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벌판 - 글쓰기 방식 네 가지

by 이순직

자음과 모음이 붙어 음절 하나를 이루고, 음절이 모여 낱말이 된다. 산·겨울·어머니·해바라기·푸르스름하다 따위가 낱말이고 산·겨·해가 음절이다. 우리말은 낱말을 명사·대명사·수사·동사·형용사·부사·감탄사·조사·관형사로 하여 아홉 가지로(9품사) 나눈다.


문법 규칙에 따라 이 낱말을 이어서 늘어놓으면 문장이 된다. '아! 봄이 왔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와 같은 것이 문장이다. 글은 문장이 여러 개 모여 이루어지는 일정한 생각의 단위이며 생각으로 지어진 집이다. 짧든 길든 또는 내용이 옳든 그르든 훌륭하든 그렇지 않든 글 한 편은 문장이 모여 이루어지며 반드시 시작(서론)이 있고 중간(본론)이 있으며 끝(결론)이 있다. 다시 말해 글 한 편은 그 자체로 완성된 생각의 집합체로서 제 나름대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낙서나 간단한 메모 따위는 문장은 될 수 있어도 글 한 편이 되지는 못한다. 하나의 전체로 여길 수 있는 생각의 줄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닌 어떤 생각은 낱말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장에서 좀 더 구체성 있게 드러나며 글 한 편을 다 쓰면 그 뜻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장을 쓰고 문장과 문장을 이어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데에, 우리가 자주 쓰는 방식 몇 가지가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이를 글쓰기 기본 방식이라고 하자. 글쓰기 기본 태도라고 해도 좋다.


1. 산다는 것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궁극에 값하는 답은 뒤로 미루고자 한다. 깊은 연륜이 배인 지혜로운 통찰력으로써 답을 헤아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생이란 여러 가지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에 반응하는 과정이라고 더듬어 본다. 그런데 반응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있게 하는 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축은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가 실제 진행되려면 우리는 그때그때 서로 어떤 생각과 의미를 주고받아야 한다. 수를 셀 수 없이 다양하게 이어지는 여러 상황에 부딪혀서 우리가 지니는 입장과 태도는 늘 다르기 마련이다. 그에 따라 어떤 의미를 전달할 때 목적과 방법이 다르고 내용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선생님이 되어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며 투자자를 모으려고 회사를 광고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대자연 앞에서 평소 누리지 못한 큰 감동에 빠져 경탄과 감탄을 내지르기도 한다. 이러한 생활과 현실에 태도와 생각을 맞추면서 살아가는 것이고 말과 글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현실 상황에 따라 글의 꼴이 달라지는 가운데 몇 가지 쓰임새가 두드러지고 글쓰기를 대표하는 기본 방식이 몇 가지로 드러난다. 기본 방식이란 글쓰기 방식이기에 앞서 사람이 사람을 대하면서 갖는 삶의 모습이요, 밑그림이다.


글쓰기 방식은 글쓴이의 취향과 삶의 태도에 따라 결정되며(뒤집어 말하면 글쓰기 방식에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태도와 취향이 나타나며) 글쓴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 달리 말하면 글쓴이가 독자와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이렇게 삶을 이루는 기본 태도이면서 동시에 문장이 써지는 기본방향을 가늠하는 방식은 설명과 묘사, 논증과 서사이다.


2. 설명


첫째, 우리는 누군가에게 순수하게 어떤 정보나 사실을 알려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보고 생긴 개인의 감정과 의견·판단 따위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대상이 지닌 개념과 의의·특성·속성·장단점·연혁 그리고 사건의 진행과정이나 어떤 계획의 앞뒤 사항에 초점을 맞춘다. 주관성이 아니라 객관성에 따른 내용을 쓰는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설명(說明)이라고 한다. 설명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어 정의는 어떤 낱말이나 용어의 뜻과 개념의 내용을 또렷하게 한정하여 세우는 일이다. 그래서 정의는 대상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이루어지는 설명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언론이라는 낱말을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언론은 말이나 글로 자신의 사상을 발표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글이다.


그런데 어떤 단어에 대한 정의는 때와 곳에 따라 또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언론이라는 낱말의 뜻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누군가는 ‘언론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제4의 권력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설명은 객관성을 좇는다. 이러한 정의 내용이 물론 동감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설명이라고 하기에는 일반성이 부족하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신문은 ‘사회에서 일어난 새로운 사건이나 화제 따위를 빨리 보도·해설·비평하는 정기 간행물’이라고 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이것이 일반성에 따라 신문을 정의한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신문은 ‘99%의 흥미와 1%의 잉크로 만들어지는 규격화된 휴지다’ 정도로 정의했다고 하자. 이는 개인성에 기운 정의로서 설명으로 보기 힘들다. 객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내용은 주관에 따른 것이지만 문장을 쓰는 태도는 역시 한 단어의 의미를 규정하여 한계를 정하려 했으므로 형식으로 볼 때 정의라고 할 수는 있겠다.


