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플라스틱 연필깎이로 연필 깎으면서 한 생각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5분도 채 쓰지 않을 물건을 5초만에 만들어서 500년 이상이나 썩지 않고 남아있게 만들기 때문이죠. 사실 플라스틱이 처음에 각광받았던 이유는 어차피 버려지는 석유찌꺼기로 값싸고 튼튼한 물건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래요. 그 시대의 업사이클링이었달까요. 문제는 값싸고 튼튼하니 엄청나게 만들어내는데 얘가 안썩는다는거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짜장면 시키면 그릇을 다시 가져갈 수 있게 내놓는게 당연한 일이었어요. 이제는 배달 음식 하나 시키면 재활용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온갖 플라스틱에 담겨 오죠. 이게 언제부터 이렇게 당연해졌을까요.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이 한국인 최초로 ‘더기빙플레지(재산이 1조원 이상이어야 하고 심사를 거쳐야 가입할 수 있어요. 일론머스크, 마크 주커버그 등이 회원이에요.)’에 가입해 재산의 절반, 그러니까 5,500억원 이상을 기부한다고 해요. 기업인 김봉진을 존경하지만, 배달의민족이 속한 배달 산업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엄청나게 만들어내는데 일조한 부분을 생각하면 그 기부금액은 그들이 만들어낸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데 써야한다고 생각해요. 이 얘기를 어제 친구랑 농담처럼 했는데 정말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봉진 의장이 더기빙플레지에 가입할 정도로 우아한형제들 지분가치가 높아진건 코로나19 로 배달 서비스 이용이 폭증하면서이기도 하니까요.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1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이전보다도 심각해졌죠. 원래 심각했는데 말이에요.
유튜버 ‘밀라논나’님을 좋아해요. 그 분은 늘 뭔가를 일상에 들여놓으면 오래오래 곁에 두세요. 식물을 들여놓아도 자식처럼 3, 40년을 키우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지만 분명 오래 쓰고 싶은 물건이 있어요. 3, 40년까지 써본 물건이 없어서 아직 모르겠지만, 내 선택의 우선순위들 중에 내가 정말 오래 곁에 두고 쓸 물건인지를 제일 앞에 두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얜 정말 오래오래 쓰고 싶다, 플라스틱인데 버텨 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플라스틱이면 곁에 둬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곁에 두고 오래오래 쓸 물건만 남겨두려고 해요.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면서 결국 버리지 않을 것들만 남겨두는 노력을 하게 돼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일상이 마음에 들어요. 물건도 관계도 그리고 나 자신도 정말로 인생에 의미있고 중요한 것들만 남겨두는 것, 그게 제가 제로웨이스트를 통해 배운거에요. 저한테 중요한 것만 남기는 거니까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기준으로 살게 되는게 가장 좋아요. 솔직히 저는 과장하나 안보태고 살면서 요즘이 가장 행복해요. 진심으로 지구가 걱정돼서 시작한 사소한 노력들이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몰랐어요. 결국 선택의 기준이 이기적이지 않을때 내가 더 행복해진다는걸 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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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smth