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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Aug 05. 2018

바다로 향한 드라이브 명소, 나가토

야마구치 현

자연과 사람이 빚어낸 아름다움, 야마구치

혼슈의 가장 서쪽에 있는 야마구치는 고대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을 잇는 해상 교통의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문화를 먼저 받아들일 수 있었다. 풍경도 아름답다. 일본 동쪽 바다 세토내해 연안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바다를 수놓는다.

내륙에서는 수억 년 전부터 지반이 이동하여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하고 온천도 좋다. 게다가 일본 역사를 뒤흔든 인물들이 야마구치에서 많이 나왔으니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다. 이런 매력적인 배경을 지닌 야마구치를  들여다보러 다시 짐을 꾸린다.


야마구치 여행은 우베 공항에서 시작한다. 점심시간이 지나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첫 여정지까지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가야 하기 때문에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소도시는 음식점을 찾기도 마트를 찾기도 쉽지 않아 가까운 곳에 맛집이라도 나타나면 주저 없이 찾아간다. 나름 이 지역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하마가츠 돈가스’가 공항 바로 근처에 있어 다행이었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숨을 돌리는 사이, 주문한 돈가스 세트가 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육즙이 가득한 돈가스 한입을 베어 물고 차가운 나마비루(생맥주) 한 모금을 들이켠 순간, 이번 여행은 행복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해는 산 아래로 기울고 있다. 2월의 해는 짧고도 짧아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사위는 어둠이 물든다. 서둘러 야마구치현의 첫 여정지, 츠노시마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차는 좁은 산길을 따라가다 바닷가를 내달린다. 개와 늑대의 시간,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산인지 바다인지 구별이 어렵다. 차는 조심스럽게 달려도 여행의 시작은 들뜬다.  

   

 야마구치현 최고의 드라이브 명소 츠노시마

시커먼 산을 따라 도착한 츠노시마는 바다에 맞닿아 있다. 야마구치현 북단에 위치한다. 호텔에 먼저 짐을 풀었다. 풍경이 아름다워 일본 연예인도 찾아왔다는 해변가 호텔 창 너머로 반짝이는 츠노시마 대교가 내다보인다. 츠노시마 대교는 2000년 11월에 개통한 1780m의 길이의 다리로 야마구치현 북서단에 위치한다. 혼슈와 츠노시마를 연결한다. 일본에서 공짜로 건널 수 있는 다리 중 오키나와의 코우리 대교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길다. 석양이 지는 다리 위를 시원하게 내달리는 렉서스 자동차 광고 촬영지였으며, 기무라 타쿠야의 영화 ‘히어로’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야마구치현의 명소가 되었다.  

츠노시마 대교를 제대로 전망하려면 혼슈 쪽 전망대에 오르거나, 혼슈 쪽 언덕에 올라가면 된다. 츠노시마 쪽에서 바라 본모습도 아름답다. 혼슈 쪽 전망대에 올랐다. 시원하게 뻗어 있는 다리를 바라보니 민트를 삼긴 듯 가슴이 뻥 뚫린다. 츠노시마 대교는 살짝 왼쪽으로 휘어져 있다. 중간에 배가 통과할 수 있도록 높이가 달라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도 다르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에메랄드 빛 바다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어우러져 저절로 그림엽서가 된다.

전망대를 내려와 대교 위를 신나게 달려본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차창을 내린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큰 숨을 들이쉬니 숨 속으로 바다가 빨려 들어온다.


CF의 한 장면처럼 바다를 가로질러 도착한 츠노시마는 둘레가 약 17km 정도의 작은 섬이다.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다. 섬의 곶이 소뿔처럼 생겨 츠노시마(뿔섬)이라고 불린다. 섬 안에는 언덕 위에 43m 높이의 등대가 솟아 있고, 등대공원이 있다. 등대, 츠노시마도우다이코우엔은 1876년부터 바다에 불빛을 비추었다. 츠노시마는 작은 섬이라 돌아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곳의 명물 오징어 구이를 사 먹고 지체 없이 돌아 나왔다. 야마구치현 나가토시에 있는 모토노스미노 이나리 진자로 향한다.    


자연과 신사의 만남, 모토노스미이나리 신사

‘어부 오카무라는 간밤에 꿈을 꾸었다. 흰 여우가 나타나 바다가 저리도 잠잠한 이유는 모두 여우 신 덕분이니, 신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라 말했다. 신의 계시라고 생각한 오카무라는 그날로 마을 사람들의 기부를 받아 신사를 지었다.’

쇼와 30년, 시마네현 츠와노쵸 다이코다니 이나리에서 이곳 나가토에 분령된 모토노스미이나리 신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얽혀있다. ‘이나리’는 여우라는 뜻이니 말 그대로 여우를 모시는 신사다.

푸른 바다와 맞닿은 모토노스미이나리 신사는 123개의 붉은 도리이가 바다를 향해 100m 넘게 시원하게 펼쳐진다. 2015 CNN이 선정한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 31선’이다. 붉은 도리이가 길게 이어지고, 그 앞에 펼쳐진 바다를 내다보니 풍경은 그 명성에 걸맞게 아름답다.

양쪽에서 여우가 반겨주는 도리이를 지나 신사로 들어서면 입구에 가장 큰 도리이가 있다. 도리이 꼭대기에 소원을 비는 상자, 사이센바코가 달려있다. 상자 안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100엔짜리 동전에 비장함을 실어 힘껏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한 번에 소원이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두 번, 세 번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다 운 좋게 상자 안에 달그락하고 동전이 안착하면 주변에선 박수와 함성이 터진다.

모르던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응원해주는 재미있는 풍경이다. 나도 젖 먹던 힘을 다해 동전을 던졌다. ‘쨍그랑’ 바닥으로 동전 떨어지는 소리만 요란하다. 다시 던지기는 포기하고, 신사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 123개의 도리이가 연결된 붉은 터널 속을 걸었다. 마치 꿈틀대는 붉은 뱀의 몸속을 통과하는 기분이다.


터널을 나오면 작은 언덕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는 얼마나 넓고 깊은 것일까.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그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푸르다. 파도는 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그린다. 길게 이어진 붉은 도리이와 푸른 바다의 만남은 그 색의 대비만큼이나 강렬하고 아름답다. 사이센바코에 동전을 넣어 소원 이루기는 실패했지만 자연과 사람이 빚어낸 이 환상적인 풍경을 마주한 것만으로 소원 하나는 이룬 셈이다.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걷는 꿈을 꾸는 나는, 이곳에서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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