설명은 어떤 사물과 상황·개념 따위를 상대에게 이해시키려는 글쓰기 방식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대상이 지닌 뜻과 특성을 밝히면서 그 대상을 직접 다루어 그 대상의 여러 속성을 조목조목 나열하여 밝히고 나아가 여러 속성 사이에 놓여 있는 관계성을 분석하거나 설명 대상과 비슷한 대상 또는 아주 다른 대상을 비교하고 대조하여 대상을 효과 있게 이해시키려 하거나 예를 들어 보여(예시) 대상의 속성을 밝히려 하거나 전체를 어떤 체계로써 가늠하여 나누어 보고(분류) 설명 대상이 그 가운데 어떤 위치에 놓여 있으며 또 그 체계 안에서 다른 대상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살펴서(구분) 결국 설명 대상의 개념과 속성을 밝히는 따위가 모두 설명을 구체화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들은 대상이 지닌 객관 정보를 전하여 대상을 이해시키려는 데에 목적을 둔다. 어떤 정의 내용이 아직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경우 여러 사람이 공통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서도 글쓴이의 개인감정이나 주장에서 벗어나 설명으로서 지녀야 할 객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3. 묘사


둘째, 대상을 객관성에 맞춰 다루고자 하는 설명과 다르게 사물을 경험한 뒤 개인이 지니게 된 고유한 느낌과 인상을 나타내는 글쓰기를 묘사(描寫)라고 한다. 대상이 지니고 있는 형태·빛깔·감촉·소리·향기·맛 따위의 실제 상태를 그대로 옮기는 것에서부터 경험 뒤 가지게 된 느낌, 나아가 여러 특성이 어우러져 가져다주는 총체성 어린 인상을 묘사는 좇는다. 따라서 묘사로 써진 문장에는 사물이 지닌 객관적인 정황만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개성 어린 감각과 정서가 드러난다. 무엇을·어떻게·어떤 각도에서·어느 정도까지 담아내느냐는 물론 글쓴이의 정서와 생각이 사물에 비춰진 정도에 따른다. 묘사는 설명 묘사와 감각 묘사 그리고 표현 묘사로 나뉜다.


설명 묘사는 사물의 안팎에 걸쳐 있는 특성을 될 수 있는 한 객관성에 기대어 재현한다. 한 사물에 집중하는 정도가 다를 뿐 설명 묘사는 사실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겨울 나는 그 남자를 처음 만나 보았다. 그 남자는 키가 180센티미터를 넘는 듯했고 단정하게 이발한 머리에 얼굴은 작은데 팔다리는 보통 사람보다 길어 보였다. 걸음걸이와 행동은 느리지만 말투는 언제나 또렷하였다.


감각 묘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대상의 감각 특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대상의 빛과 향·소리·촉감 따위를 표현하여 실감과 생동감을 살린다. 대상을 개념으로써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지난겨울 나는 그 남자를 처음 만나 보았다. 그 남자는 키가 나보다 목 하나는 더 넘는 듯했고 짧게 이발한 머리에 얼굴은 작은데 팔다리는 보통 사람보다 한 뼘 정도는 더 길어 보였다. 걸음걸이는 휘청거리고 행동은 한 박자 느리지만 말투는 언제나 또렷하였다.


설명 묘사와 감각 묘사와 또 다르게 표현 묘사는 대상의 특성을 감지한 뒤 필자만이 고유하게 지니게 된 인상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 대상을 드러낸다.


지난겨울 나는 그 남자를 처음 만나 보았다. 그 남자는 키가 180센티미터를 넘는 탓에 군계일학처럼 솟아 보였고 마치 갓 제대한 군인처럼 단정하게 이발한 머리에, 얼굴은 주먹만 한데 또 팔다리는 엿가락처럼 길어 보였다. 걸음걸이와 행동은 거북이 같지만 말투는 언제나 또렷하였다. 얼핏 보면 그는 그 옛날의 공자님 같았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대상에게 자신이 받은 개인 인상을 중심으로 문장을 썼으며 다른 이가 아닌 자기 자신만이 느끼고 파악한 새로운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표현 묘사는 개인 묘사이며 이 단계에서 비유법을 중심으로 한 수사법이 자주 쓰인다.


