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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Aug 19. 2018

시간여행, 분코타카다 쇼와노마치

 오이타 현

오이타 현은 규슈의 북동부에 있다. 넓은 화산 지역에서는 풍부한 온천이 솟아난다. ‘여덟 개의 지옥’으로 불리며 뜨거운 온천수를 뿜어내는 일본 제일의 벳푸 온천, 아침 안개가 아름다운 호수와 아기자기한 거리로 사랑받는 유후인 온천에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유명한 온천 지역 이외에도 오이타 현 구니사키 반도에는 황금빛 석양이 내리는 해안과 1960년대 거리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분고타카다 시가 자리 잡고 있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기대되는 곳은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걷는 것은 황홀하지만 이야기가 담긴 도시는 특별하게 기억된다. 오이타 현의 소도시 분고타카다가 그렇다. 1960년대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쇼와 거리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분고타카다 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영화 촬영의 무대가 되었다. 쇼와노 마치 뿐만 아니라 해안과 곳곳의 작은 마을이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우리나라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여전히 상위권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작품이다. 올해 영화로 개봉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영화 속 거리를 산책한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고민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주었던 나미야 잡화점은 30여 년 동안 비어있었다. 우연히 이곳에 숨어든 삼인조 도둑 쇼타, 고헤이, 아쓰야는 상점 안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예전의 상점 주인에게 도착한 편지를 호기심으로 열어본다. 상점 밖과 상점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편지는 30여 년 전에 쓰인 것이지만 장난스럽게 답장 보내는 세 사람은 편지 속 고민스러운 이야기에 점점 빠져든다. 현재를 살아가는 세 사람의 솔직하고 엉뚱한 조언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결과를 불러온다. 기묘한 공간 나미야 잡화점에서 벌어지는 따뜻한 이야기는 멋진 기적을 만들어낸다.

   

옛 모습 그대로, 쇼와노 마치

쇼와노 마치를 걸으면 이곳이 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배경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중심 상점가 쇼와노 마치는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다이쇼, 쇼와 30년대에 걸쳐 구니사키 반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거리였다.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다. 그러다가 점점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고적한 마을이 되었다.     


상점가가 활발했던 전후 시대, 쇼와 30년대의 활기를 불어넣고자 2001년에 쇼와의 거리, 쇼와노 마치를 조성했다.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점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의 작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무대로 최적이 아니었나 싶다. 분고타카다 시의 고즈넉한 거리와 풍경이 영화의 장면마다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 속 나미야 잡화점 메인 세트는 해체되었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쇼와노 마치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나미야 잡화점이 있던 광장이나 도리이는 그대로 남아있어 영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나미야 잡화점은 원래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쇼와노 마치 거리에 일정기간 동안 다시 재현해 놓았다.   

  

신마치도리는 아쓰야, 쇼타, 고헤이가 밤에 상가를 달리는 장면과 하루미가 편지를 읽으면서 걷는 장면으로 영화 속에 등장한다. 거리의 자전거나 우편함, 간판에서 쇼와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창업한 지 90여 년이 된 오토라야 식당은 일본의 서민적인 음식을 1955년대의 가격 그대로 팔고 있다. 늦은 오후에 들른 식당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오코노미야키를 주문했는데 그때 가격 그대로 350엔에 먹을 수 있었다. 오코노미야키의 원조인 오사카나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처럼 화려한 비주얼은 아니지만 소박한 재료로 구워낸 오코노미야키를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1957년 산의 보닛 버스가 무료로 거리를 운행한다니 쇼와노 마치는 한층 더 예스러운 풍경일 것이다. 거리는 한적하지만 곳곳에서 영화의 장면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는 쇼와노 마치! 소설이 더 디테일하고 감동적이었지만 거리 자체가 영화 속이니 이곳을 여행한다면 영화를 보는게 좋겠다.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마지막 답장의 내용은 나의 마음에도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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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가 백지라면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행도 그렇다. 여행은 늘 백지 지도 한 장을 들고 시작한다. 하나하나 동선을 그려가며 나만의 지도를 만든 여행에서 보석 같은 풍경을 발견한다. 때때로 인생의 고민이 깊어질 때 백지 지도 한 들고 떠나보자. 나의 얘기를 찬찬히 들어줄, 어딘가에 있을 나미야 잡화점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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