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고 싶다
이전에 나를 징그럽게 괴롭히던 것들 -아토피라든지, 첫사랑과의 이별, 퇴사 전에 했던 생각들- 이 더 이상 별 힘을 가지지 못한 채 기억 어딘가 그저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때, 지금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 또한 언젠가 껍데기로 존재하게 될 것임을 알아차린다. 그러니까 그 말은 여전히 괴롭다는 거다. 내 생각이 곧 내가 아님을 알자고 타일러봐도 어쩔 수 없는 생각과 감정들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보통 그렇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쯤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나 행동을 할 때면 부글부글.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진다. 전혀 맞닿아 있지 않아 나를 하나도 힘들게 하지 않는 타인보다 미워지는 순간이다. 그때부터는 의지와 상관없이 미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 올라온다. 당분간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을 헤젓고 다닐 진부하고, 일어날 리 없는 생각들. 답할 수 없는 질문들. 나 스스로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지나간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품었던 마음들. 나의 이런 기분 상태를 알리 없으니 평온하게 있을 그가 더 미운 바람에 나라면 상처받을 정도의 차가운 언어로 그의 기분까지 흐트러뜨린다. 그러고 나면 좋지 않은 감정에 미안함까지 얹어질걸 알면서도 모르는 여전한 어리숙함으로.
내가 한 차원 정도 더 깊어졌으면 싶은 건 이 때문이다. 차원의 개념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가볍게 올라가기보다는 무겁게 가라앉아 깊어지는 것이 숙성과 성숙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여. 머리로는 잘 알고 있듯 내 생각은 내가 아니기에, 불쑥 찾아오는 생각과 그로 인한 감정들이 결국 지나가리라는 걸 그 순간부터 마음으로 느끼고 싶다. 평온하게.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고 무수히 많은 그의 좋은 것들을 떠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순간의 좋지 않은 감정은 지나가고 나에게 와준 따뜻함과 웃김과 운명같음과 쿵짝 맞음이 오래오래 지나가지 않고 남아있기를. 문제가 있다면 그걸 서로 더 성숙해지는 기회로 만들 수 있기를. 비록 지금은 왜 저러지 싶지만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그가 왜 저러는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큼, 오늘 하루 주어진 만큼 성장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