또 글쓴이는 객관성과 일반성을 넘어선 자신만의 고유한 통찰과 느낌으로써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는 의미의 장을 연다. 낙엽을 보고, ‘가을에 떨어지는 나뭇잎’이라고 하면 설명이고 ‘낙엽이 도로를 덮었다’고 하면 감각 묘사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김광균, ‘추일 서정’)‘라고 하면 표현 묘사다. 이 문장에서 글쓴이(시인)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가슴에 밀려드는 쓸쓸한 마음을 읽고 결국 낙엽이 지닌 새로운 의미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4. 논증


이렇듯 사물을 객관성이나 주관성에 따라 살피고 담아내는 일은 사람이 지닌 고유한 정신 영역의 기능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기본이 되는 지성 능력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삶의 자세나 의견·신념을 타인과 주고받게 된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처럼 친밀감이 두텁게 쌓여 있는 일상의 울타리 안에서는 이러한 의견들을 그럭저럭 쉽게 서로 맞추고 어긋나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넓은 생활 영역 즉 사회생활이 좀 더 넓게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 이루어지는 장에서 우리가 지닌 의견과 신념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화로움이 멈추는 때가 있다. 이때 사람 사이에서 불일치가 때로 갈등과 분쟁을 낳고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너와 내가 지닌 의견과 주장이 부딪힐 때 이를 알맞게 조율하고 화목하게 융합하는 일은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이고 의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 자신이 지닌 의견만이 옳다고 할 수 없으며 나의 주장만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할 수 없다. 그러한 태도는 흔히 말하는 민주정신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기가 대체로 어렵다. 사람은 제각각 자기 신념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이를 잃거나 빼앗기면 사람으로서 가치와 의미를 잃는 것과 같다. 그런데 누가 자기 생각을 그토록 쉽사리 버리고 남을 따르겠는가. 이때 나 자신의 의견·주장·신념을 타인에게 적절하고 또렷하게 알려 이를 관철시키려는 글쓰기가 바로 세 번째 글쓰기 양식인 논증(論證)이다.


국어사전은 논증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1. 사물의 도리를 증거를 들어 증명함, 또는 주어진 판단의 정당성이나 확실성을 이유를 들어 증명함.

2. 수학 논리학에서, 몇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바른 추론에 의하여 주어진 명제를 끌어냄.


지금 말하는 논증은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글쓰기를 할 때 쓰는 방식으로서 개념이 '1'에 따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거나 찬성할 때 ‘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라고 하면서 이유나 근거를 대지 않으면 이 문장은 정당한 주장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남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거나 동감을 얻을 수는 없다. 논증의 정신과 자세가 깃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검역 주권을 내주고 맺은 협상에 다른 결과이기에, 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


라고 진술해야 논증에 맞는 글쓰기이다. 논증은 내세우는 주장과 의견을 타인이 받아들이기를 목적으로 한다. 주장을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당한 논리와 근거로써 뒷받침하여 상대방이 나의 의견에 설득당하여 나에게 다가오도록 하고자 한다. 그래서 논증은 주관에 목적을 두고 방법으로써 객관성에 기대는 글쓰기 방식이다. 자신이 지닌 진솔한 경험, 권위 있는 위인이나 인물이 남긴 명언·속담·객관성에 입각한 여러 통계자료 따위가 나의 논리와 주장·의견을 합리성과 설득력을 갖춘 것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상대 구성원과 치를지도 모를 충돌과 갈등을 앞서 방지하고 원만한 합의와 조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면에서 논증은 공동체 요소가 매우 짙다. 아울러 타인의 존재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공동체 정신과 곧바로 이어지는 글쓰기 방식이다. 의견과 주장이 서로 어긋났을 때 자신의 것만을 끝내 주장한다면 사회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고 부정되기 때문이다.


5. 서사


한편, 제도와 계획에 따라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은 본질에 있어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특히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변화를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 태어나서 자라고 죽는 것은 시간에 따른다. 이 흐름을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시간은 또 시대와 역사를 만든다. 우리 개인의 삶이란 마치 시대와 역사가 휘몰아가는 물방울 같다. 어찌 보면 생각하는 것·말하는 것 심지어 먹고 입는 것까지 모두 시간이 우리에게 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오늘은 바로 어제의 연장이며 미래와 이어진다. 어느 한순간도 지금 현재에서만 그 의미를 건져내기는 힘들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커다란 단위까지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동은 시간의 흐름 위에서 시작되고 진행되고 끝을 맺는다. 이것을 사건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사건은 상황과 다르다.


상황은 어느 한 지점에 머문 현재의 상태이다. 그러나 사건은 시작과 중간 끝이 있어 하나로서 매듭이 지어지는 인간 활동이다. 사건을 바라보고 아주 작든 크든 인생에 얽힌 어떤 의미를 우리는 얻는다. 시간에 따라 어떤 일에 부딪치고 시작과 끝을 기어이 치러 봐야 비로소 삶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경험을 해야만 뭔가를 깨달을 수 있는데 여기에 시간이 근본이 되는 조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이어진 현실을 늘 바라보며 이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이를 자세히 기억하고 들여다보면서 삶을 가늠하여 이어간다.


