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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 Feb 17. 2022

나이는 잊고 내키는 대로 살아

세상이 좋다는 거 말고 내가 좋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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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뭔가를 결정하는데 나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게 됐다. 


사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제 거의 14년 가까이 써온 블로그를 정리하면서 내가 꼭 원래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 계속 내가 몇 살인지 신경은 쓰고 있더라. 하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나 또한 아직 살아내지도 않은 나이테가 미리 그어져 있는 것처럼, 사회 통념상 그 나이 때 해야 하는 것들을 하면 마음의 위안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을 얻곤 했다. 2013년에 졸업을 하고, 한창 준비하던 대기업 취업 시즌을 자체적으로 마무리하고 독일에 가기로 결정하면서 '어차피 27살도 늦고 28살도 늦은 건 마찬가지니까 일단 1년 다녀와서 생각하자'며 나를 타이르고 있더라. 나이를 의식하는 나와 그렇지 않은 내가 아웅다웅하고 있더라. 뭘 해도 늦을 리 없는 소중한 20대에 늦고, 아니고를 따지고 있었다는 게 놀랍고 안쓰러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저질렀다는 게 장하더라(?). 누군가 인생은 저지른 기억들로 풍요로워지는 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일단 그렇게 해보니 그다음부터 뭔가를 결정할 때 나이는 더더욱 신경 쓰이는 '무언가'가 아니게 됐다. 아니면 이것도 점점 무뎌지는 건가. 오히려 나이에 더 전전긍긍하던 건 20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 다 취업 준비하는 4학년에 21학점 꽉꽉 채워 들으며 광고동아리 활동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던 시절. 토요일에 세미나하고 뒤풀이 가서 술 마시고 있으면, 이미 회사 다니고 있던 선배들이 놀러 와서 나이 많은 후배 공경한답시고 공기밥에 물 부어서 숭늉 타 주고 그랬으니까. 또는, 그냥 그때도 알았던 것 같다. 그 찬란한 20대는 금방 지나간다고들, 이미 그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곤 했으니까. 그렇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가득해 오히려 아득하게 두려웠던 20대를 지나며 나조차도 이 시간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지곤 했으니까. 그렇게 나이를 생각하면서도 나이보다 중요하다고 외치며 앞으로 나와줬던 내 마음속 다른 수많은 우선순위들 덕분에 나다운 결정을 했고, 그 저지름들이 모여 점점 더 나를 나이에 무딘 사람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각보다 마음 가는 대로 살아진다. 그것도 아주 잘. 그렇게 살고자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조금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살아내진 못했지만, 어쩌면 정말 내키는 대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애초에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두려워했던 미래 따윈 현실에 나타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 이걸 알고 있는 나는 앞으로도 더 내키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을 거다. 다른 무엇도 아닌 내 마음에 더 귀 기울이면서. 어쩌면 이 글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쓰는 글이다. 미래의 내가 지금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너무 잘 살고 있는 거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려고.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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