것이다.


방대는 긴장이 풀어져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천천히 옮겼다. 아무리 날씬한 희라의 몸뚱이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무거워질 수밖에 없으니 당연했다. 체력이 감당했다기보다 정신력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정신력은 대단했다. 방대는 식당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자마자 뻐근해진 허리를 옆으로 돌려가며 근육에 남아 있는 긴장을 풀었다.


“덩칫값은 하네. 대단했어.”


정신력은 빼고 허우대를 칭찬했다.


“개마고원에서 놀던 가락이지.”


“잘 먹기만 하면 보통 고위도에 사는 사람들이 체격은 좋지.”


“고위도?”


“지구에서 위도가 높은 지역을 뜻하는 말이야.”


방대는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뜨거운 칼국수가 나왔고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별미지만 고향 생각을 하면 밀가루 음식도 감지덕지라며 흔쾌히 식당으로 들어온 방대도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방대의 고백 이후 녀석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친구로 지낸 사 년 남짓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로 혜산 출신이라는 사실을 순간순간 잊어버려 녀석이 되묻지 않으면 내가 한 말을 모두 이해한다고 여겼다. 나에게 대수롭지 않은 것들도 녀석에게는 신기하고 이상했을 터였다.


“탈북자끼리 연락하면서 지내지? 만나기도 하면서? 동질감을 쉽게 나눌 수 있잖아?”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멸시를 받으니까.”


“내가 업신여겼어?”


“아니라고 말 못 하잖아? 경쟁 관계라고 해도 치졸하고 비굴한 공격이었어.”


“그래서 본격적으로 반격하지 않은 거야?”


“반격하면 경쟁에서 벗어나 전쟁이 되잖아? 너와 친구이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잘 지내왔잖아?”


방대의 한 차원 다른 전략에 혀를 내둘렀다. 너보다 더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니 어떻게 할 거냐는 협박이었다. 순순히 백기를 들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발목 사건으로 승기를 잡았으니 앞으로 볼 것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천만에! 교만에 빠질 때 뼈아픈 패배가 찾아온다. 반드시 증명해야 했다.


“나도 널 친구로 남겨두고 싶어.”


방대의 말을 되돌려 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웃든 말든 관심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방대가 친구로 남든 아니든 녀석의 선택일 뿐이다. 친구로 남아달라고 비루하게 매달릴 생각은 없다. 패배자로서 등 뒤로 멀어져도 상관없다. 나에게 접근했던 목적이 희라에게 다가서려는 치밀한 계획의 일부였다는 것을 깨달아 후회만 밀려왔다.


<방대라고 합니다. 열람실이 열리자마자 들어옵니다. 늘 자리가 바뀌더군요. 자리를 잡아드릴까요?> 화장실에 다녀와 자리에 앉자 책갈피에 꽂혀 있는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학생 식당에서 희라와 점심을 먹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도서관에 도착하는 시간이 그녀와 다르기도 하지만 나란히 붙은 자리 두 개가 동시에 비어 있는 경우는 없었다. 떨어져 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받은 쪽지였다. 고개를 곧추세워 칸막이 너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리번거리다 눈이 마주쳤다.


“방대라고 합니다.”


열람실 밖으로 나와 서로 인사했다.


“쪽지 대롭니다.”


방대는 멋쩍어하며 빙그레 웃었다.


“왜 자리를 잡아주려 하죠?”


“열람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알아요. 커플이죠? 떨어져 앉는 게 보기에 좋지 않아서요.”


“그래요?”


뜨악한 느낌이 들어 되물었다. 보기에 좋지 않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굳이 그것 때문에 자리를 잡아주는 게 마뜩잖았다.


“식당에서 붙어 앉아 있는 모습을 봤어요. 그런데 열람실에선 떨어져 앉더군요. 안타까웠습니다. 기분 좋은 풍경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잖아요?”


