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30분. 부부와 유정이는 안동 가기 위해 분주히 준비한다. 백부님의 회갑 잔치가 여러 도시에 흩어져 사는 형제를 부르는 것. 이날을 위해 부부는 설날에도 안동에 내려가지 않았다. 누님 부부와 함께 내려가기로 했으니 자가용 타고 편히 내려가는 셈이다.
불현듯 안동역 대합실에서 밤 꼬박 지새운 날이 떠오른다. 대학 입학하고 첫여름방학인 듯. 82년 여름. 안동에 무작정 내려갔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친구는 그 무렵 노동운동에 깊이 빠져 있던 때여서 운동권 학습 때문에 잠깐 만날 수밖에 없었다. ‘안동역’의 경희다. 잊히지 않는 것이란 친구와 있었던 일이 아니다.
대합실 긴 의자에 앉아 무료하게 밤을 보내고 있는데 내가 앉아 있는 곳과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총각은 이담에 머리 쓰는 일을 해서 머리칼이 금방 하얗게 될 거구먼.”
할머니 역시 동행 없는 탓으로 말을 걸어온 듯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것이 당신 말에 불신 표시하는 것으로 비쳤던지 결백 주장하는 사람처럼 뒷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은 새벽 버스가 오면 절에 가려고 하는 거지. 시방 절에 있는데 딸년 집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야. 절에 있어 사주 관상을 쪼금 볼 줄 알아.”
나는 침묵했다. 젊은 나이였고 나이가 주는 가능성 때문에 운명이니 사주팔자니 하는 것을 무심히 넘기던 때였다. 설사 믿는다고 해도 볼썽사나운 옷맵시를 한 낯선 사람의 말을 덥석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든 정해져 가는 것이든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로부터 14년이 훌쩍 지나갔다. 할머니의 예언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遺傳子) 때문에 머리칼은 부쩍 새치가 늘었다. 염색해야 할 정도이니 보통은 넘는 셈이다. 더 살아볼 일이지만 알게 모르게 할머니의 예언이 맞아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여전히 글은 마음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
부부와 유정이를 골목 초입까지 배웅하고 돌아온다. 구불구불 논두렁 같은 신창동 골목을 꾹꾹 눌러 밟으며 대신빌라 연립주택으로 돌아온다. 백부님의 한 시대가 매듭이 되듯 나의 한 시대도 매듭 되는 것일까. 창문 열면 꽃샘추위 맵다. (1996.3.13.)
- 재작년 늦가을 어느 날 백부님이 돌아가셨다. 나와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청량리역에서 KTX 타고 안동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아버지 형제 중에 남은 이는 대구 삼촌과 옥계 고모뿐이다. 이제 아버지는 설날에도 안동에 내려가지 않는다. 질긴 핏줄 하나씩 끊어지고 있다는 걸 늙은 아버지는 뼛속 깊이 느끼고 계실 터. 금쪽같은 하루들을 사신다. (2020.10.20.)
- 가을 추위가 한 발 물러섰나 보다. 아침 햇살 발코니에 가득 쌓인다. 떠난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 여전한 코로나 19. 미중의 과격한 격돌. 중국의 탐욕이야 새삼 말하면 무엇하리. 도처에 쌓인 문제들과 휴식을 선물하는 밤들. 베이징과 워싱턴 DC.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위태로움. 그 위태로움들에 찬사를! 어쩌면 당신도 나도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지도. (20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