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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 Jul 06. 2021

'마음약'을 먹어봤다.

명상도 요가도 안먹히길래.

올해 내가 알게 되고 느끼게 된 것들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생각은 사람은,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알약 몇 개로 무기력증과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엄밀히 따지면 약은 아니지만, 어쨌든 적어도 어떤 화학물질의 결핍으로 인해 무기력해지지 말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이끌려 두 달치를 질렀다. 며칠간 먹어본 결과, 질러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마음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사실 ‘설마’하는 생각이 먼저였다. 지금까지 마음이 문제였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체로 긍정적이었고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상황에서 잘 빠져나왔다. 뭐든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마음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초 그랬던 것처럼, 나는 언제든지 다시 땅을 짚고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마음먹기가 안되는 거다. 마음먹은걸 하지 못했을 때의 자책과 자괴감이 나를 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서서히 가라앉았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여름의 무력감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이 여름의 찌는 듯한 온도와 습도가 버거웠다. 서서히 강도를 높여가고 있던 운동을 멈췄고, 몸을 생각하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러지 않았었는데, 매일 저녁 맥주나 와인 생각이 간절해졌다. 소주라도 마시는 날엔 과음으로 이어져 다음날까지 괴로워했다. 그런 날은 마음이 두 배로 괴로웠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두 배로 예민해지고 서운해졌다. 뭐 그게 숫자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니겠지만, 그만큼 즐겁고 행복한 감정은 덜 느끼고 좋지 않은 감정은 더 많이 느끼게 됐다. 예전처럼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도 시작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더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만 정말 간신히 나를 붙잡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 자신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과 사람들을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바꿔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퇴사를 시작했었다. 비록 그 첫 번째 도전이 실패했을지언정 내가 새롭게 만들어가기로 결심한 내 인생의 목표를 실패했다는 생각은 들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는 내 생각을 믿고 싶었다. 어쩌면 그 간절함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약을 만나게 된 게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는 그저 전형적인 서울 한복판에서 퍽퍽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직장인 타깃 알고리즘에 걸려서 그 광고를 마주하게 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언정.)


뭐가 됐든 나는 정말 마음이 아주 많이 괜찮아졌다. 이전처럼 무기력한 와중에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그 어떤 것보다도 내 마음을 최우선으로 돌보기로 했다. 지금 이 마음이 플라세보 효과에 의한 결과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마음이 나아지고 있다는 거니까. 어쩌면 마음이 단단해지는 과정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겪어내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몸의 근육을 기르듯, 마음이 가끔 근육통을 겪는건 어쨌거나 정말 잘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열심히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로 근육통을 느끼면서 몸이 자란다. 내 마음은 이렇게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결국 지금 내가 괜찮지 않다는 걸 쩌렁쩌렁 떠들게 됐지만, 이로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얘기해주고 싶었다. 혹시 마음이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약을 먹어서 나아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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