그래서일까. 사람은 시간의 흐름이 실려 있는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특히 남의 이야기라면 궁금해 견디지 못하며 이야기에 푹 빠져 살기도 한다. 사건과 사고는 늘 우리의 흥미와 경계심을 건드리며 주위 사람들이 자아내는 이야깃거리가 과연 어떤 전말을 품고 있는지를 알려고 호기심을 모두 쓰기도 한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건, 어제부터 오늘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지는 삶의 양상을 기록하고자 하는 글쓰기 방식이 바로 서사(敍事)이다. 영화와 소설·드라마 따위가 모두 서사를 뿌리와 뼈대로 삼고 있으며 역사서·신문기사·요리강좌 따위에서도 이 방식은 두드러진다.


서사는 사실 모든 글을 떠받치는 뿌리다. 우리가 쓰고 읽는 글은 대개 보고 들으면서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느낌을 쓰든지 보고 들은 것을 보고하는 글을 쓰든지 결국 겪은 일 즉 어떤 사건을 전제로 하거나 바탕으로 한다. 그러므로 보고 들은 사건을 적절하게 엮어내는 일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건을 쓴다고 하여 시시각각에 따른 모든 사항을 쓸 수는 없다. 글쓴이의 목표와 처지·취향 달리 말하여 글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가려 뽑아야 한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겪은 일을 적는다 할 때 시간대별로 모든 행동과 추이를 기록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글의 중심이 없고 십중팔구 지루해진다. 그러므로 내용과 주제를 전하는데 꼭 필요하거나 효과가 큰 부분을 선택하여 적절하게 늘어놓아야 한다. 이러한 선택 행위야말로 서사 글쓰기에서 꼭 필요한 자질이요 미덕이다.


한편, 서사를 펼치는 데 있어서도 주관과 객관에 따라 글의 성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보자. 기방(妓房)으로 자신을 안내한 명마의 목을 잘랐다는 신라시대 명장 김유신에 얽힌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여러 갈래로 다루어 볼 수 있다.


① ****년 *월 *일 화랑 김유신은 훈련을 마치고 애마에 올라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 중간쯤에서 잠에 빠졌다. 평소 주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던 명마는 주인이 자주 가던 기방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깬 유신은 자신이 기방 앞에 와있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신은 칼을 빼어 애마의 목을 잘랐다. 그 뒤 유신은 삼국을 통일했다.


② ****년 *월 *일 화랑 김유신은 오늘도 고된 훈련을 마치고 애마에 올라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만 중간쯤에서 잠에 빠지고 말았다. 평소 주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던 명마는 주인이 자주 가던 기방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깬 유신은 자신이 기방 앞에 와있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뇌 끝에 유신은 칼을 빼어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애마의 목을 잘랐다. 그 뒤 유신은 절치부심하여 모든 고난을 극복한 끝에 삼국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었다.


두 이야기는 똑같은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글쓴이가 사건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내 내용이 아주 다른 글이 되었다. ①은 단지 사건의 개요를 추려 객관적인 사실을 전하고 있다. 객관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②는 김유신을 시대의 영웅으로 떠올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다루었다. 김유신이라는 인물에게 퍽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음 ③에서는 글쓴이가 매우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②와 ③은 주관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년 *월 *일 화랑 김유신은 훈련을 마치고 애마에 올라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 중간쯤에서 잠에 빠졌다. 평소 주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던 명마는 주인이 자주 가던 기방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깬 유신은 자신이 기방 앞에 와있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신은 칼을 빼어 애꿎은 애마의 목을 잘랐다. 그 뒤 유신은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했다.


이렇듯 서사는 글의 바탕이 되면서 글쓴이가 사건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서사 방식으로 글을 쓸 때 사건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디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를 정하는 문제와 사건을 감당하는 시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 퍽 중요하다.


5. 네 가지 방식


여기까지 글자를 가지고 운영하는 네 가지 글쓰기 양식을 살펴보았다. 설명·논증·묘사·서사 이외에 누군가는 설득을 들어 다섯 가지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이 네 가지를 기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매일 읽고 쓰는 모든 글은 위에서 살핀 네 가지 방식을 활용하여 이루어진다. 물론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집중하여 써진 글이 없을 바는 아니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읽고 쓰는 모든 글은 이 네 가지 방법이 고루 사용되어 써진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어느 쪽에 치중하느냐에 따라 그 글의 성격이 결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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