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요즘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 Jun 21. 2021

다가오는 월요일이 두려워 엄마 집으로 도망쳤다

오늘은 6월 21일.

퇴사를 하고 브랜드를 창업해서 그것마저 접은 지도 이제는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언제부턴가 글을 쓰기 전에 내가 공식적으로 '멈춤'을 선언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헤아려본다. 이력서나 포트폴리오상에서 남들이 이 정도 놀았겠거니 헤아려볼 경우를 의식하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가 이만큼이나 멈춰있어도 되나 싶어서 의식하고 있는 건지 어떤 경우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주말이 끝나가는 시간엔 막막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와는 달리 평일과 주말의 일과로 돌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남자친구의 시간에 맞춰 그의 주말이 나에게도 주말인 것처럼 지내고 있는데, 나와 리프레시하는 주말을 보내고 바쁜 평일 일과로 돌아가는 남자친구와는 달리 나는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싶은 거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를 보며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는 것으로 주말 마무리를 하고 있던 그 시간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막막함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결국 남자친구와 지하철역에서 헤어지는 그 길로 나는 엄마의 집으로 도망쳤다. 직장생활 5년 차에 첫 독립을 한 이후로 월요일에는 출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대중교통으로 4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단 한 번도 자고 가라는 엄마 아빠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막차를 타거나 심지어 택시를 타고라도 기어코 좁디좁은 원룸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제는 내가 이사를 와버려서 엄마의 집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다행인 건지 오히려 작정하고 자고 와버리겠다는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서는 거리가 됐다. 이제 엄마의 집으로 간다는 의미가 나에게는 여행을 나서는 의미와 비슷한 것이 되어버린 걸까. 잠시라도 현실을 두고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면서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는 게, 예전에는 그렇게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는 걸까 봐 하면서도 조마조마해하던 일이 지금은 그냥 위로 같다. 새삼스럽게 무언가에 얼마나 쫓기면서 살았던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일요일 저녁을 엄마네 집에 가서 먹었다. 별로 하는 것 없이 저녁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잘왔다. 월요일인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다섯 시 반이었다. 베란다 바깥으로는 숲이 보이는 엄마 집 거실은 벌써 환해져 있었다. 일어나서 물 한잔 마시고 진짜 여행을 온 것 마냥 다시 자리에 발라당 누웠다. 결국 엄마가 다시 깨울 때까지 쿨쿨 더 잤다. 엄마가 해준 밥으로 배를 잔뜩 채우고, 엄마가 들려 보낸 반찬이랑 감자를 한 손 무겁게 들고 한참을 걸려 돌아왔다. 고작 하룻밤 비웠다고 집안 공기가 무거웠다. 사방에 창을 열고 식물들 물을 주고, 어느덧 잎이 제법 크고 튼튼하게 뻗은 아보카도를 들여다봤다. 친구가 준 아보카도를 싹싹 긁어먹고 나온 씨앗을 물에 꽂아 키우기 시작하던 때가 분명 한겨울이었는데. 처음엔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더디게 크는 애였다. 그나마 한참 걸려 나온 싹에서 줄기만 쭉쭉 올라오길래 잘못 키우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할 정도였달까. 한참을 더디게 줄기만 쭉쭉 뻗던 아보카도에 잎이 몇 장 맺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활짝 피웠다. 비웃을만한 건 옆에서 지켜보며 왜 저렇게 더딘지 조급해하는 내 맘뿐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씨앗 속에서 많은 것들이 알아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약'을 먹어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