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살의 갭이어
그러고 보니 공식적으로 마지막 회사를 나온 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 간다. 퇴사를 하고 만들었던 브랜드는 좋은 경험으로 남기고 접었으니, 뭔가 정기적으로 일을 하는 곳에 제대로 취업이라는 걸 해서 돈을 벌지 않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렇다고 딱히 프리랜서처럼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의 괜찮은 동네에서 거실과 방이 나뉘어진 햇살 잘 들어오는 공간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혼자 살아가는 비용은 만만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생각보다 망하지 않고 잘 살아진다.
2020년 연말 즈음이었나.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은 이미 책으로 나온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쓴 진영님과 이 책의 인터뷰와 관련해 통화를 한 적이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갭이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고 했다. 당시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인터뷰 취지와 맞지 않아 결국 같이 진행할 수는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그 책의 인터뷰이가 될 자격(?)을 갖추게 된 것 같다. 그야말로 이제서야 비로소, 모든 걸 멈추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되기 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까.
보통의 도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쁨 중독이던 나는 퇴사하고도 한동안 바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2차 산업혁명시대에 요구되던 근면성실함이 유전자에 입력되어 내려오기라도 한 듯 하루 종일 일하지 않으면 그냥 놀고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솔직히 뭘 얼마나 생산적으로 해냈는지는 조금 뒷전인 채 제품 포장만 하더라도 새벽에 잠들면 뭔가 뿌듯한 하루를 보낸 것 마냥 기분 좋게 잠들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운영하던 브랜드를 접고부터는 매일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단지 불안하다는 이유로 번아웃이 왔다. 그래놓고도 죄책감을 가졌다. 나는 뭘 했다고 번아웃이 오는 거야. 이건 그냥 무기력증이야. 생각해보면 둘은 한 끗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선을 그어가며 바쁘지 않고 생산하지 않는다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재취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라도 다니면 적어도 하루 8시간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뭔가 사회의 일원 정도는 된 것 같은 안정감 속에서 살 수 있으니까. 주류 아닌 비주류가 되었다는 느낌이 홀로 섰다는 유쾌함보다는 홀로 서있는 두려움에 더 가까울 때, 마치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선택했음에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떠밀려 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의 퇴사를 그르친 건 늘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인생에 두 번의 퇴사를 더하고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지금, 오히려 지금은 너무나 잘 지낸다. 딱히 돈이 어디서 굴러 들어왔다거나, 제대로 자리 잡힌 일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비로소, 정말 모든 걸 벗어던지고 나 자신이 되어가는 중이다. 지금 이렇게 어디서 돈이 마르지 않고 퐁퐁 솟아나는 샘이라도 알고 있는 마냥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고 있는 것들 때문이다. 정신과 문을 두드릴 정도로 피폐해져 갔던 내면이 놀랍도록 평온하고 심지어 잔잔한 여유와 행복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정말 예전 같으면 말도 안 된다고 했을 이야기지만, 필요하면 그만큼 어디서 돈이 생긴다. 일단 여전히 잘 남아있는 통장 잔액이 그렇고, 생활비가 다 떨어져 갈 때쯤이면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프로젝트 요청이 들어온다거나, 내가 신청한 프로젝트에 선정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 뭐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압박감 때문에 매일 들여다보던, 소위 말하는 ‘회사 밖에서 돈 버는 법’ 등 각종 노하우와 동기부여 영상이 도리어 더 큰 압박감과 불안감에 시달리게 했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일상이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온갖 돈 버는 법은 내 것이 아니었고, 결국 그건 내가 스스로 만들어갈 일임을 알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만들어지는 일이라는 것도.
하지만 이건 퇴사하고 월 천을 버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퇴사를 하고 너무나도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돈을 벌게 됐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현실적인 마음을 비집고 올라올 만큼 하고 싶은 건 딱히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만둠으로써 시작할 수 있었던, 어쩌면 지금부터라도 원하는 삶을 선명하게 그려내 현실로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실험이자 도전인 여정이다. 그렇다고 뭐 대단하고 거창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게 아닌 나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한 것, 그뿐이다.
그래서 나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일’들을 모두 그만하기로 했다. 대신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것들이 뭔지 알아차리고, 마음이 가는 것이 있다면 그냥 해보기로 했다. 매일 그러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떤 날은 종일 영상 편집에 매달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클래스를 들으며 캘리그래피를 하기도 한다. 그런 것도 없을 때는 동네 도서관에 가서 마음껏 책을 읽는다. 요가를 하거나 카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고양이를 쓰다듬거나 놀아주거나 한다. 오늘부터는 지금까지 배워보고 싶었지만 무한정 미뤄두었던 포토샵과 일러스트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마음이 가면, 무조건 해본다.
이렇게 사는데 필요한 것들은 생각보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손 닿는 곳에 놓여있다는 걸 알았다. 또, 정기적으로 통장에 돈이 꽂히지 않아도 살아진다는 걸 알게 됐다. 정작 나를 못살게 굴었던 건 곧 망하거나 돈이 떨어지거나 신용불량자가 되면 어떡하지? 등의,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스스로의 마음속에 조성하는 불안감이라는 것을, 내가 가진 것들 중 이렇게나 좋은 것들이 많다는 걸 매일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알게 됐다. 작은 것들을 매일 조금씩 이뤄내면서 마음은 점점 단단해지고 편해져 간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대신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해 하루를 남김없이 살아낸다.
내 하루는 새벽 다섯 시에 시작한다. 수없이 실패했고, 그러지 못한 날은 자괴감 때문에 하루를 그냥 보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지는 날이 더 많아졌다. 회사를 다니지도 않는데 왜 굳이 새벽에 일어나야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날도 많다. 심지어 ‘굳이 새벽 기상을 해야 할까?’라는 제목으로 쓴 일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일어나기를 선택한 건, 여전히 그 고요한 새벽 시간, 세상에 나 혼자만 깨어있는 것 같은 그 시간이 주는 힘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또 매일 명상을 한다. 어쩌면 새벽 기상 다음으로 내 삶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바꾼 건 명상이 아닐까 싶다. 명상에 대해서라면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오히려 당장 할 수 있는 말이 얼마 없다는 느낌이 드는 건, 그만큼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내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이 바꾼 게 명상이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은 모두 마음에 있다는 말은 진실이다. 그리고 이 진실을 앞으로 더 공부해보고 싶다. 그래서 요즘 많이 읽는 책도 명상에 대한 책이다. 이건 공부를 더 하게 되면 따로 이야기해봐야지.
그리고 매일 운동을 한다. 생각하는 힘은 근육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말도 진짜인 것 같다. 예전엔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조건 저녁으로 다 밀어 넣었는데, 이제는 무조건 낮에 한다. 운동을 하고 나서 집중력이 높아져 생산성은 더 높아진다는 걸 매일 실감한다. 어떤 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는데, 그런 날은 한강으로 산책이라도 간다. 그럼 곧바로 리프레쉬가 되어 뭐든 또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나는 훌륭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을 모두 멈추고, 가장 최선의 내가 되기 위해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스스로를 알아차리기 위해 남김없이 하루를 쓰며 제대로 논다.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또 뭔가를 알아차리고 다시 또 '그제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나 자신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