방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방대와 첫 악수를 했다. 그때, 방대의 손을 뿌리쳤다면 지금처럼 희라와 관계가 어정쩡하지 않았을 터이고 어쩌면 모텔도 들락거리는 관계로 발전했을지 몰랐다. 말은 하지 않겠지만 결혼 상대자로 여겼을 것이다. 추측을 거기까지 밀어 올리자 방대의 제안을 별다른 의심 없이 덥석 받아들인 자신이 한없이 못나보였다. 그 순간이 원망스러웠다. 희라는 셋이 어울리다보니 공평하게 적당한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리라. 그깟 열람실 자리가 남은 삶을 결정하는 씨앗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신사협정을 맺을까? 누가 희라를 차지하든 친구로 남기로.”


방대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거절하면 대놓고 쪼잔하고 찌질한 놈이라고 인정하는 꼴이었다. 물러나기엔 이른 때여서 기회가 더 다가올 터였다.


“좋아.”


내키지 않는 악수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이든 반전이 항상 있듯이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까지 버텨온 힘이었다. 방대에게 탈북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려는 시도를 탐탁지 않아 하는 희라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무기를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들이 없었다. 외모에서 한풀 꺾이는데 체력까지 형편없다는 인식까지 심어준 터라 막막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굳이 손꼽는다면 재혼한 탈북자 어머니였다. 서로 눈에 콩깍지가 씌어 결혼하지만 결국 가족의 결합이었다. 며느리에게 시어머니의 존재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거대한 성역이었다. 무심코 작은 심기라도 건드리면 여지없이 부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집안 사이의 대결로 치달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이혼으로 끝장나는 경우가 있었다. 만일 그녀가 방대를 선택한다면 친구로서 행복을 바라겠지만 결혼 전에 불화를 일으킬 원인에 대해 검토할 기회를 주는 것도 당연한 의무였다. 시부모와 왕래 없는 결혼생활은 있을 수 없고 중국에 있다는 동생이 언제 나타날지도 몰랐다. 방대가 사고방식을 혜산으로부터 받았다면 동생은 중국식 생각을 할 터인데 결혼한 형에게 무슨 요구를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추측을 거기까지 밀어 올리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튼튼하고 건강한 몸뚱이는 결혼의 기본조건에 불과했다. 가족관계의 복잡함은 결혼하더라도 안정성을 한순간에 파괴하는 폭탄이었다. 이혼의 딱지가 사회적 흠집이 되지 않으나 개인은 씻을 수 없는 내상을 입었다. 가족의 상처로 확대할 가능성도 있었다. 희라가 방대에게 콩깍지가 씌어 있지 않았으니 복잡한 가족관계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다. 그녀가 망설인다면 언니가 있었다. 그녀가 고집 세다고 해도 언니의 충고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방대가 내 계획을 듣는다면 비열하고 저질스러운 수작질이라고 욕설을 퍼부울 수 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단 한 번의 승부가 남은 삶을 결정하지 않는가.


“가끔 중국인 동생 생각은 해?”


방대에게 넌지시 물었다. 녀석은 단박에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서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러나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에 닿았는지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았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서로 지나치고 있었다.


“지난주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얘기하더라. 목사님이 옆에서 부추겼을 거야. 어머니도 끝까지 숨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뭐라고 하시는데?”


“목사님이 수소문 끝에 알아냈는데 죽었다네.”


“죽어? 동생이?”


“동생의 아버지가. 깡촌이야. 동생은 몇 해째 혼자 농사짓다가 농민공으로 이곳저곳 떠돌기도 했대.”


“그래서?”


“한국으로 건너오면 국적을 얻을 수도 있다니까 당장 오겠다고 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야.”


“가능한 얘기야?”


“아직 몰라. 알아보는 중이니까. 목사님이.”


“그래서 어머니가 털어놓으신 거구나.”


“그렇기도 하지만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게 모성애잖아. 그동안 보고 싶어도 꾹꾹 눌러 참았으니 속이 오죽하겠어?”


“맞는 얘기야.”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짐짓 수긍하는 표정으로 맞장구쳤다. 희라도 말로 듣는 막연함보다 막상 눈앞에서 동생을 본다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받아들일 것이다. 동생이 언제 들어올지 짐작할 수 없으나 방대는 낯선 형제애와 사랑을 양손에 들고 저울질하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궁지에 몰린다고 해도 깜짝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엄청난 카드를 손에 쥔 셈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동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앞가림은 하겠지. 서울에서 살지 중국으로 돌아가던지 한 번은 만나야겠지. 동생이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실감 나지 않아. 더구나 중국인이니까 애정을 느끼기엔 너무 멀어.”


