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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 Feb 03. 2021

채소가 이렇게 맛있다고 왜 말 안해줬어?

아이들이 야채를 싫어할거라고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주물냄비 안에 채소 가득 썰어넣고 뚜껑덮어 푸욱 익히면 어느새 물 한 방울 넣지 않은 냄비에 채수가 가득 고여 보글보글 끓는다. 여기에 아주 약간의 물을 더해 끓여 만드는 카레는 정말 이 세상 맛이 아니다. 감자의 포슬함과 당근과 양파의 달큰함, 카레의 매콤함과 버섯의 쫄깃함이 카레향과 어우러져 제대로 깊은 맛을 낸다.


원래도 카레는 좋아했지만, 마트에 카레용으로 잘 썰려 진열되어 있는 돼지고기나 소고기 한 팩 넣지 않으면 카레가 아닌 줄 알았던 시절도 있다. 비건을 지향하게 되면서 카레는 물론 모든 음식에서 누군가의 살코기를 빼고, 고기 없이 맛있는 음식들의 신세계를 경험하는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비건은 노력으로 시작했지만, 한 번 그 세계에 빠지면 그닥 노력없이도 이어지게 되는 것이 비거니즘이 아닐까. 올해 나의 뉴노멀은 비거니즘이다.


고기를 먹을 때 야채는 거들 뿐. 이전까지 내 식단에 채소가 메인이었던 적은 없었다. 30여 년을 당연하게 이어온 내 식단은 아이들은 당연히 야채를 싫어할거라 생각하고 아기를 잘 먹이기 위해 소고기 이유식부터 시작한, 나를 너무 사랑하는 우리 엄마의 육아 방식에서부터 시작됐다. 어쩌면 채식이라는 선택지가 없었던 엄마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아이는 채소를 싫어한다고 단정짓는 메세지는 각종 미디어와 광고, 심지어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우리는 그렇게 ‘채소는 맛이 없지만 노력해서 먹는 것’ 이라는걸 무의식중에 주입받으며 고기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오늘 마켓컬리에서 배송된 대체육 콩갈비살의 포장지에는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둔 엄마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엄마의_착한거짓말 이라는 해시태그가 가장 앞에 나와 있다. 아이들에게 착한 거짓말도 하고 싶지 않다면 아이들이 채소를 싫어할거라는 전제를 깔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어릴때부터 다양한 옵션을 맛보여주며 아이들이 선택하게 만들면 된다. 고기를 넣지 않은 카레가 더 맛있는 것을 진작 알았다면, 카레용 돼지고기 한 팩을 깜박 잊은 채 장을 보고 돌아온 어느 무더운 여름날 다시 그 고기 한 팩을 사러 마트로 돌아가진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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