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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 Feb 03. 2021

임보의 기쁨과 슬픔

나를 돌보고 떠난 하리와 보리 이야기

상실감에서 오는 약간의 우울함이 하루를 늦게 시작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존재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은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이유를 사라지게 한다. 그 마음 아픈 사실을 조금이라도 잊고 싶어 눈이 떠졌음에도 다시 잠을 청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라는 말에 연애가 끝날때마냥 위로받는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봐도 문득 문득 눈에 아른거리는 하리 생각에 눈물이 난다. 하리가 죽은 것도 아니고, 평생 가족 만나서 더 잘살러 간건데도 이렇다. 임보의 기쁨과 슬픔이란 이런걸까. 사소한 모습 하나까지 놓치고 싶지 않아 찍어둔 사진과 영상들을 보며 더 그리워진다. 내 작은 공간이 고양이들의 물건으로 어질러지는게 걱정되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들이 없는 텅빈 집의 불꺼진 창문을 바라보는게 어렵고 두렵다.


하지만 나의 감정은 시간이 가진 치유의 힘을 믿는 사치를 부릴 정도로 여유로운 편이다. 동물들의 심정은 어떨까. 하리와 보리는 어느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채 또 다시 좁고 컴컴한 가방에 갇혀 낯선 곳으로 옮겨졌다. 자신의 냄새 가득 묻어있는 소파 위에서 그르렁 잠을 자다가 갑자기 들려나간 하리는 자신이 또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된건지 알지 못한채 그 낯선 곳에서 다시 밤새 울었다. 하리의 배에 고개를 묻고 세상 모르고 자던 보리는 또 다른 임보처로 이동한 이후 며칠간 또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의 선한 의도와는 별개로 동물들이 겪는 두려움은 설명할수도 이해시킬수도 없으니 참 미안한 일이다. 어찌됐던 사람이 만든 세상에서 사람이 정해놓은 시스템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는건 동물들에게는 미안하고 죄스런 일이다.



하리와 보리가 처음 이 곳에 왔던 날을 기억한다. 그루밍을 좋아하는 장모종 고양이 하리는 더럽고 불편한 비닐하우스에서 목줄을 하고 살던 고양이였다. 사람의 욕심으로 귀가 작고 좁게 만들어지는 바람에 귀 속에는 진드기가 득실거렸고 그루밍을 하지 못했던 하리의 생식기에서는 짓물이 나왔다. 고양이의 습성을 생각하면 쇠사슬을 차고 그 더러운 비닐하우스에서 사는게 어떤 고통이었을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렇게 살던 하리가 우리집에 와서 나의 첫 손길에 고롱송을 불렀다. 지금까지 그런 손길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살기 위함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구조해 평생 가정으로 보내게 된 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최선이라는 설명을 그들에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저 그들이 함께 살게된 평생 가족을 믿고 또 다시 그 환경에 적응해 다시는 어디론가 보내지는 일 없이 평생 행복한 고양이로 살아가게 되길 바라는 수밖에. 하리에게 네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 고양이라고 꼭 알려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이렇게 잠시만 그들을 돌보는 거라고 생각했을 뿐인 임보가 결국 잊지 못할 감정으로 남는다. 살면서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감정으로 말이다. 결국 동물은 사람에게 더 많이 주고 마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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