방대는 의외로 덤덤했다. 놀랍지도 않았다. 함께한 시간이 없어 당연한 반응이지만 따끔한 충고가 필요했다. 내가 유리한 쪽으로 몇 마디 툭툭 던져둘 필요가 있었다.


“씨가 달라도 같은 배에서 태어났으니 핏줄이잖아?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처럼 핏줄만의 무언가 있겠지. 본능적인 끌어당김이랄까.”


“과연 그럴까? 불행한 시대가 낳은 잘못된 인연이 아니고? 혈연을 거부하거나 부정할 생각은 없어. 어머니의 둘째 아들이니까.”


“관점에 따라 여러 주장이 가능하지. 하지만 무엇보다 생명이 그 무엇보다 앞서지 않을까? 생명보다 먼저 생겨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데.”


방대가 부담감을 느끼도록 해야 했다. 마구잡이로 뒤엉킨 가족관계가 얼마나 깊이 마음을 괴롭히고 당당함과 떳떳함을 사정없이 파먹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줘야 했다. 살아가는 일에서 얼마나 거치적거리며 사사건건 장애가 된다는 사실도 분명히 해둬야 했다. 누구나 심리적 압박만으로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매주 매포에 내려가는 방대의 성격으로 미루어 칼로 무 자르듯이 동생과 인연을 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데 남 보듯 할 수 없을 터였다. 싫든 좋든 만나고 말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국적 취득은 어려워도 방문비자나 관광비자로 서울에 올 수 있었다. 방문비자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모자 관계를 증명하면 어떻게 될지 또 몰랐다. 거기까지 신경 쓸 필요 없이 중요한 사실은 동생의 존재였다. 깡촌에서 태어나 여러 도시를 농민공으로 떠돌았다면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는 뻔했다. 자식을 버린 몹쓸 어머니로 여겨 많은 원망과 저주를 품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방대를 향한 태도도 호의적이지 않을 터였다. 어머니로선 골칫거리 꼴통이지만 자식이라 보듬어 품을 것이다. 손가락이 아프다고 잘라버릴 순 없으니. 갈등이 꿈틀거리는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가려면 웬만한 강단이 아니고선 불가능했다.


“그렇기도 하겠지. 솔직히 얘기해서 걱정이 없는 건 아니야. 무슨 말로 둘러대도 동생이니까. 더구나 혼자 산다고 하잖아? 몰골이 말이 아닐 거고 가슴에 원망과 저주의 응어리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원망은 있을 거야. 없으면 사람이 아니지.”


“어떻게 응어리를 풀어줘야 하나, 걱정이야.”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거야.”


방대의 속내를 알았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발목 사건에서 잃었던 신뢰를 회복할 엄청난 카드를 손에 쥐었다. 여유로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온통 흙빛이던 세상이 조금씩 밝아졌다. 맛을 느끼지 못하던 칼국수가 구수했다. 산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 보였다.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을 돕는다더니 동생을 떠올린 것은 매우 적절했다. 행운이었다. 가족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희라의 눈에 띄면 승부는 싱겁게 내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야지. 피하지 않고.”


방대는 어려움을 충분히 예상해 반드시 이겨내리라는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이는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다. 살짝 긴장했다. 녀석의 말처럼 장애물을 피하지 않고 하나씩 차례로 뛰어넘어 결승선에 도달하는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의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이라면 얼마나 허접한가. 현실은 언제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계획표에 따라 일상이 흘러가지 않았다. 흘러가도 내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 녀석의 생각대로 흘러가선 안 되었다. 심보가 고약하다고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었다.


“잘 생각했다. 열심히 해라.”


“고맙다.”


속으론 빈정거림을 담고 겉으로 진심인 듯 말하자 녀석은 작은 응원을 얻은 모양인지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어떤 때는 꽤 영악스럽게 행동하면서도 이럴 때는 영락없이 단순하기 짝이 없다. 이북의 사고방식이 뼈마디 깊이 녹아 있어서 그럴까.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열중하는 사이 보이는 것들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칼국수 국물까지 말끔히 마시자 포만감이 차올랐다. 음식도 기분도 대화도 만족스러웠다. 그제야 희라의 발목 상태가 걱정스러웠다. 심각하면 병원에 가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모임이 당분간 취소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찜질하는지 동네 병원 중에 열린 곳을 찾았는지 궁금하지만 먼저 전화하기도 찜찜했다. 정신없는 쪽이 언니이기 때문이다. 언니에게 찍히는 짓은 피해야 했다.


“희라는 괜찮을까?”


“아직 알 수 없잖아? 지름길이면 험한 길인데 조심하지 그랬어?”


“다칠지 누가 알았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당황했어.”


“산을 알지도 못하면서 지름길로 가서 왜 이 난리를 저질러?”


방대는 나를 탓했다.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제대 후 뒷산에 올라간 기억조차 없고 기껏해야 둘레길을 서너 번 짧게 걸어본 게 전부였다. 가파른 비탈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지하지 못했다. 지름길을 선택한 잘못을 따진다면 등산을 제안한 방대도 책임 범위 안에 있지 않을까. 너나 나나 마찬가지라고 얼렁뚱땅 둘러댈까 궁리하다가 솔직하게 인정하는 쪽이 좋을 듯했다.


“너처럼 개마고원에서 날뛰던 유년이 없어서 미안하다.”


“여기서 왜 개마고원이 나와?”


“사실이니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속 시원하냐?”


“다 먹었으니 나가자.”


희라가 없는 자리에서 말다툼해 봤자 입만 아프다는 판단에 벌떡 일어섰다. 방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탈북자라는 사실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올리게 해줘야 했다. 때로는 어퍼컷보다 잽이 강력하다. 대수롭지 않다고 여겨 신경 쓰지 않아도 잽은 쌓여 치명적일 수 있었다. 개마고원이란 말에 발끈하는 것도 그동안의 잽에 반응하는 행동이었다.


칼국숫집 밖으로 나오자 해는 중천에 한참 기울어져서도 따가운 햇살을 쏟아냈다. 발목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시원한 산바람을 한껏 들이마셨을 것이다. 한 달 내내 끈적끈적한 찌꺼기로 몸 안에 쌓인 직장 스트레스를 심호흡으로 뱉어냈을 터였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꼰대의 괴롭힘을 견디는 인내심을 그녀에게서 받고 있을 터였다. 발목이 괜찮아져도 다음 모임 때까지 한 달을 어떻게 견디나 걱정이 앞섰다.


“집으로 갈 거야?”


“전화해 볼까?”


“아직은 아니다. 등산은 네가 가자고 했잖아?”


나는 말렸다. 녀석에게 덤터기를 씌웠다. 아마도 희라를 등에 업고 위험한 내리막길을 내려온 행동도 자책감 때문일 터였다. 전화를 해보겠다는 것도 찜찜함을 덜어보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그러니 막아야 했다. 혹시라도 나와 헤어진 뒤 전화할 수 있어 단단히 못을 박아둬야 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냐?”


“다친 희라지.”


“아니야. 언니야. 더구나 사고를 가장 먼저 발견한 가족이야. 우리가 무사히 헤어져 각자 집으로 갔는지 희라가 궁금할 정도면 발목은 괜찮아져 전화를 먼저 할 것이고 전화하지 않으면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는 뜻이지. 언니가 옆에서 듣기라도 하면 짜증부터 낼 거야. 내일쯤 전화할지도 모르니까 먼저 하지 마라.”


“그런가?”


방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짜증내는 순간 찍히는 거야. 찍히면 경쟁이고 뭐고 끝장나.”


“그럴 수 있겠네.”


“집으로 갈 생각인데 너는?”


“저녁 약속을 내일로 미뤘으니 집으로 가야지.”


“잘 들어가라. 다시 만날 때까지 직장에서 전사하지 말고 열심히 버텨라.”


나는 방대의 대꾸도 듣지 않고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약속은 날마다 만나는 직장 동료는 아닐 터였다. 대낮도 아니고 저녁에 만난다면 개인적으로 친밀감이 있을 것이고 탈북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 분명했다. 방대도 딱지를 떼어버리고 싶겠지만 그들의 연결망은 거미줄과 같아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어머니가 탈북자였다. 운명으로 받아들여 체념했을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내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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